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서 훌쩍 떠나는 테마여정

영월 동강, 어라연 강변에 앉아

창현마을 2007. 8. 14. 10:52

 

영월 동강, 어라연 강변에 앉아

 

 

 

물고기의 비늘이 비단같이 빛난다는 여울. 어라연(魚羅淵).
누군가 이 나라를 떠나려했다가 가기 전에 꼭 한번 보고갈 곳이 있다는 친구에 끌려 왔다가,
그 경치에 취해 그만 이민을 포기했다는 전설아닌 전설이 회자하는 곳.
동강 댐을 건설하겠다는 정부와 맞서 벌어졌던 가열찬 환경운동의 현장에서 빠지지 않던 소재.

그 댐이 결국 백지화된지 수년 만에 찾은 동강은 이전의 그런 풍류가 숨쉬는 곳이 이미 아니었습니다.
강물은 탁해졌고, 물고기 찾기 만만치 않게 된 수상한 풍광.
그도 그럴 것이 어라연에서 불과 20킬로 상거인 상류에는 정선군 분뇨처리장이 들어 서 있고, 그보다 더욱 상류로 동강의 발원지라고나 할 오대산 자락 용평에는 도암댐이 썩은 물을 흘려 보내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이라고 요 몇 년 동안 엄습한 태풍과 폭우로 상류지역의 온갖 폐기물들이 동강으로 흘러내렸으니... 어쩌면 요즘이 그나마 동강의 경관을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말도 빈 말이 아닌 듯합니다. 바빌론 유수시절의 시온의 꿈이 어른거린 것은 감정 과잉이었을까요...
 
 
어라연으로 가려면, 그냥 거운리 섭새 강변에서 우측에 난 길을 따라 걷는 게 좋습니다.
사륜구동 짚차가 아닌 웬만한 다목적 스포츠 차량(SUV)들도 등골이 시린 파이고 골곡진 비포장도로가 초입입니다.
당연히 승용차야 접근 금지. 산길을 원하면 중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잣봉(537m)을 올라 조망을 구경하면 되고,
강변에서 물길을 느끼고 싶으면 우측으로 난 강변길을 따라 갑니다.
 
오늘은 강변을 따라 걷기로 합니다. 초입에서 1킬로 정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나면 이내 강변길 모래와 진흙이 군데 군데 섞인 길입니다. 예전에 시골에 다니러 가는 때면 으례 만나곤 했던 그 다정한 강변 길 말입니다.
그렇게 강변을 따라 조금 지루해질 만 하면 어라연 상회가 나타납니다. 밥은 팔지 않고 어묵과 전, 그리고 간단한 스낵 식품을 제공하는 곳. 상류에서 래프팅 배가 내려오다가 이제 거의 다와서 한숨 돌리는 그런 휴게실인 셈인 데, 물가 높은 곳에 자리 잡아 경관도 제법인 곳입니다. 옛 만지 나루터(가득찰 滿, 못 地, 후세에 댐이 들어설 것을 예상했던 이름인가?)
 
상회를 지나 10여분 만에 나타나는, 전산옥 주막이 있던 자리는 이제는 팻말이 하나 덩그라니 예전 일을 전하고 있을 뿐.
모두들 어디로 갔을까? 그 애절하고 고왔던 우리의 옛 사랑들은 다 어디에 담겨 있을까?
 
어라연이 거의 다 왔는가, 드디어 물흐르는 소리가 매우 시끄워지는가 했더니 바로 그곳이 된꼬까리.
뗏목을 타고 내려가는 이들 여럿에게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되기도 했던 그 험한 물길.
하지만 강변을 따라 걷는 이들이 보기에게는 그저  커다란 자갈 모둠 사이로 물길이 갈라져 두 갈래로 흐르는 곳일 뿐.
물소리, 자갈에 부딪치는 물 소리. 이전의 뗏군들의 애환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래프팅 배들이 지나쳐 갑니다. 하긴 뒤집어지건 부딪히건 별일없을 고무 보트에 헬멧과 구명조끼로 무장한 상태에서 된꼬까리는 마냥 즐거운 수로일 뿐이겠지요.
 
그러나 남편을 떼에 태운 아낙이, 그의 안부를 걱정해 선달음으로 강변을 달려가면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기를 숨어보던 그런 강변이었다는 옛이야기. 뗏목 타는 데 여자는 부정탄다하여 나타나지도 못하게 했기에 그 여인들은 그 험한 자갈 바위 너덜겅 강변을 숨어가면서 달려와 된꼬까리의 뗏목 운항을 엎드려 몰래 지켜 보았다는 그런 얘기들.
 
