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이 숨쉬는 산행지

적자봉 (보길도) ; 전남 완도군 보길도

창현마을 2007. 3. 19. 11:46

 

 

      보길도 적자봉 

  

                         ;  잔남 완도군

 

 

 


 

 

고산 윤선도의 산, 보길도. 그는 이곳에서 선계를 발견하고 정착했다. 이곳을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만들려 했던 것은 섬이 곧 산인 까닭이었다.

 

산에는 복숭아꽃 대신 동백꽃이 뒤덮여 만발해있다.

섬이 곧 산인 보길도는 적자봉, 수리봉, 광대봉, 망월봉, 미산, 뾰족산, 안산 등 명산이 깎아지른 해안절벽만큼이나 수려하게 솟아 보길도를 이루고 있다.

 

약 90퍼센트가 산이다. 보길도에서 와서 산을 찾지 않고 고산이 치장해 놓은 유적만 좇다 돌아간다면 보길도의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 고산 또한 산의 아름다움에 반해 보길도를 찾아 들었던 까닭이다.

 

청별 선착장에서 부용동으로 향한다. 고산 윤선도가 그토록 감동하여 찾아들었던 동네, 거센 바닷가 바람도 부용동에 들어서면 소리 없이 사그라진다.

 

바다가 보이지 않아 산골 마을과 다름없다. 산으로 둘러싸인 까닭이다. 부용동을 감싼 산들은 연꽃을 닮았다.

 

그래서 윤선도는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적자봉 아래 낙서재를 지어 거처를 마련했으며, 섬 이곳 저곳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동천석실 등 25채의 건물과 정자를 짓고 연못을 만들어 자신의 낙원을 만들었다.

 

부용동은 자연 그 자체가 고산의 유적이 된다. 부용동에만 ‘부용동 8경’이 있을 정도로 산 안에 무수한 절경을 안고 있다. 우리는 고산의 눈과 발이 될 수밖에 없다.


부용동 입구에 들어서면 조선 가사문학의 백미 ‘어부사시사’를 남긴 고산 윤선도 유적지 가운데 하나인 세연정(洗然亭)에 만개한 동백꽃이 단아한 모습으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고산이 계곡에 쌓아 세연지(洗然池)를 만들고 그 물을 다시 인공 연못인 회수담(回水潭)으로 끌여 들여, 그 가운데 정자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세연정이다. 세연지를 둘러싼 동백 숲은 한적한 멋이 풍긴다.

 

 

세연정에 붉게 타오르는 동백꽃

 

취재진은 곡수당에서 적자봉을 거쳐 동천석실(洞天石室)로 떨어지는 원점 회귀 산행을 계획하며 길을 나선다. 고산이 살았던 집터인 낙서재(樂書齊)에 올라선다.

 

터 뒤편에는 병풍처럼 소은병 바위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윤선도는 이곳에서 사색에 잠겨 한시를 지었다고 전한다.

 

올랐던 길을 내려서 큰길재로 거슬러가기 위해 곡수당(曲水堂)으로 발길을 옮긴다. 곡수당 터는 고산 자제 학관이 기거했던 곳으로 지금은 논, 밭으로 변해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군데군데 발굴 작업으로 그 터만 남아 있을 따름이다.

 

차낭골 개울물 건너 곡수당 터를 벗어나면 큰길재로 오르는 산길이 숲 터널을 이루고 있다. 큰길재 위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며 붉게 타오른다. 터널을 이룬 길은 완만하게 잘 나 있다.

 

예송리로 넘어서는 억새밭 안부인 큰길재까지 매 한 가지다. 재에 세워진 도로 교통 표지판과 유사한 이정표가 왠지 거북스럽다.

 

큰길재에서 광대봉을 뒤로하고 적자봉을 향하기 위해 남서쪽 능선을 탄다. 잠시 후 바위 지대에 다다르자 장막이 걷히듯 숲이 벗겨지며 사방이 트인다.

 

 

“우와, 참 좋네요.”
“산이 있어 보길도가 더 멋진 거 같아요.”


