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머무는 여행지

보문사

창현마을 2005. 8. 31. 21:05
보문사


   
♣ 강화 앞바다의 작은섬에 자리한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낙가산에 있는 사찰. ( 032-933-8271~3 )
양양 낙산사 와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관음기도도량이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에서 수행하다가 이 곳에 와서 절을 창건하였는데,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산의 이름을 낙가산이라고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

보문사 창건 전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한 어부가 바다에 그물을 던졌는데, 사람 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렸다. 고기를 잡지 못해 실망한 어부는 돌덩이를 바다에 버린다. 다시 그물을 쳤는데 또 다시 바로 그 돌덩이들이 걸리게 되자, 어부는 또 다시 그 돌덩이를 바다에 버렸고, 돌이 두번이나 그물에 걸리게 되자 그만 집으로 돌아간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낮에 그물에 걸렸던 돌덩이는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인데, 바다에 두번이나 버렸다고 질책하고, 내일 다시 그곳에서 불상을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 날, 22개의 불상을 건져올린 어부는 꿈 속에서 노승이 당부한 대로 낙가산으로 불상을 옮겼는데, 현재의 보문사석굴 앞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옮길 수 없었다. 그리하여, 석굴이 불상을 안치할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 굴 안에 단을 만들어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깨어진 옥등잔 전설
옛날에, 보문사의 어린 사미승이 부처님께 등공양을 하기 위해 법당에 들어갔다. 나한전에는 보문사에 전해내려오는 귀중한 보물인 옥등잔이 있었는데, 사미승은 옥등잔에 기름을 부으러 가는 것이다.
사미승은 옥등잔을 내리고, 등잔에 기름을 붓다가 실수로 등잔을 떨어뜨리게 된다. 떨어진 옥등잔은 두조각이 나게 되고, 사미승은 혼비백산하여 법당을 빠져나와 구석에 주저앉아 훌쩍이게 된다.
마침 지나던 노스님이 사미승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무슨일인지 물어보자, 사미승은 옥등잔을 깨게 된 일을 말하게 된다.
사미승과 노스님은 깨진 옥등잔이 있는 나한전으로 들어갔는데, 두동강난 옥등잔은 멀쩡히 불빛만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노스님은 옥등잔을 자세히 살펴 보았지만, 깨진 흔적조차 없이 멀쩡하였다. 이에 노스님은 "이것은 분명 나한의 신통력 때문이로다" 하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보문사 석실
나한을 모신 나한전으로 넓이가 97평이나 되는 석굴 법당이다. 홍예문을 들어서면 천연동굴 안에 석가모니불, 미륵, 제화갈라보살, 나한상을 안치한 23개소의 감실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한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려 올려진 것들이라는 보문사 창건 전설이 있다.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7호.

보문사 맷돌
일반용 보다 두배 정도 크기(지름 69cm, 두께 20cm)의 화강암 맷돌이다. 보문사 석실 입구에 있는 보문사 향나무 오른쪽 계단 옆에 있다. 인천광역시민속자료 제1호.

보문사 천인대
보문사를 창건할 때, 인도의 한 큰스님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와왔다고 한다. 이 바위에는 1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千人臺)라고 이름 붙였다. 보문사 석실의 왼쪽 상점이 있는 곳 뒷 부분인데,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다.

근처 볼거리
보문사 마애석불좌상 : 삼산면(석모도) 매음리. 보문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
보문사 눈썹바위 : 삼산면(석모도) 매음리. 보문사에 있는 눈썹 모양의 바위. 밑에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이 있다.
석모도에 자리한 보문사는 신라 성덕여왕 4년 (635 년) 회장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양양 낙산사 남해 금산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기도 도량으로 꼽히는 곳이다

