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서 훌쩍 떠나는 테마여정

축제 들뜬 ‘곡성 목화밭’

창현마을 2006. 9. 20. 13:42

 

 

 

 

축제 들뜬 ‘곡성 목화밭’


△ 목화꽃에서 솜뭉치를 내밀기까지. 갓 핀 목화꽃(연노랑색), 열흘쯤 뒤 주홍색으로 변한 꽃, 다래, 다래가 검게 익어 터지면서 속살이 변한 솜뭉치를 내민다. (위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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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서여행의 열기를 안고 우리는 다시 일상속으로 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들떴던 뒤끝의 일상이란 허무하기 그지없다. 그 허무를 메꾸는 방법으로는 일상의 주변에서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좋다.

     

    해마다 이 무렵 허무함을 채워줄 나들이 대상이란 흐드러지게 핀 메밀꽃이거나 코스모스꽃밭이다. 그러나 메밀꽃이나 코스모스꽃은 아직 조금 이르다. 어떤 이들은 성급히 억새꽃을 기다리기도 할 것이다.

     

    70년대 말 이런 노래가 있었다.

    우리 처음 만난 곳도 목화밭이라네/ 우리 처음 사랑한 곳도 목화밭이라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사랑을 약속하던 곳/ 그 옛날 목화밭 목화밭…

     

    마땅히 마음 둘 곳을 찾기 어려운 이때 우리 일상 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목화에 대한 회상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목화는 고려말 문익점 선생이 원나라에 사신갔다가 돌아오면서 붓대롱 속에 감추어 들여와 번식시킨 것이다.

     

     목화의 원산지는 아프리카 남부, 인도, 안데스산맥 북부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문익점은 3년의 시험 끝에 재배에 성공하였고, 그의 아들 문래가 실 짜는 방법을 발명하였으며 손자 문영이 면포짜는 법을 고안하였는데 그 뒤 100년도 되지 않아서 널리 보급되었다.

     

     

    누런꽃 주홍꽃 섞여 겸면천 500미터길이 짜~안
    단물 듬뿍 다래 따먹기 딱좋게 여물어
    큰아비 어릴적 친구들과 노닐던
    눈물어린 목화밭으로 푹신, 되돌아가볼까

     

    문익점이 도입한 면화는 아시아면이었는데, 1905년에 일본영사 다카마쓰가 육지면을 도입하여 전남 목포 고하도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 뒤 경기도 이북에서는 주로 아시아면이 재배되었고 경기도 이남에서는 육지면이 재배되었다.

     

    전라남도, 경상북도, 평남, 황해도가 주산지였는데, 1905년 육지면이 도입된 이후에 생산이 급격히 증가하여 광복 당시에는 33만 정보에 11만톤이 생산되었으나 그 뒤 생산이 급격히 줄어 요즘은 목화농사 짓기를 볼 수 없다.

     

     목화의 섬유는 주로 면사, 면직물, 혼방용, 그물 등의 방직용과 이불솜, 옷솜, 탈지면 등의 제면용 또는 셀룰로이드 원료 등 공업용으로 쓰이며, 열매는 기름을 짜 식용유, 버터, 마가린 등의 제조에 쓰인다. 특히 초가을 무렵 목화의 열매인 다래는 단맛이 농익어 시골아이들의 군것질거리이자 해소천식의 특효약으로 아낌을 받았다.

     


    △ 목화 열매인 다래의 속살. 단맛이 많은 군것질거리다.

    삶의 물질적 부분이 의·식·주로 이뤄짐을 감안하면 목화로 만든 무명베가 이땅의 옷문화에 남긴 공헌은 혁명이라고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화학섬유가 판을 치고 있는 오늘날 완벽한 자연산인 면제품에 대한 선호는 크지만 면이나 목화 자체에 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크지 않다.

     

     

    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목화재배는 한 해 농사의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했기에 당시 농가에서 애지중지하던 면농사 농기구는 지금도 중년층의 추억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물래니 씨앗이니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또 학교를 갔다 오거나 소꼴을 뜯기는 길에 다래를 따먹던 일, 목화꽃을 따서 머리나 귀에 꽂아보던 일도 생각하면 꿈같은 추억으로 다가올 것이다. 바로 지금이 목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다래를 맺어가고 있을 즈음이다. 목화는 노르스름한 상아색 꽃을 피운다. 꽃은 한 열흘 뒤 주홍빛깔로 변한다.

     

     따라서 이 무렵 목화밭에 가보면 한 나무에 누런 꽃과 붉은 꽃이 동시에 피어있다. 또 붉은 꽃은 이윽고 목화 열매인 다래를 키우면서 지는데, 이 다래라는 것이 ‘목화밭’ 추억에 큰 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있다. 다래는 막 맺었을 때는 콩만하던 것이 부쩍부쩍 커서 금새 아기 주먹만해진다. 이때 따서 하얀 속살을 빼 아작아작 씹으면 단 물이 듬뿍 들어있어 참 좋은 군것질거리가 된다. 다래는 서리가 내릴 무렵 색깔이 까맣게 변하고 속살은 익어 터져서 솜이 된다.

     


    △ 곡성 겸면천 목화밭길. 창공에 울려퍼지는 매미소리를 배경으로 노르스름 볼그스름 피어잇는 목화꽃과 토실토실 열려있는 다래는 이곳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우리의 토종 추억이다.

    이 ‘목화밭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곳이 전남 곡성군 겸면 겸면천변 목화길이다. 이곳엔 500m에 이르는 천변길 양쪽에 봄에 목화를 심었는데 무더위에 무성히 자라서 지금 한창 누런 꽃과 붉은 이 섞여 피어있다.

     

    다래도 딱 따먹기 좋은 크기로 여물고 있다. 또 목화길 중간중간엔 ‘토종 열매작물 울타리굴’을 조성해 놓았다. 이곳엔 조롱박 길쭉이박, 여주, 수세미, 꽃호박 등 7~8 종류의 귀한 토종 과실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겸면에서는 15일부터 17일까지 “자연과 함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요”라는 주제로 목화축제를 연다.

     

    이 목화축제는 전국 유일의 목화축제이다. 축제는 목화길 건강달리기, 노인 게이트볼대회, 청소년 사생대회, 농특산물 판매, 목화(종자, 솜, 화분) 전시 판매 등의 행사로 엮어진다.

     

    면민들이 재배한 목화화분은 화분 하나에 한 그루씩의 목화를 심었는데 모두 누런꽃과 주홍색꽃을 서너송이씩 달고 있다. (061-362-1031 : 겸면사무소, 011-343-2258 : 추진위원회)

     

    최성민 기자 smchoi@hani.co.kr

     


    ■ 가는길 = 호남고속도로 옥과나들목으로 들어가 우회전하여 곡성나들목쪽으로 1.5km 가면 왼쪽에 겸면사무소가 나온다. 겸면사무소 맞은편 1km 지점 고속도로에 붙어있는 내가 겸면천이다.

     

    분수다리와 함게 '토종 열매작물 울타리굴'이 보이는 곳이 목화축제장이다. 목화축제장에서는 고속도로 석곡나들목 쪽으로 나와 보성강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면 물놀이하기 좋은 압록유원지가 나온다.

     

    유원지에 이르는 보성강가엔 곡성군이 만들어놓은 원두막이 곳곳에 놓어있어 피석객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 석곡면 보성강가엔 3km에 이르는 '보성강변 코스모스길'이 있다.

     

     

    숙소는 곡성읍과 옥과읍에 모텔이 5곳 있다.

    곡성나들목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녹주옥반석 찜질방엔 독방(2만5000원)과 야외풀장이 있다.

     

    최성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