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

수원 화성 (8) - 장대 2 ; 서장대

창현마을 2007. 3. 22. 08:56

 

 

 

수원 화성 (8) 

 

              -  장대 2  ; 서장대

 

 

 

 

 

 

 

 

 

 

 

 

서장대는 팔달산의 산마루에 있는데 유좌(酉坐) 묘향(卯向)이다.
위에 올라가서 굽어 보면 팔방으로 모두 통한다.

 

석성[석성산]의 봉화와 황교(皇橋)[대항교]의 물이 한 눈에 들어오고, 한 성의 완급과 사벽(四壁)의 허실은 마치 손바닥 위를 가리키는 듯하다. 이 산 둘레 백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

 

그래서 돌을 쌓아서 대(臺)를 만들고 위에 층각(層閣)을 세웠다.
앞쪽 대석은 4층인데 전체 높이가 5척이다.

댓돌은 3개인데 층계는 4개이고 대의 너비는 98척이다.


대 아래의 동서로 42척의 거리를 두고 좌우에 크고 붉은 의간[杆][큰깃대] 한 쌍을 나누어 세웠다.

상대(上臺)의 너비 87척 높이 2척이고,

아래 층각의 규모는 9간인데 가운데 한간은 사방 13척 2촌이다.

 

밑에는 판자를 깔고, 연잎 평난간으로 둘렀으며, 뒤쪽에는 분합을 드리웠다.

문지방 위에 임금께서 쓰신 큰 글자[화성 장대(華城將臺)]로 편액을 붙였다.


사면에 각각 긴 시렁을 내물렸는데 길이가 6척 5촌이고,

네 모퉁이에 각각 시렁 하나 씩을 붙였는데, 역시 사방 6척 5촌이다.


모두 네모난 벽돌을 깔고 바깥에는 둥근 기둥 12개를 세웠는데 높이가 각각 7척이고, 이것을 여덟 모의 돌기둥으로 받치었는데 높이는 각각 3척 5촌이다.

 

위 층은 한 간인데 사면에 교창(交窓)을 내고 판자를 깔아 바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그대로 아래 층의 반자(盤子)가 되었으니 곧 조정(藻井)의 제도라는 것이다.

그 서북쪽 모퉁이에 층사다리(層梯)를 세워서 위층으로 통하게 하였다.


옥상(屋上)의 한 가운데에 절병통(節甁筒) 셋을 세웠는데 높이가 6척이다.

대 위에서 위층 대마루 대들보까지 전체 길이가 21척이다.


단청에 오토(五土)를 사용하였고, 대들보 위는 회로 발랐다.

대 뒤에는 팔면으로 된 노대를 쌓고 그 뒤에 후당(後堂) 3간을 지었는데,

군무를 보는 곳으로 쓰려는 것이다.


서쪽 두 간은 온돌이고, 동쪽 한 간은 판자를 깔았다. 모두 창과 분합을 설치하고, 단청을 하였다.

앞 기둥에는 평난간을 설치하고, 뒷담 동쪽 끄트머리에는 판자문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