강화군 서부에 위치한 석모도에는 해명산, 상봉산, 상주산의 세개의 산이 있어 삼산면이란 지명이 생겼으며, 보문사는 상봉산과 해명산 사이에 위치하는데 , 특히 절이 자리한 곳을 낙가산이라 부른다. 곧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의 준말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이 창건 연도나 창건에 얽힌 연기 설화등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못한 상태이나, 근대의 고승인 석전 박한영 스님이 작성한 "보문사법당중건기"에 작성한 글을 토대로 하면 신라 선덕여왕 4년(635년) 화정대사가 창건하였다 한다.
새벽 동틀 무렵에 듣는 절 앞바다의 파도소리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 보살상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강화 8경에 드는 명승지로 꼽혔다.
번잡한 도심을 벗어나 서해바다의 비릿한 냄새를 머금은 바람을 맞으며 보문사에 오르면,지방기념물 17호로 지정된 수령 약 600여년이나 된 향나무가 절 마당에 늘 은은한 향을 머금고 있다.  
향나무 뒤에는 어부가 건져 올렸다는 전설이 있는 23나한님이 모셔져 있는 자연석으로 되어있는 거대한 석실이 있다.  
또한, 석실 옆으로는 민속 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지름 69cm, 두께 20cm 나 되는  보통의 것보다 약 2배 가량 큰 맷돌이 있으며,  중창불사를 끝낸 대웅전, 삼성각, 명부전이 절마당에 위치해 있다.
눈썹바위의 마애석불은 절마당에서 약8분정도 올라가면 서해 바다의  경치와 시간이 맞는다면 석양까지 볼 수 있다.
  현지교통 :
1) 신촌시외버스터미널이나, 5호선 송정역 입구에서 직행버스 이용, 영등포역 입구에서 완행버스 이용할 수도 있음
2) 강화시외버스터미널에서 외포리행 버스이용 , 외포리 선착장에서 석모도를 왕래하는 카훼리호가 수시로 운항함 (30분마다 운항, 소요시간 10분, 차량운송 가능 ).
3) 석모도에서 보문사행 버스 이용 (석모도행 수시운행, 07:00∼19:40)

도로안내
1) 48번국도 -> 김포 -> 강화도 -> 84번지방도 -> 찬우물3거리 -> 우측 군도로(6km)-> 인산리 갈림길 -> 오른쪽도로(5km) ->  외포리 선착장  
2) 강화읍 -> 4번군도로 -> 내가저수지 -> 고천리 -> 17번도로 -> 외포리 선착장
3) 김포 48국도 -> 누산리에서 죄회전 -> 양곡 -> 대명리 -> 강화 초지대교 -> 길상 온수리 -> 마니산 방면 -> 내리선착장

▶ 서울방면에서 김포를 거쳐 왕복 4차선의 48번국도를 타고 강화로 들어선 후, 강화읍내에 들어가기 바로 전 강화 인삼센터 부근에서 좌회전하여 외포리방면 84번 지방도로로 접어든다.
읍내를 벗어나 점차 시골풍경이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할 무렵 나오는 찬우물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6km 정도 지난 후 인산리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5km정도 진행하면 외포리에 도착한다.
서울 도심에서 차로 1시 간 반이면 강화 본섬의 서쪽 끝 외포리 포구에 닿을 수 있다.
여기서 맞은편 가까이 보이는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까지 1.5km 정도의 바닷길을 페리선을 타고 건너가야 한다. 페리 운항은 여러 척이 수시 왕복한다. 외포리에서 배를 타고 건널 때 뱃전으로 날아 드는 갈매기떼의 정경 또한 흥미롭다.
석포리와 보문사를 잇는 8km 구간을 다니는 섬내 버스는 배 시각에 맞춰 다니고 있어 굳이 승용차가 없더라도 가는 길이 수월하다.
보문사까지는 차로 15-20분 정도 걸린다. 보문사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과 상점, 식당들과 근처에 민박할 수 있는 산장이 들어서 있다.

▶ 외포리 석모도 훼리호 도선료
외포리항구 - 석모도(석포리)
외포리 선착장에서 30분간격 운행하는 배편이용(10분소요), 자가용이나 버스까지도 배에 실을 수 있다.
주말이나 행락철에는 수시운행 .자가용 왕복 14000원, 1인 왕복 1200원
  강화남산유스호스텔         032-934-7777~8          강화읍
코레스 가족호텔            032-937-5071            길상면
강화유스호스텔             032-933-8891~3          내가면
          
