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머무는 여행지

단양의 명소 - 단양팔경의 으뜸경 ; 도담삼봉 - 옛그림과 함께 떠나는 단양8경

창현마을 2006. 7. 19. 21:05

 

 양의 명소   - 

 

 

옛그림과 함께 떠나는 단양8경의 으뜸   -  도담삼봉

 

 

 

 

 

 

 

 

 

 

 

 

 

 

 

 

 

 

 

 

 

 

 

 

 

 

 

 

 

 

 

 

 

 

 

 

 

 

 

 

 

 

 

 

 

 

 

 

 

 

 

 

 

 

 

 

 

 

 

 

 

 

 

 

 

 

 

 

 

 

 

 

 

 

 

 

 

 

 

 

 

 

 

 

 

 

 

 

 

 

 

 

 

 

 

 

 

 

 

 

 

 

 

 

 

 

 

 

200여년전 세밑, 충청도 연풍땅 첩첩산중에 말탄 원님 행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조선 3원(三園)의 한 사람인 단원 김홍도(1745~1806)였다.

 

 

겸재 정선(1676~1759)에 이어 중국의 산수가 아닌, 우리나라의 경치를 진경산수화로 남긴 단원이 연풍현감으로 부임한 것은 정조의 어명으로 단양 8경의 절경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사진이 없던 시절, 그림은 실제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중인 출신의 전문화가가 양반들이 도맡던 고을의 현감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정조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단원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임금님도 보고 싶어서 전속화가를 보내 그려오게 했던 ‘진상용 경치’인 단양 8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200년 후에 살고 있는 우리는 ‘단양 8경’을 조금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이는 너무나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엔 몇날 며칠을 걸려 산넘고 물건너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바로 옆까지 뚫려있는 도로와 충주호 유람선 덕분에 “우와, 멋진데!” 하는 감탄사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단양 8경은 유람선 타고 쉽게 볼 수 있는 ‘노인용 관광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양 8경의 진가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국토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진경산수화로 남아있는 단양 8경을 비롯해 금강산과 관동 8경같은 경치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1급 관광지’였다.

 

 

특히 금강산과 관동 8경은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가 모두 어명으로 그려낸 곳이었다.

 

 

금강산은 북한에 있고, 정자의 이름을 붙인 관동 8경에는 옛 정자 형태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데 비해, 남쪽에 있어 언제라도 가 볼 수 있는 단양 8경은 아직도 자연 그대로의 경치를 보여주고 있다.

계곡과 바위, 산과 물을 모두 품고 있는 단양 8경은 자연이 연출하는 종합 테마파크다.

 

제1경부터 3경은 소백산 줄기인 월악산 계곡에 위치한 하선암, 중선암, 상선암을 말하며,

 

제4경은 사인암이다.

 

5경 구담봉과 6경인 옥순봉은 충주호 유람선을 타야 볼 수 있는 경치이고,

 

 7경은 도담삼봉, 8경은 석문이다.

이중에서 단원이 ‘병진년 화첩’에 남긴 단양의 경치는 도담삼봉, 사인암, 그리고 옥순봉 3곳이다. 200년 세월이 지났건만 그림 속의 경치는 지금과 달라진 것이 없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라는 시조의 한 구절처럼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만이 달라졌을 뿐이다.

어명을 받들기 위해 필묵을 챙겨든 단원 대신 자동차를 몰고 카메라와 수첩을 챙겨든 기자들은 확 뚫린 도로 덕에 2시간 만에 서울서 단양 땅을 밟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원망스러운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옛날이면 산자수명한 첩첩산중 속에서 감춰진 보석같았을 도담삼봉 옆을 지나는 국도와 터널, 그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모터보트 정류장과 야외노래방 시설이 영 마음에 걸렸다. 물 그림자와 안개에 싸인 도담삼봉의 절경은 차를 타고 휙휙 지나가면서 ‘저것이 단양 8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이야’라는 말로 끝내는 주마간산 관광코스가 돼 있었다.

▲책한권 들고 유람 가요!

▶‘우리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최완수 외, 돌베게)=영조와 정조시대의 문화 르네상스를 다각도에서 조명한 학술서. 1권에서는 일반론과 성리학, 문학, 불교문화, 사회경제적 변화를 살펴보고, 2권에서는 서예사, 진경산수화, 단원의 풍속화, 초상화 등에 대해 썼다. ▶‘단원 김홍도-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오주석, 열화당)=단원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오주석의 단원연구서로 단양 8경을 비롯해 풍속화의 대가 단원의 모든 그림들이 망라되어 있다.

▶‘화인열전’(유홍준, 역사비평사)=조선시대의 유명한 화인들 8인과 그들의 작품을 쉽고 재미있게 분석한 저작. 연담 김명국, 공재 윤두서,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현재 심사정,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겸재 정선을 2권에 나누어 썼다.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여행’(최완수, 대원사)=겸재 정선 연구에 권위자인 간송미술관 최완수 실장이 겸재의 금강산 그림을 모아 하나하나 세세히 설명한 책이다. ▶‘유림’(최인호, 열림원)=유교의 기원인 공자로부터 유교의 완성자인 퇴계 이황에 이르는 유교의 역사를 엮은 서사적 소설. 특히 1부 3권에는 퇴계와 단양, 그리고 기생 두향과의 이야기가 자세하고도 흥미롭게 기술되어 있다.

〈충북 단양|글 이무경기자>

 

 

 

◆ 도담삼봉 (충북 단양군)

위 치 : 충북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남한강의 맑고 푸른물이 유유히 흐르는 강 한가운데 만수시 6m의 늠름한 장군봉(남편봉)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태를 머금은 첩봉(딸봉)과
오른쪽은 얌전하게 돌아앉은 처봉(아들봉)등 세봉우리가 물위에 솟아 있다.
이곳은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할 만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청유하였다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아들을 얻기 위해 첩을 둔 남편을 미워하여 돌아 앉은 본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펴볼수록 그 생김새와
이름이 잘 어울려 선조들의 지혜와 상상력이 감탄스럽다.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때 떠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는데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한 것도
아니요.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장군봉에는 '삼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있는데

일찍이 퇴계 선생은

"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녘놀 드리웠네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어울어지더라"는

주옥같은 시 한 수를 남겼다.

도담삼봉 주변에는 1998년 음악분수대가 설치되어

도담삼봉과 석문을 찾는 관광객이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특히 야간에분수대에서 춤을 추는 듯한 물줄기는 한층 더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단양팔경의 하나로, 남한강 상류 한가운데에 3개의 기암으로 이루어진 섬을 말한다.
푸른 강물 가운데 우뚝 선 기암괴석이 모두 남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데, 가운데 봉우리가 가장 높고, 큰 봉우리 허리쯤에 수각이 있어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망루 구실을 한다.

 

조선왕조의 개국 공신인 정도전이 이곳 중앙봉에 정자를 짓고 이따금 찾아와서 경치를 구경하고
풍월을 읊었다고 하며,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한 것도 도담삼봉에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충주댐의 완성으로 약 1/3이 물에 잠기게 되었지만, 월악산국립공원에 이웃하여
수상과 육상교통이 개발됨에 따라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