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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많이 내릴 비는 아니지 싶다. 홍성 나들목으로 들어간 우리
차는 다시 대천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군산까지 가보자고 했다. 그곳에 망해사라는 절이 있는데 누군가 쓴 글을 보니 참 좋았더라는 말과
함께 지도책을 펼쳤다. 그런데 그 절은 김제에 있었다. 군산에서 조금 더 내려가야 한다. 아내는 너무 멀다고 대천까지만 가자고
한다. 대천 나들목에서 운전을 바꿨다. 아무 곳이나 가라는 말과 함께 피곤한지 아내는 잠깐 눈을 붙였다. 나는 무량사에 한 번 가보자는 생각에 우선 보령 쪽으로 차를 몰았다. 신호등에 걸려 잠깐 섰을 때 지도를 보니 부여 방면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길치인 나에게 운전을 맡겨놓고 인간 네비게이션이 잠에 빠졌으니 정말 난감했다. 보이는 이정표는 다 생소하고 원하는 이정표는 나오지 않고, 그렇다고 아내를 깨워 물어보자니 자존심 상한다. 아내는 방향감각이 뛰어나다. 아마 전국 지도를 머리에 담고 다니는 듯하다. 어디에 가도 한 번도 목적지를 찾아 헤맨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지어준 별명이 인간 네비게이션이다. 자신이 그러니 내가 길을 못 찾으면 이해를 못한다. 왜 모르냐고 가끔 핀잔을 듣는다. 한참을 달리는데 군산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전혀 엉뚱한 길에 들어선 것이다. 급하게 유턴을 해서 다시 대천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이정표가 성주사지와 석탄 박물관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무량사는 포기하고 성주사지에 가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폐사지에 왜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 번도 그런 곳에 가본 적이 없으니 잘됐다는 생각을 했다. 성주터널을 지났다. 그리고 한참을 달리니 성주산자연휴양림과 성주사지로 가는 갈림길이 나왔다. 좌회전해서 조금 달리니 아들의 성화에 아내가 눈을 떴다. “어디 가는 거야?” “성주사지!” “아까는 무량사에 간다더니?” “….” 썰렁한, 부슬부슬 비가 와서 더 그런 느낌이 드는 성주사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딱 1대의 차만 서 있었는데, 그 차도 우리가 도착하자 금방 떠나버렸다. 우산을 쓰고 차에서 내렸다.
비탈진 경사로를 올라 폐사지에 들어섰다. 촉촉하게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폐사지 전체를 덮고 있다. 따로 길을 내지 않아서 그 풀들을 밟고 걸었다. “쓱 쓱” 풀 밟는 소리가 싱그럽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발에 전해오는 느낌이 참 좋다.
성주사지 석계단 앞에 섰다. 안내문을 읽어보고 참 우울했다. 원래 돌계단 양 옆에 사자상을 조각한 측면석이 있는데 그 예술성이 인정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나 1986년 도난당해 현재 이 계단만 남아 있다는 것이다. 도난당한 문화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 몰래 자기 혼자만 보고 있겠지. 그러면 기분이 좋을까?
이제 마지막으로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를 보기 위해 제일 왼쪽으로 걸어갔다. 국보 제8호로 지정된 이비는 낭혜 화상 무염(801~888)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라고 한다. 지대석 일부가 손상되어 있을 뿐 비신과 머리돌이 원래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비가 세워진 연대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낭혜 화상이 세상을 떠난 2년 뒤인 890년으로 짐작한다고 한다.
폐사지를 사람들이 찾는 까닭은 이런 적막감 때문은 아닐까? |
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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