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사 >>>>>
국내에 하나뿐인 윤장대
인도서 가져온 불경보관위해 지어
주지스님은 이동통신사 광고로 유명
인도서 가져온 불경보관위해 지어
주지스님은 이동통신사 광고로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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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어 세속의 소란함이 끊어진 곳'. 조선시대 대문호 서거정이 천년고찰
용문사를 가리킨 말이다.
예천군 예천읍에서 928번 지방도를 따라 자동차로 15분쯤 가다보면 정감록 십승지 가운데 하나인 용문면 금당실 마을이 나온다.
조선시대 곰삭은 기와집이 즐비하고 돌담이 7.8㎞나 되는 이 전통 마을을 지나 명경재 삼거리에서 오른쪽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수려한 계곡과 울창한 산림 속에 선 고색창연한 일주문(一柱門)을 만난다.
일주문에서 풍기는 고풍은 벌써 천년고찰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일주문 오른쪽에 용문사의 용이 노닐던 '용 못'이 있었다는 설이 있는 곳은 지금은 못이 메워져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대장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은은히 들려오는 풍경소리, 물결 위에 피는 듯 들리는 목탁소리는 청아한 바람결에 세상 번뇌를 잊게한다.
천년고찰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 이 고장 출신인 당대 고승 두운 선사가 창건했다.
고즈넉한 산사, 하늘을 날듯이 솟은 부연 끝 풍경소리는 아름답다 못해 경외스러움을 자아낸다.
동국여지승람이 용문사를 일러 울창하고 경치가 좋은 사찰이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이름난 절이었던 것 같다.
절 이름을 용문사라 지은 것은 태조 왕건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청룡 두마리가 구름 속에서 나타나 왕을 영접했기 때문이란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나, 두운선사가 절을 짓기 위해 이곳에 들어갈 때 용이 입구에 나와 환영해 용문사라 지었다고 '중수 용문사기'에 새겨져 있으니 후자의 말이 맞는 듯 하다.
용문사는 보물을 4점이나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다. 대장전과 윤장대, 목불좌상과 목각탱, 용문사 교지가 그것이다. 사찰내 대장전(보물 제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건축된 단층 맞배지붕 건물로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와 대추나무로 만든 목불좌상 및 목각탱이 보존되어 있다. 대장전의 외부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깥 기둥머리 장식이다.
창방머리 뻘목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있다. 연꽃과 연꽃봉오리, 연잎이 있고 수초와 살찐 물고기 모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으며 조각 솜씨도 걸출하다. 그 위 평방머리에는 꽃 무늬와 귀면을 단정하고 있어 해학적이다.
용문사는 1984년 초파일 뒷날, 연등 정리를 하던 신도의 실수로 불이 나 5동의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이곳에서 30여m 떨어진 대장전은 무사했다. 대장전 법당 기둥 위에 조각된 용, 붕어, 연꽃, 귀면 등이 물을 상징하는 부적 역할을 해 화마(火魔)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사찰측의 해석이다.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국내에선 유일한 것으로, 인도의 고승 구담이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자엄 스님이 대장전 내에 높이 4.2m, 둘레 3.3m의 팔각정 모양으로 좌우에 하나씩 설치된 것이다.
중앙에 찰주를 세우고 하대와 몸체, 옥개부 세부분을 올렸으며 아랫부분에
예천군 예천읍에서 928번 지방도를 따라 자동차로 15분쯤 가다보면 정감록 십승지 가운데 하나인 용문면 금당실 마을이 나온다.
조선시대 곰삭은 기와집이 즐비하고 돌담이 7.8㎞나 되는 이 전통 마을을 지나 명경재 삼거리에서 오른쪽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수려한 계곡과 울창한 산림 속에 선 고색창연한 일주문(一柱門)을 만난다.
일주문에서 풍기는 고풍은 벌써 천년고찰임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일주문 오른쪽에 용문사의 용이 노닐던 '용 못'이 있었다는 설이 있는 곳은 지금은 못이 메워져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대장전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은은히 들려오는 풍경소리, 물결 위에 피는 듯 들리는 목탁소리는 청아한 바람결에 세상 번뇌를 잊게한다.
