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

수원 화성 (5) - 성문 4 ; 창룡문

창현마을 2007. 3. 21. 17:57

 

 

 

 

수원 화성 (5) 

 

              -  성문 4 ; 창룡문

 

 

 

 

 

 

 

 

 

 

 

 

 

 

 

 

 

 

 

 

 

 

 

 

 

 

 

 

 

 

 

 

 

 

 

 

 

 

 

 

 

 

 

 

 

 

 

 

 

 

 

 

 

 

 

 

 

창  룡  문

 

 

 

창룡문은 화성의 동문이다. 화성에서 새 해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곳, 창룡문 밖에는 최근 조성한 감나무 공원이 있다. 좁고 짧지만 산책 길도 있고 기다란 나무 의자들도 잘 만들었다. 오래 된 감나무와 오밀조밀한 성벽이 어울려 더욱 좋은 곳이다.


까치 밥으로 남겨둔 두어 개의 감과 공원 바로 아래를 힘차게 달리는 자동차가 극명하게 대비된다. 까치 밥이 조상 전래의 양보와 아량을 날짐승한테 베푼 것이라면, 자동차는 삭막한 오늘의 현상들을 싣고 미래로 달려가는 것 같다.


창룡문은 희망의 문이요, 살아서 숨 쉬고 있는 문이고, 아름다운 문이다. 궁궐에서 세자가 거처하는 곳을 동궁(東宮)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궁은 궁궐의 동쪽에 자리잡기도 했다. 동궁이라는 상징은 다음 세대, 혹은 다음 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태양이 떠오르는 곳, 화성의 희망찬 아침을 맞이하는 곳이 바로 동문인 창룡문이다.
창룡문은 또한 아름답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크기를 가졌고 벽돌과 화강석의 적절한 색 배합, 기와와 기둥의 빛깔이 주는 천연스러운 대비가 창룡문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으로써의 기능이 지금도 살아 있는 문은, 화성의 네 큰문 중에 창룡문 밖에 없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창룡문을 드나든다.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가기 위해서 드나들고 있으니 문으로써의 제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어린이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문밖에 사는 사람들은 이 문을 통해서 학교도 다니고 시장도 간다. 음식을 배달하는 오토바이의 소리도 시끄러울 정도로 자주 들린다. 지나는 사람들의 애환도, 기쁨도 묵묵히 듣고 있으니 창룡문은 활발하게 살아 있는 것이다.

 

 

 

옹성의 제도는 독을 반으로 쪼갠 것처럼 해서 성문 밖을 에워싸는 것이다. 그리고 한쪽을 터놓아서 문을 드나들기에 편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의 흥인지문(동대문)과 같은 식이다.그러나 적군은 이 옹성 때문에 성문을 쉽게 깨트리지 못하게 된다.


커다란 통나무 따위로 문을 부수어야 하는데 큰 통나무를 가지고 도움닫기 할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만약에 적군이 이 옹성 안에 들어온다면 영락없이 독 안에 든 쥐 꼴이 된다. 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들의 전란을 겪고 얻어낸 뼈 아픈 교훈을 잘 반영한 결과이다.


옹성의 바깥쪽은 벽돌로 쌓고 안쪽에는 돌로 쌓았는데, 바깥쪽에 쌓은 벽돌을 옆에서 보면 배가 불쑥 나오게 쌓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시각적으로 벽을 더욱 튼튼히 보이게 하는 위력을 지닌다.

 

 

 

무지개 성문 왼쪽 벽을 보면 공사 실명제 판이 있다. 화강석 벽을 곱게 다듬어서 글씨를 새겼는데 지금도 잘 알아볼 수 있다. 팔달문의 그것은 쉽게 들어가서 볼 수 없고, 장안문의 것은 아예 없어졌으며, 화서문의 실명판은 무른 돌에다 새긴 듯 눈을 씻고 봐야만 볼 수 있는 것에 견주어 이 창룡문의 글씨들은 아무 때나 어떤 글씨들도 잘 볼 수 있다.


이는 화성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행운이면서 중요한 교훈을 얻어갈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부실 공사와 관련한 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다시 보여지는 공사 실명제 판이다. 이런 실명제 판은 화성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성곽에서도 볼 수 있으며,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단에도 있다.


그리고 국립경주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큰 토목 공사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실명제를 실시한 역사를 알 수 있다. 특히 경주박물관의 남산신성비는 신라 진평왕13년(서기 591년) 경주 남산에 신성을 쌓고 그 전말을 기록한 것으로 가치가 높은 금석문이다.


성을 쌓은 후 3년 안에 허물어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 임금의 명을 꼭 지키겠다는 맹세를 하고, 감독자와 기술자 대표의 이름을 적었다. 아마 가장 오래된 공사 실명제 흔적일 것이다.

 

 

 

 

창룡문은 외래 관광객이 가장 접근하기 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대형 버스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그 주차장에는 언제부터인지 건설 중장비들이 세워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창룡문 근처에 세워야 할 새 공중 화장실은 동장대와 활 터 사이에 숨은 듯이 세워져 있고, 창룡문 앞에는 간이식 화장실만 서 있다. 관광 안내소 또한 관광객의 접근이 쉽지 않은 곳에 서 있다.


관광객들은 성을 따라 도는데 안내소는 관광 길과 동떨어진 곳에 있다. 이는 사용자의 입장에서 다시 한 번 신중히 생각해야 할 문제다. 창룡문의 옹성을 벽돌로 쌓을 때 배흘림을 주어서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확보한 것을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실명제 판은 물론이고 감나무 가지 끝에 몇 개나마 까치 밥을 남겨두어 아량을 베풀던 조상의 숨결에서 우리가 취할 것은 없을까? 모두가 새 천년 새 천년 하지만 우리의 새 천년에 진정 필요한 것은 화성 속에 모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창룡문 밖 감나무 공원에는 희망의 미래를 예고하는 듯 신설이 내리고 있다.

 

 

 

 

 

 

 

글출처 : 수원화성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