보길도의 별미인 전복죽을 맛보기 위해 서울서 내려온 김명진(28세)씨와 지난 밤 보옥리 민박집에서 밥상을 같이 받았던 함태영(31세)씨가 환호성을 지른다. 함씨는 보길도 도보 여행 대신 취재진과 함께 산행에 나선 것이다. 산행 도중에 꿩 깃털을 주워서 머리를 두른 손수건 사이에 끼워 넣은 폼이 역시나 뮤지컬 배우답다.

 

“근데, 세수했어요?”
산행 끝도 아닌 시작인지라 고양이 세수라도 했건만 바닷바람에 머리가 날리고 얼굴이 굳어 꾀죄죄했던 모양이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바람이 여전히 맵다. 하지만 누구의 얼굴에서도 피곤한 모습은 찾을 수 없다. 봄 머금은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까닭이다.

 

 
 
 

예송리 앞 바다가 전부 양식장이예요.”
스킨스쿠바 강사로 활동하며 청정해역은 다 가봤다던 김명진씨가 신기한 듯 외친다. 둥근 조약돌 해안과 상록수림으로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이 눈 아래 떨어진다.

 

이곳의 타원형 조약돌은 어느 해변의 자갈보다도 고르고 아름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약돌밭 앞은 풍성한 미역과 톳 양식장이다. 보길도 사람들은 조약돌밭에 그대로 배를 대고 채취해 온 미역과 톳을 바로 조약돌밭에 널어 말린다.

 

다소 가파른 길을 오른다. 숲 터널이 끝날 때마다 간간이 시원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다양한 수목들이 주변에 자리한다. 작은 돌탑이 서 있는 수리봉에 닿는다. 사방은 막힘이 없어 보길도의 산들이 한 눈에 잡힌다.


해안에는 파도와 바람이 맞붙어 엎치락뒤치락 싸우며 골짜기를 울린다. 산에 가득 들어선 동백나무 숲도 뒤흔들린다. 햇살이 닿은 이파리마다 퍼덕이는 물고기 비늘처럼 빛을 반사하며 ‘자르르’소리를 내며 훑고 지나간다.

보옥리 뾰족산은 망망대해를 호령하고


우리는 속삭이고, 떨고, 웃고, 소리치는 동백나무 이파리에 현혹되며 길을 나선다. 산등성이 길조차 길이 아닌 사방은 동백림이 막무가내로 에워싼다. 하늘도 뒤덮여 버렸다.
적자봉(430.3m) 정상에 선다. 조망할 수 있도록 바다 쪽을 향해 전망대가 서있다.

 

예작도, 추자도를 비롯한 다도해의 작은 섬들이 한 눈에 보인다. 그 모든 것이 하늘 높이에서 보는 듯한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앞 바다를 잠식한 양식장은 여전히 신기한 볼거리다.

 

하늘을 감싼 구름의 그림자가 바다에 떨어져 망망대해를 가른다. 태평양 수평선을 바라보며 무한한 꿈을 꾼다.

“어, 저거 눈 내리는 것 아녀요?”


땅끝에서 보길도로 건너오기 직전에 남도엔 눈이 퍼붓듯 왔다. 해남 곳곳에 내린 눈을 보며 보길도에서 첫 설경을 만끽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광대봉 위쪽으로 온 천지를 은세계로 만들 듯 내리는 눈이 거센 바람에 적자봉까지 휘몰아치지만 내려앉은 눈은 한 점 쌓이지 않고 땅바닥을 살살 구르다 녹고 만다. 봄 준비를 마친 따사로운 산 앞에는 속수무책이다.

 

부용동을 굽어보며 솟구친 적자봉(430.3m) 산등성이는 섬을 가르는 경계 지점처럼 바다의 기운을 막아 고산에게 이상향을 선사했다. 반면 우암 송시열은 해안에만 머물다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글을 해벽에 새기고 제주도로 유배 갔다.