천년고찰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 이 고장 출신인 당대 고승 두운 선사가 창건했다.
고즈넉한 산사, 하늘을 날듯이 솟은 부연 끝 풍경소리는 아름답다 못해 경외스러움을 자아낸다.
동국여지승람이 용문사를 일러 울창하고 경치가 좋은 사찰이라 기록한 것으로 보아 예로부터 이름난 절이었던 것 같다.
절 이름을 용문사라 지은 것은 태조 왕건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청룡 두마리가 구름 속에서 나타나 왕을 영접했기 때문이란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나, 두운선사가 절을 짓기 위해 이곳에 들어갈 때 용이 입구에 나와 환영해 용문사라 지었다고 '중수 용문사기'에 새겨져 있으니 후자의 말이 맞는 듯 하다.
용문사는 보물을 4점이나 간직하고 있는 문화유적의 보고다. 대장전과 윤장대, 목불좌상과 목각탱, 용문사 교지가 그것이다. 사찰내 대장전(보물 제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건축된 단층 맞배지붕 건물로 불경 보관대인 윤장대와 대추나무로 만든 목불좌상 및 목각탱이 보존되어 있다. 대장전의 외부에서 주목되는 것은 바깥 기둥머리 장식이다.
창방머리 뻘목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있다. 연꽃과 연꽃봉오리, 연잎이 있고 수초와 살찐 물고기 모양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으며 조각 솜씨도 걸출하다. 그 위 평방머리에는 꽃 무늬와 귀면을 단정하고 있어 해학적이다.
용문사는 1984년 초파일 뒷날, 연등 정리를 하던 신도의 실수로 불이 나 5동의 건물이 소실되었지만 이곳에서 30여m 떨어진 대장전은 무사했다. 대장전 법당 기둥 위에 조각된 용, 붕어, 연꽃, 귀면 등이 물을 상징하는 부적 역할을 해 화마(火魔)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사찰측의 해석이다.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국내에선 유일한 것으로, 인도의 고승 구담이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자엄 스님이 대장전 내에 높이 4.2m, 둘레 3.3m의 팔각정 모양으로 좌우에 하나씩 설치된 것이다.
중앙에 찰주를 세우고 하대와 몸체, 옥개부 세부분을 올렸으며 아랫부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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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를 달아 돌리면서 염송(마음으로 부처를 생각하면서 불경을 외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윤장대를 돌리면
누구든지 소원성취할 수 있다는 전설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면 누구나 돌려보고 싶어한다.
그러나 1980년 윤장대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훼손을 우려한 사찰측이 일반인에게 공개를 꺼리다가 98년 청안 주지스님(68)이 부임해 지난해까지 보수를 마쳤다.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과 중구절(음력 9월 9일)을 '윤장대 돌리는 날'로 정해 신도들이 돌리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청안 스님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탤런트 한석규와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 출연했던 것으로 유명한 스님이다.
예천군은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60억원을 들여 용문사에 불교유물전시관을 건립한다. 용문사는 여러차례 화재로 절 소유의 경전, 교지 등 유물 310점을 본사인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경내에 250여평의 불교유물 전시관이 완공되는 2005년 말쯤이면 이곳으로 옮겨와 용문사가 불교문화 체험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용문사의 문화재는 대장전·윤장대 등 4점 보물로 지정
대장전 내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은 조선 숙종 10년(1684)에 조성한 후불탱으로 목조삼존불 좌상과 목각 후불탱화이다.
목불좌상은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상·중·하 3단에 걸쳐 상을 배열하였고 상단과 중단 좌우에는 두 보살씩 8대 보살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칭으로 서있다.
대추나무로 만든 후불탱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것인데, 우리나라에 6점만 전하고 있다. 모두다 아미타 극락 회상도를 목각한 미타탱이다.
