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해안선 기행
(8)고성
고성군의 해안선은 사실, 앞서 소개된 통영 거제보다 먼저다. 맨 서쪽 하동에서 남해 사천 등 동쪽으로 향하는 순서로 볼 때 그렇다. 사천시 향촌동 남일대 해수욕장과 코끼리 바위 다음에 고성군 하이면이 나온다.
그러나 고성군의 몸통이 통영 거제 보다는 동쪽인데다, 해안선의 동쪽 끝이 마산시 진전면과 경계해 있어 순서를 뒤로 늦췄다. 고성은 요즘 요란하다. 회화면 당항포에서 열리는 ‘공룡 엑스포’에는 전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당항포는 마산과 붙은 고성 해안선의 맨 오른쪽.
사천 해안과 경계한 하이면 덕명리 또한 크고 작은 공룡발자국과 공룡박물관으로
유명하니, 고성의 해안은 공룡으로 시작해 공룡으로 끝난다. 그 해안을 쫓아가며 ‘공룡’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고성 사람들의 기질을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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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겁의 세월로 퇴적된 바위를 한낱 낚시꾼이 밟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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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전마을 주민의 공룡 울음 같은 분노
삼천포 항이나 고성읍 방향에서 국도 77호선을 따라가면 하이면 덕명리 상족암과 공룡발자국 화석지를 찾을 수 있다. 어귀의 제전마을에서 실바위까지 6㎞ 가까운 공룡 발자국 화석은 국내 최초에 해당되는 1982년, 경북대 발굴팀이 발견한 곳으로 유명하다.
마을부터 설치된 나무 산책로를 걸으면 덩치 작은 수각류 공룡의 발자국부터
‘아라고사우루스’처럼 거대한 용각류 공룡의 것까지 재미있게 관찰할 수 있다. 해안 암벽의 첫 고갯길을 돌면 불쑥 ‘티라노사우루스’가 나타나고,
공룡박물관 다음 고개를 돌면 암벽 사이 동굴에서 퇴적층을 이룬 바위의 역사를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은 산책로 입구의 제전마을 주민의
분노가 길손을 맞이했다.
“방 도배도 새로 하고 간판도 싹 바꾸고, 준비는 ‘쎄’가 빠지게 했는데 손님 드는 건 평소하고 똑
같습니더. 이기, 뭐 입니꺼?”
공룡엑스포 행사를 대비해 제전마을의 횟집과 숙박업소가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정작 행사장인 당항포와
공룡발자국 화석지가 연계되지 않는다는 푸념이었다.
“동네에다 꽃(금송화)도 새로 심었다니까 예. 진짜 공룡 유적지는 여 아입니꺼.
버스 예? 안 옵니더.” 마을과 조금 떨어진 박물관 쪽으로는 관광버스가 어느 정도 들어왔다.
그렇지만 모처럼의 호황을 기대했던 인근 업소에는 손님이 들지 않으니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다. 당항포에도 공룡의 화석이 있고, 지형적으로 대전-통영 고속도로 등 인접 도로와 가깝다는 것이 고성군의 입장이다. 공룡 세상의
이면에 드러난 사람들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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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동마을 돌담 사잇길을 경운기가 힁허케 달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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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일에는 멋들어진 돌담장 마을
얼마전 국가의 전통 문화재로 지정된 하일면 임포삼거리 위 학동마을에 가기 위해서 1010번 지방도를 탄다.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곳이 동화리 소을비포 성(城)지. 조선 전기 때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은 그럴 듯하게 복원돼 볼만 하지만, 정작 볼거리는 딴 데 있다.
마을 안길에 수북한 가래비 묶음. 굴 양식 하는데 쓰이는 가래비 묶음이 마치
갑자기 확대된 엽전 꾸러미 같다. 마을 사람들은 ‘소을비포’라는 독특한 지명에도, 그 위의 성에도 별 관심이 없다. 중국에서 들여온다는 가래비
값이나 부디 오르기만 해야 할 굴 값이 언제나 걱정거리다.
그리고 임포삼거리의 학동마을. 예전부터 도 지정 문화재였던 ‘최영덕씨
고갗 등 독특하고 야무진 모양의 돌담장으로 전국의 아홉 마을과 함께 전통 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즈넉한 돌담장이 이 마을에 충분한 이유는 해안과
인접한 지형 특유의 퇴적암 때문.
