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함산 남쪽자락과 장항사절터
| |||||||
-한가위 연휴의 짧은 여행 (I)-
| |||||||
2004-10-02 22:32:19
|
|||||||
추석 하루 전, 차례준비와 집안 일을 해야 하는
아내가 도와줄 일 없으면 방해하지 말고 나가서 놀다 오랍니다. 아들을 대동하려니 도우미가 필요하다면서 혼자 다녀오랍니다.
갑자기 생긴 나 혼자만의 하루 시간이 벌써 큰 포만감으로 느껴지기는 하였으나 바깥은 짙은 구름에 간간이 비가 뿌리는 궂은 날입니다. 문득 예전에 누군가가 저에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났습니다. 가을이 오면 어딜 여행하는 것이 좋겠냐구요... 그 친구에게 일러 주었듯이 참 많이 다닌 곳이긴 하여도 오늘처럼 하루에 주어진 시간에 초가을 정취를 느끼기에는 토함산 아래 자락을 돌아 동해바다를 보는 것이 젤이다 싶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가을은 제법 찬 바림이 불 때도 좋지요 만은, 햇볕 아래에서의 따뜻함과 그늘에서의 서늘함이 상존하는 추석 직후부터 10월 말 까지가 가장 가을을 그대로 표현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특히 이름 모를 논두렁길을 걷다가 메뚜기를 보고, 잠자리를 보고, 벌개미취나 코스모스 혹은 자주달개비 키 작은 앙징스러움과, 키 큰 마타리 꽃이 늦게나마 노랗게 남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언젠가 기억으로 환원되어서 간간이 기쁨을 가져다주는 그런 추억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기쁜 마음으로 비 오는 길을 따라 천천히 집을 나섭니다. 막상 토함산 남녘 자락을 둘러보겠다고 맘을 먹었으나 언제나 경주를 들어설 때마다 갈등을 하게 되는 이유는 그 곳만큼 남산의 서편 서출지 연못과 감실 할매 부처님을 보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기 때문인데요, 그래도 이미 서출지의 연꽃이 다져버렸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처음 맘먹은 대로 토함산으로 방향을 잡습니다. 때로 정월 초하루나 어느 때라도 토함산 석굴암에서 아침 해맞이를 하려했던 기억들이 있겠습니다 만은 이 곳 석굴암에서 맑은 해맞이를 할 수 있는 건 1년을 통 털어 40여 일 이라 하고, 유리창에 갇혀버려 박제 된 부처님 보기가 안쓰러워 잘 가지를 않습니다. 모퉁이 돌아 오르는 토함산 길에는 어느 듯 비가 그치고 벽 따라 담쟁이 넝쿨이 햇볕을 받아서 반짝이고, 물에 젖은 이끼들이 한껏 숨을 내 쉽니다. 토함산 정상 바로 아래에서 남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 다시 하산을 하면 이 곳부터는 감포 동해 바다에 이르기까지 신라 1000년의 길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경주에서 감포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인데 지금처럼 토함산을 비스듬히 넘어가는 방법과 보문단지에서 덕동호수 그리고 추령 고개를 넘어가는 길이 있습니다만 둘 다 옛 날 그때의 신라 때부터 있어온 길이랍니다. 토함산 남녘 자락을 천천히 넘어가는 여유로움에 바깥의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먹는 모습은 단순한 느림의 미학을 넘는 자그마한 행복들이 숨어 있습니다. 아뿔싸! 갑자기 급정거를 합니다. 산에서 내려온 맹꽁이 가족 3마리가 엉금엉금 길을 건너갑니다. 그 녀석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비 개인 후라 녀석들이 마실 들을 나왔나 보지요. 토함산 자연 휴양림을 지나서 왼편 산등성이로 나무에 가린 돌 탑 두 개가 보입니다. 제가 오늘 목적지로 정한 곳 중한 군데인 장항사 절터입니다.