용문사 교지(보물 제729호)는 세조가 내린, 용문사의 잡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서로 닥종이에 7행 48자 묵서로 작성한 것이다. 세조 3년(1457) 경상감찰사와 예천군수에게 '용문사를 잘 보살피고 가일층 보호하여 잡역을 면하도록 하라'고 미리 전지(傳旨)를 띄우고 뒤에 교지를 내린 것이다.
용문사 교지는 왕의 수결(手決)이 있고 연대가 뚜렷한 희귀품으로 불교를 억제하던 시기에 사찰에 세금과 잡역의 특혜를 베푼 것에서 당시 절의 격을 살필 수 있다.
천불탱은 168×234㎝ 크기의 비단에 채색된 불화로 1천개의 불상을 한 폭에 그린 현존 천불탱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팔상탱(보물 제1330호)은 석가모니 일생에서 중요한 행적을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불전도이다. 중심 주제가 되는 도솔래의상과 비람강생상이 1폭, 사문유관상과 유성출가상이 1폭, 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이 1폭 등 모두 4폭으로 돼있다.
대장전의 문루인 자운루(慈雲樓)는 임란때 나라를 지키려 승병들이 모여 회담하고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삼던 신방의 기능을 수행한 호국의 장소다. 지금도 자운루 대들보에는 그때 짚신을 삼던 씨줄 자국이 남아있다.
그러나 1980년 윤장대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훼손을 우려한 사찰측이 일반인에게 공개를 꺼리다가 98년 청안 주지스님(68)이 부임해 지난해까지 보수를 마쳤다. 매년 음력 삼월 삼짇날과 중구절(음력 9월 9일)을 '윤장대 돌리는 날'로 정해 신도들이 돌리며 소원을 빌 수 있도록 배려했다.
청안 스님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날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카피와 함께 탤런트 한석규와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 출연했던 것으로 유명한 스님이다.
예천군은 유교문화권 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사업비 60억원을 들여 용문사에 불교유물전시관을 건립한다. 용문사는 여러차례 화재로 절 소유의 경전, 교지 등 유물 310점을 본사인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해 왔다. 그러나 경내에 250여평의 불교유물 전시관이 완공되는 2005년 말쯤이면 이곳으로 옮겨와 용문사가 불교문화 체험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용문사의 문화재는 대장전·윤장대 등 4점 보물로 지정
대장전 내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은 조선 숙종 10년(1684)에 조성한 후불탱으로 목조삼존불 좌상과 목각 후불탱화이다.
목불좌상은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상·중·하 3단에 걸쳐 상을 배열하였고 상단과 중단 좌우에는 두 보살씩 8대 보살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대칭으로 서있다.
대추나무로 만든 후불탱은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한 것인데, 우리나라에 6점만 전하고 있다. 모두다 아미타 극락 회상도를 목각한 미타탱이다.
용문사 교지(보물 제729호)는 세조가 내린, 용문사의 잡역을 면제하라는 명령서로 닥종이에 7행 48자 묵서로 작성한 것이다. 세조 3년(1457) 경상감찰사와 예천군수에게 '용문사를 잘 보살피고 가일층 보호하여 잡역을 면하도록 하라'고 미리 전지(傳旨)를 띄우고 뒤에 교지를 내린 것이다.
용문사 교지는 왕의 수결(手決)이 있고 연대가 뚜렷한 희귀품으로 불교를 억제하던 시기에 사찰에 세금과 잡역의 특혜를 베푼 것에서 당시 절의 격을 살필 수 있다.
천불탱은 168×234㎝ 크기의 비단에 채색된 불화로 1천개의 불상을 한 폭에 그린 현존 천불탱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팔상탱(보물 제1330호)은 석가모니 일생에서 중요한 행적을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불전도이다. 중심 주제가 되는 도솔래의상과 비람강생상이 1폭, 사문유관상과 유성출가상이 1폭, 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이 1폭 등 모두 4폭으로 돼있다.
대장전의 문루인 자운루(慈雲樓)는 임란때 나라를 지키려 승병들이 모여 회담하고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삼던 신방의 기능을 수행한 호국의 장소다. 지금도 자운루 대들보에는 그때 짚신을 삼던 씨줄 자국이 남아있다.