 

 그가 부용동에 들어서지 않았던 까닭은 취향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이었던 그가 남인 윤선도와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 당했던 반감이었을까.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덩치 큰 바위 하나가 작은 안부 지점에 나타난다. 누룩바위쯤 될까, 오는 동안 두드러진 바위가 없었던 터다. 이정표에는 누룩바위가 적자봉에서 뽀래기재 방향으로 380미터 지점이라고 나와있다.


바위에 오르던 김명진씨가 일자로 쩍 갈라진 바위를 뛰어 넘은 후 겁을 먹었는지 평지나 다름없는 평평한 곳에서 옴짝달싹하지 않고 울음을 터뜨린다. 번지점프 강사라도 해볼까 했다던 그녀만의 독특한 고소공포증이었다.

 

또다시 숲의 바다에 빠져든다. 산 전체를 상록수림이 뒤덮고 있다. 앞장 선 함태영씨의 흥얼거리는 노랫가락을 들으며 바람이 유독 세찬 425봉을 넘어 선다.

 

좌측으로 망망대해를 향해 우뚝 선 뾰족산(195m)과 불무섬이 내려다보인다. 곧이어 당도한 뽀래기재는 보옥리 보죽산과 부용동, 망월봉과 적자봉의 갈림길이다. 뛰어난 솜씨를 지닌 조경사의 손을 탄 듯 사거리는 멋진 터널로 꾸며져 있다.

 

망월봉(望月峰, 384m)과 선창리재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산줄기는 서북쪽을 향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틈 사이에서 커피를 끓여 마시고 나선다. 바람이 폭우처럼 쏟아진다.

 

바다를 향해 절벽이 드러나 있다. 그때마다 새삼스러울 것 없어도 바다를 향해 서본다. 솟구치는 바람이 옷자락을 휘어잡고 끌고 가려 한다.

 

 

금빛 억새 일렁이는 남은사 길목

 

선창리재로 떨어지기 직전 마지막 오르막, 햇빛이 드는 곳에 식탁바위가 나타난다. 바위를 우회하여 나가면 암릉지대다.

 

선창리 바닷가 풍경이 왼쪽으로 펼쳐진다. 곧 100평쯤 되는 편편한 거대한 바위 위에 선다. 표면에는 공룡 발자국이라도 찍힌 듯 듬성듬성 홈이 패여 물이 고여있다. 부용동 마을이 바로 바위 밑이다. 골은 ‘S’자를 형성하고 있다.

 

선창리재에 내려서면 전주최씨 묘가 넓게 자리한다. 선창리와 부용리를 잇는 재는 바닥의 굴곡이 심하지만 지프는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널찍하다. 부용동으로 500미터쯤 내려서면 왼쪽으로 남은사로 통하는 길목이 나온다.

 

 입구는 돌탑이 세워져 있다. 사찰 오르는 길 주위는 돌담을 이루고 있다.

억새 일렁이는 왼쪽 숲으로 들어선다. 역광을 받은 억새는 금빛으로 투명하게 빛난다. 너무도 포근한 느낌이 스며든다.


돌담을 넘어 남은사로 오른다. 30분쯤 오솔길을 따르다 보면 8부 능선쯤에 자리한 남은사에 다다른다. 입구에는 패다 만 장작개비가 놓여있다. 조그마한 약수터도 있다. 대나무와 동백림이 우거져 절을 감싸고 있다. 아담하고 조용한 사찰이다.


법명을 밝히길 꺼리는 스님이 인화된 수십 장의 사진을 들고 나온다. 초점이 흐릿할지언정 황홀할 정도로 멋진 일몰 사진이다. 뒷산에서 찍었다고 하니 남은사 뒷산 정상이 일몰 명소인 듯 싶다.

 

스님께 물어보니 동천석실로 통하는 길은 도중에 끊겼다고 한다. 확인을 위해 원시림으로 들어섰지만 길이 점차 좁아진다. 마지막 배편 시간에 아쉬움을 남기고 부용동으로 내려선다. 산행을 하면서 바라보았던 보길도의 선경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사람과 산 - [글|강윤성 기자 사진|신준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