예전엔 대종천(大鐘川)이라는 이 개울을 건너야 했었고 가운데 임시로 징검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잘 정비되어 다리가 놓여 있고 짧은 산등성이 길도 잘 뚫어 놓았습니다. 대종천은 이 곳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감포의 대왕암까지 이르게 되는데 이름이 대종천(大鐘川)인 이유는 황룡사지의 대종을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옮겨가기 위해 이 물줄기를 이용했었다는 이설(異說)에 의해 지어졌고 실제 이곳에 대종이 묻혀 있는가 하는 조사를 벌인 적도 있다고 합니다. 사실 장항사 절터는 그 이름을 모릅니다. 언제 생겼던 절인지도 잘 모르는데 그 곳이 장항리라는 지명을 가지고 있기에 그냥 장항사 절터라고 부릅니다. 한 때 베스트셀러였던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보면 경주를 서라벌답게 보여주는 세 가지 유적지 중 한 곳으로 지명하는 곳이기도 한데요, 그의 말대로라면 이곳 외에 두 곳은 진평왕릉과 분황사지를 들고 있답니다. 다분히 그의 주관적인 판단이다 싶으면서도 그럴싸한 이유를 굳이 내가 붙여 본다면 이 세 곳의 공통점은 유적의 위치가 현재의 문명과 유리되어 있는 곳들이란 겁니다. 진평왕릉은 보문 뜰 한 가운데 있으며 주위는 오직 논과 낮은 산밖에 없어서 굳이 찾으려만 하지 않으면 문명의 흔적이 눈에 들어오지를 않고 분황사지 역시 논 가운데의 절터로서 번잡함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대자면 세 곳 모두가 꾸미지 않은 곳이라는 점입니다. 진평왕릉에는 그 흔한 무인 혹은 문신석 하나 없고 십이간지 상이거나 비석하나 하나 없습니다. 그냥 쓸쓸히 그 자리에서 계절을 지키고 있을 따름 이지요. 분황사지 역시 다르지 않으며 마모된 전돌의 모양들이 세월의 흐름을 그 자체로 보여주고요, 이 곳 장항사지 역시 폐허 같은 절터에 제 모양을 한 5층 석탑(서탑) 1기와 그 반대편의 부스러진 탑신들을 모아 불완전하게 쌓아 놓은 동탑, 그리고 부처님이 앉았던 연꽃무늬 좌대 하나와 기반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습니다. 온전한 모양의 국보 236호인 서5층석탑은 9m 높이로 상륜부는 소실되어 있지만 1층 몸돌 네 면에 도깨비 모양의 쇠고리가 장식 된 두 짝씩의 문을 조각하고, 그 좌우에는 연꽃모양의 대좌 위에 인왕상을 정교하게 새기어 세련된 모습을 보여주는 8세기의 걸작품입니다.
그러나 여기 오면 늘 느끼는 감정은 쓸쓸한 가을기분이 토함산 단풍과 얇아진 햇볕과 잘 어울린다는 것과 마모된 오층석탑의 사천왕상과 십이간지 부조는 깊은 전설을 안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지간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잘 오지 않는 이곳은 이런 유적에 대한 공치사보다 그냥 한 곳의 귀퉁이에 앉아 쓸쓸히 가을바람을 맞는 것이 더 좋을 때기 많습니다. 그러고 보니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얄궂은 중생은 허기짐을 못이기는 속물인지라 멀리 발을 옮기기 전, 공양부터 하여야 하나 봅니다. 천천히 대종천 따라 내려오는 길, 개였다 짙어진 하늘 사이로 해가 빼꼼 중천(中天)에서 고개를 내 밉니다. | |||||||
출처 ; 데일리안/배강열 |
'아름다운 명찰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석사 ( 충남 서산 부석면 ) (0) | 2006.08.31 |
---|---|
토함산 옆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 (0) | 2006.08.30 |
망해사지(望海寺址), 처용의 바다를 보다. (0) | 2006.08.30 |
월명암 - 부안 ; 서해안의 낙조가 아름다운곳 (0) | 2006.08.30 |
운주사 갤러리 (0) | 2006.08.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