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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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제30호. 면적 258m2. 수량 1그루. 1962년 12월 3일 지정. 추정수령 1100년. 지정사유 노거수. 용문사 소유. 나무높이 62m, 가슴높이 줄기둘레 14m, 가지퍼짐은 동쪽 14.1m, 서쪽 13m, 남쪽 12m, 북쪽 16.4m이다.
용문사 경내에 있는 이 은행나무는 암나무이며, 줄기 아랫부분에 큰혹이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의 나무 중 가장 키가 크며, 우람하고 당당한 위엄을 풍기는 대표적인 명목이라 할 수 있다.
이 나무는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또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그의 지팡이를 꽂은 것이라고도 한다.
이 나무가 자라는 동안 많은 전쟁과 화재가 있었으나 이 나무만은 그 화를 면했다고 한다.
사천왕전(四天王殿)이 불탄 뒤부터는 이 나무를 천왕목(天王木)으로 삼고 있다고 한다.
이 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많다.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렸다고 할 정도로 신령스런 나무로 인식되어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조선 세종(世宗) 때는 정삼품(正三品)보다 더 높은 당상직첩(堂上職牒)을 하사받은 명목(名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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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석은 4각이며 4매의 길다란 판석(板石)을 놓았고, 단판(單瓣) 26엽(葉)의 복련(覆蓮:꽃부리가 아래로 향한 연꽃)으로 장식되었으며, 상대석(上臺石)은 8각으로 단판 16엽의 복련, 그 위에 8각의 탑신을 얹었으며 문비(門扉)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도 8각이며 끝부분에 퇴화된 귀꽃이 새겨져 있다. 비는 이수(촬首)가 없고 비신만 남아 있으며 글씨는 자경(字徑)이 1.8cm로 해서체이고 음각되어 있다. 비명은 권근(權近)의 찬(撰)이라고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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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2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지정되었다. 용문사의 관음전(觀音殿)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 대경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수양대군이 1447년(세종 29)에 모후(母后)인 소헌왕후(昭憲王后)를 위해 불상 2구와 보살상 8구를 봉안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절이 모두 불타버려 이 불상이 본래의 용문사 보살상인지 아닌지 확인할 가능성이 없을 뿐더러, 이후 어디서 어떻게 이곳에 봉안되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양식으로 보아 전형적인 고려 후기 보살양식을 계승한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금동관음보살좌상은 보존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상호(相好)에 미소가 없어 보이나 이목구비가 모두 자그마하고 양볼에 탄력이 있는 원만한 얼굴이며, 높게 결발(結髮)한 고계에 목조 보관(寶冠)을 쓰고 양어깨에 보발(寶髮)이 리본처럼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보관이 머리에 꼭맞지 않는 데다 목조이며, 조선 전기에 유행했던 보살관(菩薩冠)처럼 양쪽으로 흩날리는 관수식(冠垂飾)을 보이고 있어 원래의 관이 아니라 후대의 보수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어깨선은 완만하고 가슴은 당당하며 상체를 다소 뒤로 젖힌 모습이다. 수인(手印)은 중품중생인(中品中生印)을 지은 채 길상좌(吉祥坐)를 결(結)하였는데, 가슴에 수식(垂飾)이 달린 1줄의 영락(瓔珞)이 있고, 배 부분에는 군의(裙衣)자락을 묶은 매듭이 보이며, 왼쪽 가슴께는 승각기를 고정시킨 삼각형의 금구장식(金具裝飾)이 있다.
통견(通肩)의 대의(大衣)는 목 부분에서 한번 접혀 양팔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오다가 손목 부분에서 한번 접혀지고 오른쪽 소맷자락은 배 부분의 옷자락 사이에 끼워져 곡선 모양을 이루었으며, 발목 부분에서 부드럽게 중첩된 팔(八)자형을 그리며 양쪽 무릎을 덮고 그 위에는 영락이 장식되었다.
전체적으로 탄력있는 장대(長大)한 신체에 당당함과 화려함이 넘친다. 이렇듯 고계나 가슴과 양쪽 무릎에 영락이 드리워진 점, 왼쪽 가슴에 삼각형의 금구장식이 있는 점은 전형적인 14세기 보살양식이다. 따라서 14세기 말에서 15세기 초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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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글 - 용문사
사진 - 일부소구리홈갤러리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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