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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명 : 광주 왕실도자기 축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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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2006.09.22 (
금) ~ 2006.10.03 (
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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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광주시 실촌읍 삼리 (광주조선관요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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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 : 광주시왕실도자기축제추진위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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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 : 031-760-2105~2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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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http://www.goodceramic.co.kr/ |
경기도 광주는 조선시대 왕실자기를 제작한 사옹원(司饔院) 분원관요(分院官窯)가 있던 곳이다. 분원은 조선시대 궁중 진상 및 식사를 담당하는
중앙관청인 사옹원의 소속 기관이다. 사옹원의 업무 가운데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일을 분원관요에서 담당했다. 팔당호 인근 광주시 퇴촌면 분원리
일대는 1752-1884년 280여개의 가마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광주에 왕실도자기 공장인 분원이 들어선 것은 한양과 가까운데다 좋은 흙이 풍부하고 무갑산, 앵자봉 등 숲이 무성해 번목(가마를
때는 장작)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전국 139곳의 자기소 가운데 상품(上品)을 만든 곳은 경상도 상주 2곳, 고령 1곳, 경기
광주 1곳 밖에 없었다. 특히 한강이 가까워 도자기를 배에 실어 궁궐에 조달하기 수월했다. 특히 18세기 들어 한강 수운을 이용해 강원도에서
땔감을 실어나르고 백토가 운반되면서 요장을 옮기지 않고 분원을 한 곳에서 오랫동안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은 붕어찜으로 더 잘알려진 퇴촌면
분원리의 지명도 그렇게 붙여졌다.
2만평에 이르는 분원관요는 민영화되기까지 130년간 왕실의 사기 공장이었다. 1996년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당시 아시아 문명권
최고가인 824만달러에 팔린 ‘철화백자용문호'는 이 곳에서 빚어낸 명품이다. 지금은 발굴작업과 보전작업이 진행되고 있지만 1980,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인 관광객들이 단체로 방문해 도자기 파편을 주워가기도 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제9회 광주왕실도자기축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축제는 대규모 도자기 진상식을 재현하고 제례의식을 갖춘 개막식과 화려한 축하공연으로 시작된다. 축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하고
체험하는 행사로 진행된다. 도예인과 함께하는 물레성형시연, 도자기 만들기와 흙높이쌓기, 항아리에 소원쓰기, 궁중다례체험, 차(茶)예절,
차(茶)음식 경연대회를 비롯 사진콘테스트, 5행시짓기, 아이디어 공모, 전통 민속놀이 등 다양한 체험코너가 진행되며 푸짐한 상품도 있다. 축제장
내 전시판매관에서는 축제 기간 광주지역 도예가들이 정신으로 빚어낸 품과 생활도자기를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축제장인 조선관요박물관은 조선시대 관요의 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관요백자와 지방백자를 비교 전시하고 도자를 쉽게 이해하는 도자문화실을
운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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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막행사 - 개 막 식 : 2006. 9. 22(금) 18:00 조선관요박물관 - 개막행사 : 왕실
분위기를 연출한 대규모 도자기 진상식 거행
◆ 공 연 -오카리나, 줄타기 기예단, 드럼캣, 신널뛰기, 인형극 포크댄스
국악봉사단, 색소폰연주, 동원대이글즈 치어리더, 한국무용, 야공단댄스, 등
◆ 참여체험
- 공예체험 :
한지공예, 천연비누만들기,토리어리,도자만들기, 찻잔만들기, - 기획행사 : 흙높이쌓기, 전통가마불지피기, 다례시연, 목판화찍기, 탁본뜨기
- 상설행사 : 흙놀이방, 전통 차 마시기, 솜사탕나눠주기,, 5행시 짓기, 사진콘테스, 차예절 차음식 만들기, ※ 승람도 놀이,
유객주놀이, 대형윷놀이, 바람개비 만들기, 제기차기 딱지치기, 널뛰기, 투호놀이 등
◆ 특별행사 - 전국 노래자랑
광주시는 제 9회 왕실도자기 및 남한산성축제와 시민의 날을 맞이하여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한다.
◆ 항아리에 소원쓰기
-도자기 고장으로서 독특한 소원빌기 - 달항리 모양의 대형 도자기에 소원쓰기 - 축제 후 박물관, 시청사등에
전시
◆ 전시 - 이병하소진전, 광주사랑사진전, 도자전시판매관 도자타일전
시간/일 |
22(금) |
23(토) |
24(일) |
25(월) |
26(화) |
27(수) |
28(목) |
29(금) |
30(토) |
1(일) |
2(월) |
3(화) |
10:00~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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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 |
전 국 노 래 자 랑 |
레크 |
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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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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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1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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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공단댄스 |
한국무용 |
야공단댄스 |
야공단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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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공단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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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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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리 |
포크댄스 |
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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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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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1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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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 음악공연 |
한국무용 (진수영무영단) |
레크 |
인형극 |
인형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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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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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1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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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0~1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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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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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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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13:00~1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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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in |
Danc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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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례 경 연 대 회 |
B-boy |
Danc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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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y |
13:30~1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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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리나 |
국악봉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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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드럼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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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14:00~14: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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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드럼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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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랑 색소폰 |
경안천 색소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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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널뛰기 |
14:30~15: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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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y |
줄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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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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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리나 |
15:00~1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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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단 |
기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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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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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15:30~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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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크 |
레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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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y |
B-bo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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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단 |
16:00~1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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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드럼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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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드럼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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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캣 |
16:30~1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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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y |
오카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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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in |
동원대 이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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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oy |
17:00~17:30 |
개 막 식 |
기예단 |
기예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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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리나 |
Dance 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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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널뛰기 |
17:30~1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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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단 |
B-bo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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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단 |
18:00~18: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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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사랑 색소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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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1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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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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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및 상설공연 |
도자체험,궁중다례체험,도자항아리 소원쓰기, 목판화찍기,
토피어리, 천연비누만들기, 탁본만들기. 재기차기, 바람개비만들기, 한지공예, 솜사탕 나눠주기, 흙사랑 체험장 ※ 공연일정은 추후 변경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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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도자역사
광주분원(廣州分院) 광주는 조선시대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되어 운영되던 유서깊은 도자기의 고장이다. 분원이란 말은 왕실의 어기와
관청에 공납하던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으로 중앙 관리부처인 사옹원의 "분사옹원"을 약칭하지만 기록에는 "분원" 이란 이름을 많이 썼으며 분주원이라
개칭되기도 하였다.