'된꼬까리 여울'이라... 어찌나 물살이 거칠던지 뗏목이 뒤로 꼬꾸라질 정도라 해서 생긴 지명으로 주막이 있던 곳.
당시 뗏꾼들이 부르던 노랫가락에도 전산옥 여인의 이름은 남아 있다는 데...
 
    눈물로 사귄 정 오래도 가지만,   돈으로 사귄 정 잠시 잠깐이라네
    돈 쓰던 사람 돈 떨어지니,   구시월 막바지 서리맞은 국화라
    놀다 가세요 자고 가세요,   그믐달 초승달 뜨고 지게 놀고 가세요
    황새여울 된꼬까리 떼 띄웠네,   만지산 전산옥아 술상 차려 놓게나
 
이내 길이 잦아드는가 했더니, 곧 자잘한 바위 너덜겅과 스크리(돌무더기)들이 등장합니다. 산 비탈을 따라 길이 나 있으나 그 길은 마지막 집으로 연결되는 것이고, 강변을 따라서는 이제 찝차로도 갈 수 없는 상황, 드디어 길이 끝나고 길이 시작되는 셈.
그렇게 30여분을 더 걸으면 어라연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백여미터를 남겨두고는 - 산으로 오르지 않으면 - 그저 바라 보아야만 하는 그런 애틋한 연인 사이일 뿐. 호젓한 강 속의 세 봉우리. 삼선암과 어라연.
 
그 강가에서 사람들은 마치 바빌론 강가 언덕에 앉아 시온의 영광을 노래하던 심정으로 망연자실하는가 봅니다.
매사 서둘러가며 무엇 놓치고 살지는 않았는지, 세상 이제 얼마나 더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지...
사람은 간 곳없고 물결 만 너울대, 제 인기척에 흠칫하는 나그네 가슴뿐...
 
 
  


                
어라연의 동쪽 (능암덕산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 능선)에서 촬영한 사진.
동강은, 사진의 오른쪽(북쪽) 상류에서, 왼쪽의 하류로 흐르는 데, 그 물길 가운데 삼선암의 세 바위가 놓여 있는 모습.
(전재: 접근 경로가 곤란해 흔치 않은 사진임)
 
보통,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은,
1. 섭새에서 만지나루를 지나 강변을 따라 접근한다면, 사진 왼쪽 강물의 상단에 보이는 모래톱 건너편 산비탈의 강가.
2. 섭새에서 능선을 따라 잣봉으로 올랐을 경우라면  어라연의 오른쪽(북쪽)에 보이는 돌출된 봉우리.
 


   

 
                
잣봉을 지난 능선(어라연의 북쪽) 돌출부에서 내려다 본 사진.
(전재: 두번째 경로로 접근하여 촬영한 것.)
잔잔한 물길과 거울같은 푸르름, 그리고 삼선암이 가경을 이룬 모습.
 





만지나루에서 강변을 걸어서 만난 어라연 초입...
(첫번째 경로로 접근해서 직접 촬영한 것)
모래톱과 구비친 강변을 휘돌아 흐르는 물소리가 일품인 경관. 
사진 왼쪽 1/4 쯤 부근에  보이는 바위가 어라연의 삼선암.

                
세상의 끝을 보고 돌아서는 듯, 어라연을 뒤로 한 발걸음은 터덜거리기 마련입니다.
마치 세상 끝 날까지 마음 속에 숨겨 두었어야 할 것을, 굳이 찾아가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는 보듬어 왔던 작은 희망을 놓고 내려서는 길인 듯. 너무 심각한가하여 솔직해지자면, 자동차에 길들었던 두 발이 또 두 시간 남짓을 걸어야 하니, 아무래도 볼멘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동강 백운산의 급경사 산행에 비하면 일도 아니니 그깐 발품에 툴툴댈 것도 아니지요.
힘들여 백운산을 오르면 다음과 같은 조망이 펼쳐 집니다. 제장 마을을 중심으로 한, 동강 제일의 산태극 물태극의 진경.
 
죽기전에 꼭 보고 가야할 내 나라 산하...
 
 

       


(전재: 동강 제장 마을 근처, 백운산 주변의 항공사진)
       

가는 길:  영동 -> 중앙 고속도를 이용, 제천 나들목.
제천 나들목에서 영월까지는 국도 38번(자동차 전용)이 개통되어 시속 90 킬로 가능.
영월 (청령포) 나들목. 영월 시내 거쳐...섭새(거운리).
거운리 다리 건너 바로 주차. (찝차가 아니라면 진입 말 것. 몹시 당황스런 험로)
우측(동쪽)으로 난 오솔길...걸어 2시간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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