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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을 걷다] - 진부 가는길 봉긋 솟은 2개의 만과봉

창현마을 2006. 9. 12. 01:37

 

 

 

 

한강을 걷다

 

              -   진부 가는길 봉긋 솟은 2개의 만과봉

조선왕조실록의 ‘세조실록’ 11년, 1465년 2월20일에 상원사가 무사히 중창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왕이 선물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 중창불사를 이끈 인물은 신미(信眉, 1405~1480)라고 한다. 신미의 속명은 김수성(金守省)이었으며 집현전 학사를 지내기도 했으나 중이 되어 후에 혜각존자(慧覺尊者)라는 법호를 받았다.

 

 

그는 또 ‘상원사중창기’를 쓴 괴애(乖崖) 김수온의 친형이기도 하다. 김수온은 불교 집안으로 어머니가 비구니로 불법에 귀의했으며 김수온 또한 ‘문종실록’ 즉위년, 곧 1450년 4월11일에 남은 기록으로 보면 “‘능엄경’이 ‘중용’보다 낫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할 정도였던 인물이다.

작은 만과봉


신미는 세종 당시부터 속리산 복천암에 머물며 왕의 총애를 받았다. 세종이 병환이 깊었던 1450년 1월26일, 와중에도 왕이 불사를 일으켜 신미를 침실에까지 맞아들여 법석을 베풀었으며 높은 예절로 대우를 했다고 하며 총승(寵僧)으로 불렸으니 국사(國師)의 예우를 받았음직하다.

 

신미는 상원사 중창불사를 마무리하여 세조가 상원사에 거둥할 당시에도 상원사에 머물렀으며 세조 13년인 1467년에는 강릉부(江陵府) 산산제언(蒜山堤堰)을 하사받기도 했다.

또한 세조가 자신의 업을 씻기 위해 설치한 간경도감(刊經都監)의 일을 도맡아 ‘석보상절’의 편집을 지휘했으며 ‘원각경’을 비롯해 ‘선종영가집’, ‘수심결’과 같은 28종의 불교경전과 몽산 등 고승법어를 한글로 직접 번역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으니 세조의 상원사 거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로 봐야 할 것이다.

만과봉은 모두 둘이며 산문으로부터 물길을 따라 진부면 소재지로 향하는 도중에 있다. 맨 먼저 만나는 삼거리는 주문진으로 넘어가는 진고개로 향하는 병안삼거리이다. 그곳을 지나 주유소가 있는 작은 삼거리가 월정삼거리이다.

 

 

삼거리에서 왼쪽, 456번 지방도를 따라가면 대관령으로 향하는 횡계이며 오른쪽이 진부면 소재로 가는 길이다. 오대천 물길은 진부면 소재지로 이어지며 만과봉은 횡계 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오른쪽 밭 가운데에 있는 것이 작은 만과봉, 왼쪽의 제법 큰 산처럼 보이는 것이 큰 만과봉이다. 작은 만과봉은 봉긋 솟은 젖무덤 위에 소나무가 보기 좋게 자리 잡고 있어서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