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 곡성 목화밭여행
내달 중순까지 목화꽃송이 절정…섬진강변 증기기관차 타면 낭만과 절경에`푹`
전라남도 곡성군이 조용한 소리로 메마른 가을 감성을 불러내고 있다. 하얀 목화솜꽃이 그렇고, 섬진강변 기차길도 그렇다. 낮은 소리로 흐느껴 우는 듯한 도림사 인근 폭포들도 우리에게 맑은 울음을 들려준다. 떠들썩하고 숨 막히는 도시를 떠나 잠시만 이곳에서 쉬어보자.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정지된 시간`과 아름다운 기억을 안겨줄 것이다.
▶새하얀 솜꽃, 메마른 자들을 간질인다=순결하다. 슬프지만 환하다. 깨끗하면서도 포근하다. 봄에 피지 않아도, 굳이 형형색색의 빛을 발하지 않아도 순결하다. 춥고 가난한 날을 노래했던 시인 박노해의 시(`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가 마음에 아리게 다가와 박히는 순간이다.
흔히 `가을 풍경`하면 갈대나 단풍을 떠올린다. 하지만 하얀 목화솜꽃이, 탐스러운 솜사탕 같은 그 몽글몽글한 것들도 가을 연가를 부르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아니, 차고도 넘친다. 단, 이젠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전남 곡성에서 본 목화솜꽃밭의 풍경은 메마른 감성을 하얀 아이의 솜털로 그러는 것처럼 서서히 간질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4년 6000여평 터에 조성된 `겸면 목화공원`에 가면 새하얀 솜뭉치를 안고 있는 목화 무리를 만날 수 있다. 그리 길지 않다. 11월 중순까지니, 숨가쁜 추석 연휴 후 한숨 쉬고 나면 금방 사라질 것들이다. 서둘러야 한다.
목화꽃은 처음엔 연노란색이다가 곧 자줏빛으로 바뀐다. 가을이 오면 자주색으로 변하는 목화꽃, 붉은 이파리를 단 열매인 다래, 다래가 벌어져 하얀 솜을 뿜어내는 솜꽃의 세 가지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을이 더 깊어지면 그땐 숨 막히게도 온통 하얀 솜꽃투성이가 된다. `붓두껍` 문익점 선생도 지하에서 방그레 웃고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목화꽃만 꽃이랴. 가을이 되면 겸면 일대는 목화꽃에 코스모스ㆍ야생화 등이 어우러져 봄 못지않은 꽃길을 이루곤 한다. 목화길 중간중간에는 토종 열매작물 울타리굴이 조성돼 있다. 이곳엔 조롱박ㆍ길쭉이박ㆍ여주ㆍ수세미ㆍ꽃호박 등 7~8종의 귀한 토종 과실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사방이 흐뭇하고 포근한 풍경들이다.
▶기찻길을 타고 오는 추억, 그 오래된 기억=곡성군 오곡면 오지리에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은 로맨틱하다. 이름만큼 그렇다. 이곳은 지난 1999년 전라선 철도 개량공사로 폐선된 철로와 옛 곡성역을 이용해 철도공원으로 조성한 이후 각종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이용되며 곡성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 특히 인기 있는 것은 기차선로를 이용한 `철로 자전거`와 가정마을 간이역까지 다녀올 수 있는 `증기기관차`다. 특히 섬진강 강바람을 맞으며 오래된 기억에 잠길 수 있는 증기기관차는 놓쳐선 안 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 감탄했던 곡성~구례 함께 달리기 때문에 주변 경치 또한 일품이다. 주말에 하루 4번, 13㎞의 구간을 운행한다.
▶도림사에 가면 나도 `도인`=곡성군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찰인 도림사는 도선국사ㆍ사명대사ㆍ서산대사 등 유명한 도인들이 모여들어 숲을 이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신라시대인 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도림사는 사찰뿐 아니라 인근 계곡으로도 유명하다. 해발 735m의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동악계곡(도림계곡)과 성출계곡은 보는 이의 말을 잊게 한다. 도인이 아닌 사람이 가도 도인이 될 듯한 곳. 괜히 도림사가 아니다. 문의는 곡성군청 관광홍보과(061-360-82240)로 하면 된다.
김이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