출처 : 영남일보
"마음 다해 돌려봐, 소원이
이뤄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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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문사 윤장대. | ◇ 전등사 윤장대. |
석등처럼 생긴 목각공예품으로 안에 불경을 보관하는 윤장대(輪藏臺). 손잡이를 잡고 연자방아 돌리듯 돌리면 경전을
읽는 효과가 있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지는 불교 문화재다. 현재 경북 예천의 용문사에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돼 있는데 최근 일부 사찰들이
현대화된 윤장대를 잇따라 설치, 올 석가탄신일의 테마로 뜨고 있다.
석등모양 속에 불경 보관 '900년 역사'
"경전 읽는 효과 - 소원 성취된다" 구전
석가탄신일 맞아 '돌리기' 제한적
허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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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못보고 죽으면 염라대왕의 꾸중을 듣는다는데…'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있는 용문사는 신라 제48대 경문왕때 세워진 천년고찰로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갖고
있다. 이중 900년 역사를 지닌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불교 문화유산이다.
대장전안, 금빛찬란한 목각탱화 좌우에 석등 모양의 윤장대가 각 하나씩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윤장대는 그동안
누구나 돌릴 수 있었으나 사찰측이 4년간의 보수공사를 걸쳐 올초 다시 공개하면서 매년 음력 3월3일과 9월9일에 한해 돌릴 수 있도록 했다.
이후 몰래 윤장대를 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어 이같은 안내문을 내걸었단다. 좌우 윤장대는 크기(높이 4m), 모양은 같지만 왼쪽은 꽃창살 무늬,
오른쪽은 빗살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다르다. 청안 주지스님은 "불경을 넣은 윤장대를 돌리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온세상에 퍼지라는
것이요, 불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돌리면 불경을 읽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청안 스님은 "이번 석가탄신일(26일)에는 제한적으로 윤장대 돌리기를 허용할 방침"이라며 "요즘이 아주 어려운
시기인만큼 윤장대를 돌리며 소원을 빌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윤장대가 있는 대장전(보물 제145호)은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균형미가 뛰어난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계건물이며, 조선 숙종때 대추나무로 조성된 목각탱화(보물 제989호)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후불탱화 작품이다.
이외 용문사에는 조선 세조의 교지(보물 제 729호)와 고려시대 자운루, 조선중기 회전문, 조선후기의 범종 등
문화재가 많은데다 부석사(영주), 청량사(봉화) 등 고찰이 인근에 있어 사찰 순례코스로 알맞다. (054)655-8695 <
skkim@>
강화도 전등사등 전통미 살려 재현
현대화 된
윤장대 |
최근 강화도의 전등사와 석모도의 보문사,
논산 관촉사, 오대산 월정사에 윤장대가 잇따라 들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중 월정사만 실내에 설치됐고, 나머지는 야외에 들어섰다. 야외용은
높이 4m30㎝에 무게 600㎏로 실내용보다 두배정도 규모가 크다. 전등사의 윤장대를 본 사람들은 "전에 못보던 것"이라며 호기심을 갖는다.
안내문을 읽고 두손모아 합장한뒤 정성스레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명에 대뜸 "로또복권 당첨되게 빌어야겠다"며 손잡이를
잡는 젊은이도 있다. 어린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인양 매달리려 애쓴다. 900여년만에 세상에 나온 윤장대는 이처럼 아직 일반인들에겐 낯설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들 윤장대는 전통문양의 현대화와 패턴화를 연구해온 국민대 디자인학과 한근석 교수의 작품이다. 한교수는 목공예 전문복원회사인
(주)만상(경기도 김포)과 함께 용문사 윤장대를 모델로 삼아 2년2개월간의 연구끝에 작년 7월 현대화 기법으로 재현, 의장등록 특허도
받았다. 한교수는 "2800여개의 조각을 맞춰 완성한 꽃창살은 미적감각을 극대화 시켜 공예작품으로 느껴질 것"이라며 "현대화된 윤장대는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어 불교 체험 및 포교에 큰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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