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해안선 기행
(9) 마산
‘시간이 사라진 바다’에서 마산의 해안선은 시작된다. 진전면 ‘시락’이 그곳이다. 유난히 맑은 날, 바람도 나뭇잎처럼 싱그러운 연 초록색이다. 이런 날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와 접한 마산의 바다를 처음부터 접하고 싶다면 시락으로 간다.
마산역에서 아침 7시50분부터 하루 네 번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탄다면
경남대와 진동, 진북을 거쳐 진전면 시락 정곡까지 초록색 해변여행을 할 수 있다. 시락 사람들은 고성 동해와 만나는 동진대교 안쪽 바다를
‘도안’ 즉, 섬 안쪽의 바다라고 불렀다.
대교를 지나 진전면 쪽으로 돌아 나온 해안선이 만나는 곳이 창포만이다. 봄철 여인네
머릿결 향기가 나는 그 바다가 요즘 소란스럽다. 국도 확장공사에 따라 창포리 입구부터 바다 쪽으로 1062m 가량 설치된 2.2m 높이의 방호벽
때문이다.
사람 키를 넘는 그 높이 때문에 도로변 15개의 횟집은 물론 주민들이 영업과
직결되는 조망권을 빼앗겼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시행을 한 경남도는 2003년 태풍 매미와 같은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는 해양수산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는 입장이다.
‘마산’이라는 도시의 해안 첫 대목에서 만난 이 사건은 상징적이다. 도시의 바다는 특히 개발 계획으로 몸살을
앓는다. 해안은 이미 자신의 얼굴을 빼앗긴 채 사람들의 손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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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원쪽 봉암대교에서 바라본 마산만 야경. | ||
△주말 길 막힐 때 찾아드는 해안길
창포에서 암하로 나오면 마산~통영 국도다. 해안길은 국도와 별도로 이곳 암하나 다음 마을 율티에서 진동 쪽 고현으로 통한다. 주말이나 명절 길 막힐 때, 아는 사람들은 촉새처럼 이 길을 찾아든다. 아직 율티에서 재 넘어 진동 선두마을까지 해안도로가 채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좁은 산길을 넘는 차량 행렬에 부대껴야 하는 주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선두마을 중년부부의 미더덕 다듬질. 바다나 농촌에서는 부부의 호흡이 어디든 살갑다. 2인1조로 손을 맞춰야 일이 가능하기 때문일까. 선착장 한편에 그늘을 드리고 앉아 참 미더덕, 개 미더덕(오만둥이) 손질에 바쁘다. 인심이 좋아 작업하는 궤짝 한쪽에 방금 껍질을 벗긴 미더덕을 내놓는다. 미더덕을 씹으면 입속에 ‘톡’ 터지며 퍼지는 그 향기는 유리아미노산 성분에 기인한다. 마산에서 전국의 70%를 생산하고, 노화억제에 항암효과까지 거론되니 명물 중의 명물이다.
선두 다음 장기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멸치를 말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새벽에 잠을 줄여 잡아온 멸치를 날 좋은 오전 서너 시간 말려 박스로 담아낸다. 한 박스에 만원 안팎. 멀리 고성까지 나가는 멸치잡이다. 실적이 좋지 않으면 한 드럼에 10만원 넘는 동력선 연료값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기를 써야 한다. 미더덕에 멸치 말리기 풍경은 장기 너머 고현마을에서 규모가 더욱 커진다. 미더덕 본산지로 알려진 이 마을에서 건너편 송도 양도 가는 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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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동면 광암포구. | ||
△구산면 장구의 딱새 잡이
진동면 면소재지에서 광암마을 빠지는 길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 때 해수욕장이 있었고, 지금은 바닷가 너른 터에서 불꽃낙화축제나 미더덕축제 같은 진동의 큰 행사들이 집중되는 곳이다. 횟집을 하는 아주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올해는 해수욕장을 개장한다 카던데예. 그래 돼야 장사가 될낀데…” 곧 알아보았다.