주민 최정철(67)씨는 “내가 나기 전부터 돌담장이 많았소. 진흙보다는 평평한 돌이 더
많았거든. 담장 전부 다 이렇지 뭐.” 경운기를 타고 돌담장으로 둘러싸인 마을 안길을 지나가던 터였다.
인사를 드렸더니 오던 길의 두 배로 경운기 속도를 올려서 갔다. 사진의
배경으로 천천히 가기를 기대했지만, 오히려 거슬릴까 걱정이 되셨나 싶다. 그래도 한참을 갈만큼 마을 안길은 충분히 길다.
삼산면과
고성읍에 이르러 해안선은 도로와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했다. 삼산면의 병산, 고성읍 수남리의 ‘철둑’이 그나마 트인 바다를 낀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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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이 좋았다. 상족암 동굴 속 바닷물이 빠졌을 때 건너편 사량도를 우러렀다. | ||
△ 거제 통영 바라보는 동해면의 바다
1900년대 초 간척사업 당시 제방위에 철로를 깔아 이름을 얻은 철둑의 회센터에서 출출해진 배를 채울 수 있다.
고성읍에서 14번 국도를 타면 ‘바다휴게소’라고 쓰인 거류면 월평리와 통영시 도산면의 해안선 경계와 만난다. 길을 가로질러 거류 동해 쪽으로 향하면 통영 거제를 바라보는 동해면의 바다에 접어든다.
거류면의 끝 ‘당동’마을은 듣기에도 흥겹고, 구학포 우두포 등
동해면이 깊어질수록 보이는 바다는 넓어진다.
‘작은 구학포’ 마을에서는 “마산에서 왔다는 사람들이 ‘딱새’도 모른다”는 지청구를 들었다. “딱새, 털치, 속, 전부 다 가재의 다른 말 아입니꺼. 마산 아저씨들이 진동에서 많이 나는 딱새를 몰라?” 바다 사람은 다들 맵다지만 여기도 여간 아니다.
그래서 고성 사람들은 아예 호방하거나, 야물거나 개성이 강하다고 했던가. 이
마을은 딱새에다 도다리, 돌게까지 특산물이 많다. TV 방송 ‘6시 내고향’에도 소개가 됐다고. 기특한 ‘6시 내고향’ 아닌가. 동해면 남쪽의
바다는 우두포 소공원과 ‘해돋이 공원’에서 감상하는 게 좋다.
갑작스런 바다 수면의 변화는 사람을 당황하게까지 한다.
마산시 진전면과 통하는 동진대교 안쪽의 바다, 아직도 고성의 해안선은 거류면 마암면 회화면 등 한참이나 남아있다.
그 잔잔한 바다 위 ‘뗌마’라는 무동력선에는 두세 명 씩의 낚시꾼들이 수면보다 잔잔히 낚시를 하고 있다. ‘잠 오겠다’ 싶다.
△ 호수와 같은 당항포의
바다
당항포 바다가 항상 고요했던 건 아니었다. 1592년 7월13일 이순신 장군은 휘하 이억기 원균과 함께,
지형을 잘못 읽고 고스란히 갇힌 왜선 20여척을 불태웠다. 왜군이 당항포의 바다를 사천 쪽과 연결된 것으로 착각했다 하는데, 같은 내용의 남해
노량처럼 이곳에도 구전돼온 일화가 있다.
임란 전 고성읍 수남리에 있던 ‘꼽추집’이라는 술집의 기생 ‘월이’가
이야기의 주인공. 그녀 역시 임란 직전 해안의 지형을 파악하러 온 왜의 밀사를 꾀어 잠들게 한 후, 당항포의 바다를 사천과 통하는 것으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동해면 장기마을 앞에서 바다의 개펄과 도로의 선은 묘하게 함께
흐르고, 대곡리 성나루 해안의 밭에서는 70대의 노부부가 흙을 일궈 나중에 메주 만들 흰 콩을 심고 있었다. 더 없고, 덧없다. 해안선은 거류면
거산리 ‘간사지’에 이르러 인공의 둑에 가로막혔다. 최근 ‘마동호 매립계획’으로 논란이 된 이곳은 철새 도래지로 10년 전부터 보호돼온
26만평의 갇힌 바다다.
이름처럼 왜가리 떼를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간사지 다리를 건너면 마암면 두호리. 인근 14번 국도를 찾아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룡 엑스포 행사가 벌어지는 회화면 당항포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1002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해안선은 마산시 진전면 시락마을로 접어든다.
이일균
기자
- 경남도민.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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