사옹원에서 어기제조 및 공납을 맡은 것은 고려시대부터였으며 조선 태조1년(1392)에 사선서를 설치했다가 사옹방으로 그리고 세조
13년(1467) 사옹원으로 개칭하여 조선 말기까지 존속하였다.
(여지도서)양근군조에 의하면 광주 번조소를 남종면으로 이전 설치한 것은 영조 28년(1752)이었다고 하며 매년 봄 가을에 사옹원 관원이
이용자기의 제조를 감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분원의 역사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분원전기
1392년부터 임진왜란까지의 시기로 전반기의 가마에서는 중국풍의 문양과 송죽매문이나 간결한 바탕문양 및 달과 별들이
회화적인 수법으로 표현된 청화백자들이 만들어졌다.
15세기 후반으로 가면서 중국의 문양보다는 한국화된 매화나 새의 문양이 시문된 청화백자가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분원 관요가 설치된 후
우수한 청화백자가 생산되었던 시기이다

2. 분원중기
1650년부터 1751년에 이르는 약 100년간으로서 임진왜란으로 인한 폐해가 극심하였고 제조기술도 조악해져 굽에
굵은 모래 받침이 붙어 있는 것도 많다.
대표적 가마터로는 탄벌레, 선동리, 상림리, 송정리, 신대리 등이 있다. 17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중국의 명·청이 교체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임진왜란 등 국내외의 상황이 격변하였기 때문에 양질의 백자를 생산하기 어려웠다.
"청화안료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청화백자 항아리가 없어 부득히 가화(假畵)로 대신했다"는 기록이 당시의 상황을 잘 말해주고
있다.

3. 분원후기
왕실용 가마를 남종면 분원리로 옮긴 1752년부터 1884년 분원이 민영화 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기형은 다양해지면서 화분, 호리병, 각병, 편형, 원호 등이 만들어졌고 연적, 필통 등이 문방구류의 제작이 활발해졌다. 분원후기로
가면서 다시 청화백자가 주종을 이루게 되었으며 "福"과 같은 글자를 쓴 것과 난초, 매화, 산수도 등의 문양이 많이 등장하지만 필선도 굵어지고
거칠며 청화발색도 진한 것이 대부분이다. 십장생, 연화문, 물고기문, 구름문 등 당시 유행했던 민화와 십장생이 도자기에 시문되어 후기 백자만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경향은 "영조실록"에 "중기에는 철화백자가 유행했으나 지금은 회청으로 그린다하니 매우 사치스러운
풍조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분원에서의 자기생산은 분기별 특징을 갖고 전승되었으나 17세기 후반부터 장인들의
생계를 보조하는 의미에서 개인적인 생산이 조금씩 허용되기 시작하고 18세기 들어오면서 상인 자본이 개입하면서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하다가 고종
21년(1884) 민영화되었다. 지금도 광주분원 가마터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의 백자 파편들이 발굴되고 있으며 등록된 가마터 만도 185개
이상 되지만 현재까지 발굴된 것은 도마리, 번천리, 우산리, 선동리등 4개의 가마에 불과하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유물에는 자기
제작 시기를 기록한 묘지편 뿐 아니라 백자 그릇바닥에 10년간의 간지명이 새겨진 파편등이 있어 분원자기의 연대를 상세 하게 파악할 수
있다.
15세기 조선초기의 도마리 가마에서는 중국과 한국적 양식이 혼합된 과도기적인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퇴촌면 우산리
가마터에서는 양질의 백자파편이 다량 출토되었으며 청화백자나 청자는 소량 출토되었다. 16세기 중반의 것으로 밝혀진 번천리 5호 가마의 출토품은
거의 순백자이며 청화백자편 3점과 철화백자편 1점 등이 발견되었다. 번천리 9호 출토품도 대부분 경질백자편으로서 매우 정교한 파편들이 발굴되어
당시의 뛰어난 자기제작 기술수준을 가늠하게 한다. 17세기 전반기의 것으로 유일하게 발굴 조사된 선동리 가마는 자연 구릉을 그대도 이용하여 만든
반지하식 가마이다. 이 가마에서는 17세기에 들어서 철화백자의 제작이 늘어났음을 알려주는 철화 백자편과 백자의 색이 회색으로 변한 조질백자편이
다량 출토되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840만불(미화)로 낙찰된 철화백자 용문항아리와 같은 철화용문 파편들도 선동리 9호분에서 발굴되었으며 죽문,
포도문항아리 등의 국보급 철화백자 작품도 대부분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18세기 이후 분원 후기의 가마터는 현재 발굴된 것이 없으며 현재의
남종면 분원리에 최후의 관요가 설치 운영되었는데 사옹원의 도제조와 번조관들의 공덕비가 그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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