창포에서, 고현에서 짧게짧게 끊어졌던 해안도로가 광암 안쪽에서는 멀리 구산면까지 길게 이어진다. 먼저 이름이 야문 다구. 마을 앞 바다에 희한한 모양의 ‘대섬’이 있다. 마치 고개를 쳐든 악어같은 모양의 섬이 금방이라도 거대한 몸집을 쑤욱 올릴 것 같다. 이제 구산면으로 접어든 해안선. 명주 욱곡 지나 ‘딱새’라는 이름의 바닷가재 잡이를 보기 위해 장구마을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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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락보다 굵은 미더덕 손질로 선두마을 부부는 흡족하다. | ||
딱새, 털치 등이 여기서 잡히는 바닷가재의 다른 이름이다. ‘쏙’이라는 놈은
비슷하게 생겼지만 크기와 종류가 다르다고. 쏙이 주로 갯벌에서 잡혀 낚시 미끼로 쓰이는 반면 딱새는 푸욱 삶겨 사람들 술상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장구마을 어선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처음엔 무뚝뚝 했지만 점점 더 이야기에 재미를 붙였다. “쏙이야 갯벌 구멍 속에다 기구를
넣어 잡제. 뻘 속을 살살 후비면 이놈이 간지럽는 긴지, 성이 난긴지 달랑 끝을 물어 잡히삐는기라. 딱새는 바다로 나가 그물을 쳐야제. 쏙에다가
비교할끼가. 요놈들 토실토실하게 많이 잡히면 우리가 돈 버는 기제.” 아주머니는 그물을 한올한올 벗겨 토실한 몸통을 불쌍하게 오그리고 있는
딱새를 어선의 물통으로 던져 넣었다. 딱새는 3월부터 5월까지, 쏙은 6~7월까지 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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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m가 넘는 방호벽이 창포마을과 바다를 갈랐다. | ||
△끊임없이 개발되는 도시의
바다
구산면 원전 난포에서 수정 쪽으로 돌아 나오는 길에 옥계마을 가는 길이 있다. 산등성이에 서면 진해만 전경과 멀리 마산만의 모습을 함께 보게 된다.
맨 왼쪽 마산만부터 오른쪽으로 창원의 귀곡동과 진해 소모도, 해군작전사령부와
사관학교, 진해시 앞바다 등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앞으로 가게 될 마산만과 창원 진해의 바다를 여기서
어림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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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안선을 따라 가다 공사가 번잡하게 이뤄지고 있다면 어김없이 시가지에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름다운 해안선은 많다. 그만큼 보존해야 할 바다가 많다는 말이다. 고성에서 넘어와 처음으로 마산 바다가 시작되는 진전면 시락마을 앞 포구. 잔잔한 물위에 낚싯배들이 줄지어 강태공들을 기다리고 있다. | ||
해안선은 덕동을 지나 가포에서 본래의 제 숨결을 잃는다. 이곳에 겹친 거대한 개발공사는 해안을 그냥 두지 않았다.
최고의 교각 높이를 자랑한다는 마창대교 공사와 20만평 이상의
가포만 매립공사는 도시의 바다를 읽게 한다. 그만 눈을 질끈 감고 고갯길을 돌아 가포동의 시민버스 차고지 위에 서면 마산만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이곳은 마산의 야경을 감상하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이 언덕은 긴 역사 속에서 마산만을 지켜봤으리라. 일찍이
1920년대까지 전국의 명소였다는 월포해수욕장(현 대한통운에서 마산세관 일대까지)을, 대단위 매립으로 자유무역지역에 자리를 내준 양덕과 봉암의
갯벌을. 신포동 매립지 끝에서 마산 서항부두까지 앞으로 매립될 땅도 지켜보겠지.
그렇게 서항과 신포동 매립지, 또 자유무역지역과
한진중공업 등 극히 일부의 소유자에게 빼앗긴 해안선은 봉암동 갯벌에 이르러 다시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온다.
창원과 마산의 경계에
만들어진 갯벌생태 체험장에서 장화를 신고 갯벌에 푸욱푸욱 빠지는 아이들의 천진스러움과
만난다.
이일균 기자
- 경남도민.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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