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으로 그린 송광사와 사진갤러리
![]() |
▲ 완주 송광사 종루 |
처음 송광사를 찾는 분은 민가를 끼고 들어가는 좁은 도로와 절집 입구 같지 않은 분위기에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주문도 여느 사찰의 새로 세운 화려한 일주문에 비하여 가벼워 보입니다. 처마 밑의 포작이 적어서 생기는 인상인데 고졸해 보이는 것이 좋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주문을 들어서면 의외로 넓은 절 마당에 놀라게 됩니다. 일주문과 금강문 사천왕문이 대웅전과 일직선상에 있어 일주문 앞에서 보면 세 개의 문 사이로 대웅전 어간(가운데)의 문이 보입니다. 사천왕문에 모신 큰 사천왕들은 흙으로 빚어 만든 소조(塑造)상으로 색채가 화려하고 선명합니다. 1649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제작연대의 기준이 되는 소중한 유물로 보물 제1255호 입니다.
![]() |
우리나라의 문화재 중에 제작연대나 제작자의 이름 등이 기록된 것이 많지 않습니다. ‘내가 만든 작품’이라는 과시욕이 없고, ‘나’를 잘 드러내지 않던 조상님의 특성인데, 이런 점이 유물의 연대별 분류, 변천과정을 알아내기 어렵게 합니다. 이러한 사정이다 보니 어쩌다 발견되는 기록이 들어있는 유물은 소중하게 취급되고 문화재로 등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름을 모르던 폐사지에서 글자가 들어있는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 이름이 밝혀진 경우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 |
▲ 송광사 일주문 |
사천왕 중에 보탑을 받쳐 든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북방을 수호하며, 용을 잡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서방을 지키고, 비파를 들고 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은 동방을, 긴 보검을 잡고 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방을 수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송광사 사천왕상은 다른 절처럼 살대로 막아 놓지 않아서 보기도 좋고 촬영을 하기도 좋습니다.
사천왕문을 지나면 너른 절 마당 왼편으로 특이하게 생긴 종루가 보입니다. ‘아자형 종루’라 부르는데 국내에 단 하나뿐인 ‘十’자형 건물입니다. 십자형 건물로 창덕궁에 부용정이 있고 수원 화성에 방화수류정이 있으나 전부 변형된 다각십자형 건물입니다.
한옥의 지붕은 서까래 위에 나무판자를 깔아놓고 그 위에 진흙을 쌓고 기와를 얹어놓습니다. 먼저 암키와를 두세 겹 쌓은 위에 수키와를 얹고, 용마루에도 기와를 여러 겹으로 쌓기 때문에 기와 무게만도 엄청납니다. 이런 지붕 무게를 고루 떠받치며 기둥에 전달하는 장치가 처마공포로, 쇠못을 쓰지 않고 목재로만 짜맞추기 때문에 그 구조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서 평면이 십자형인 복잡한 건물은 경험이 많고 솜씨 좋은 도목수가 아니면 지을 엄두도 못 냅니다.
못 안쓰고 목재로 짜맞춰
1857년 중창되었다는 송광사 아자형 종루는 8개의 귀공포와 12개의
주간포 등 처마 밑이 온통 공포로 가득하여 꽃다발 위에 지붕을 얹은 것처럼 화려합니다. 누마루 중심의 4개의 기둥에는 용 그림이 남아있는데
솜씨가 범상치 않습니다. 마루 중심에 범종을 달고 사방에 법고, 목어, 운판과 작은 범종을 배치하여 아자형 건물의 모양에 일치시켰습니다. 작지만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공예품같이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 |
국내 단 하나뿐인 아자형 종루를 지은 도목수도 평생 자부심을 간직했을 것입니다. 송광사에 화려한 종루를 지은 것은 평지 가람의 밋밋함을 줄여보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절 마당에 한 송이 연꽃으로 피어올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과거 백련사(白蓮寺)라는 절이 있었다하니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 |
▲ 송광사 대웅전 3존불 |
대웅전 불단 중앙에 용의 정면 얼굴을 조각한 것이 있습니다. 보기 드문 예인데 이화여대 강우방 교수가 주장하는 ‘용면상’을 입증해주는 자료가 됩니다. 강 교수는 ‘귀면상’이 용면상의 잘못된 이름이라고 주장하거든요. 대웅전 정면 계단 소맷돌에 조각된 용의 얼굴을 살펴보아도 수긍이 갈 것입니다. 사실 궁궐이나 절에서 도깨비 형상으로 수호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요.
![]() |
대웅전 불단 위에 높이 2m가 넘는 조각이 화려한 목패가 있습니다. 국내 최대인 목패에는 왕, 왕비, 세자를 위한 축원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대웅전의 천장에는 용, 동자, 자라, 게, 거북, 물고기 조각에 비천상이 있어 무척 화려합니다. 송광사에는 4점의 보물 말고도 유형문화재가 7점이나 있어 답사의 즐거움을 더해줍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위봉산성과 위봉사를 답사코스에 포함시켜도 재미있을 것입니다.
![]() |
▲ 눈오는 송광사 전경 |
그림ㆍ글ㆍ사진=김영택 펜화가
얼마전 조계산 저쪽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를 다녀 왔고, 그때처럼 오늘도 비가 조금씩 내리다 개일듯한
날씨다.
새벽에 찾는 산사는 이렇게 촉촉히 젖은 산길과 초록이 더욱 짙어진 나뭇잎, 얼굴에 닿을듯 느껴지는 향긋한 나무냄새 실린 바람..
이런것 들이 숲길을 들어서면서.. 폐깊숙히 회색빛 그으름을 밀어내려고 심호흡을 하겠금 만들어 준다.
역시 승보사찰 답게 이른
아침부터 선원 곳곳에서는 은은한 불경소리 와 설법말씀들이 문마다 내려쳐져 있는 대발 사이로 조용하고 알 수 없는 소리들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송광사에서는 전국 사찰 가운데서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국보 제42호인 목조삼존불감, 국보 제43호인 고려고종제서, 보물 제572호인 수선사형지기, 보물 제1366호인 화엄탱화, 보물 제1376호인 티베트문법지 등 기타 동산문화재(動産文化財)와 고문서(古文書) 전적류(典籍類)의 과학적인 보수(補修) 및 보존처리와 체계적인 자료정리를 계속하면서, 성보박물관의 효율적 운영을 위한 각종 특별전시회를 기획하여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조계총림의 선원, 율원, 강원에서는 150여명의 스님네가 모여 보조국사의 정혜결사정신을 이어 여법히
정진하면서 내실(內實)있는 수행불사(修行佛事)를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명찰 순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림사 - 전남 장흥 (0) | 2006.01.18 |
---|---|
청룡사 - 경기도 안성시 (0) | 2006.01.18 |
회암사 - 양주 천보산 (0) | 2006.01.10 |
봉선사 - 남양주시 광릉 (0) | 2006.01.06 |
송광사 - 순천 조계산 (0) | 2006.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