(민박문의)
강화군 삼산면사무소 (032-932-3001)
삼도농협 지도과  (032-932-7510∼6)
정보: 보문사 종무소 (032-933-8271~3)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산중턱 주차장과 상가에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글씨로 '낙가산 보문사'라 새겨진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가파른 길을 오르면, 현재 정면 5칸 측면 3칸의 커다란 규모를 갖춘 대웅전이 보문사를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다.
대웅전의 내부 넓이는 약 60평이며, 이곳에 관음보살상을 포함해 3,000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바로 아래에는 요사채가 있고 경내에서 이 곳을 바라볼 때는 지상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계단 아래 주차장 쪽에서 보면 2층 요사 건물 위 3층 되는 곳에 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내에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제화갈라보살과 나한상을 안치한 보문사 석실은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형성시기가 보문사 창건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전설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려진 석불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하며, 이때부터 석실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뒤의 역사는 알 수 없고, 조선 시대 후기에 들어서 1812년(순조 12년)에 한차례. 그리고 1867년 (고종 4년)에 다시 경산(京山)화상이 석굴을 보수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58년 춘성(春城)선사가 석굴 내부를 좀 더 확장하며 개수하였고,
최근에는 1980년 정수(靜守)스님이 내부를 다시 확장하는 한편 지금의 불단(佛壇) 뒤와 옆에 있는 석탱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보문사가 관음신앙의 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석실 및 안에 봉안된 나한상이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으며 우리 나라에 흔치않은 석굴사원이기도 하다. 석실의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을 달았다. 석굴 안은 면적이 30평으로 꽤 널찍한 편이며, 늘 이 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의 기도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석실에 들어서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전부 22불의 성상(聖像)을 모셔 놓은 불단이다. 석실이니 만큼 다른 불전과는 달리 불단 및 닷집이 전부 돌로 커다랗게 만들어진 것이 특이하다. 연꽃이 조각된 불단 위에 닷집이 달린 전각 형태의 불전(佛殿)이 있고, 그 안에 아래 위 두 줄에 걸쳐 감실(龕室)이 마련되어 있으며, 여기에 22불의 석상이 봉안되었다. 석상의 크기는 전부 30cm 안팎으로 근래 이 석상들의 재질을 조사한 결과 우리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이 아닌 인도에서 나오는 석재임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대웅전과 관음전 사이에 있는 계단을 따라 한 10분 가량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유형문화재 제29호'인 마애석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좌상의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 관음 좌상은 약간 비스듬히 나 있는 바위면에 새겨져 있는데, 위의 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다. 관음 좌상의 양식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든 채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그만큼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고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이 관음상은 비록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이 관음 도량의 성지인 동시에 기도(祈禱) 성지임을 나타내는 상징성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1975년에 지어졌으며 안에는 높이 215cm, 밑지름 140cm, 무게 5t이나 되는 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범종은 1975년 당시 주지인 정수스님의 발원으로 조성 되었으며 기본 형태는 국보 제36호인 '오대산 상원사 동종'과 국보 제29호 '성덕대왕 신종'을 조화시켜 도안한 것으로 1975년에 모셔진 것이라고 한다.
석실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큰 바위틈에는 '지방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향나무의 밑둥 직경은 2.1m이며, 땅위 1.2m 부위의 둘레가 3.2m 정도로 크게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 나무는 수령이 약 600년이나 된 노목으로 6·25 당시 죽은 것 같이 보였다가 3년 뒤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천인대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나란히 자라고 있는 두 그루의 느티나무는 수령은 약 290년이고 크기도 비슷해서 높이 16m, 둘레 4.8m 정도이고, 절 경내 주차장에도 수령 약 600년 된 높이 31m, 둘레 4.8m 의 은행나무가 있어 현재 군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문화재를 품고있는 보문사는 승려들의 수도처로 번성하던 때에는 300여 명의 승려들을 수용하기도 했으며, 그때 취사용으로 사용하던 지름 69cm, 두께 20cm의 일반용보다 두배 정도 큰 화강암 맷돌이 보존되고 있다.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는 석모도의 풍광 또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들을 간직하고 있다. 석모도는 아직도 자연의 고운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산과 바다와 갯마을이 멋진 조화를 이루고 곳곳에서 자연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다. 석포리항에서 보문사 방향으로 5km가면 왼편으로 어류정항 표지판이 보인다. 이 쪽으로 가면 염전, 해수욕장 갯벌, 포구 등이 차례로 나타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특히 민모루 해수욕장은 썰물때면 모래사장이 아닌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 아이들과 함께 갯벌 탐사를 하기에 좋다. 어류정항은 장구너머보다 훨씬 큰 포구로 이곳에는 어선 이름을 딴 포장마차형 횟집 들이 늘어서 있고, 직접 잡은 횟감을 팔기 때문에 값이 싸다.
출어기에만 개방하여 금어기(7월 15일-8월 15일)가 되면 철시한다. 삼량염전에선 지금은 예전처럼 발로 밟는 풍차를 돌리는 풍경은 없지만 오후 4시쯤 되면 수북히 쌓인 소금탑을 볼 수 있다. 염전 바로 건너편에는 15만평의 저수지와 수로를 갖춘 어류정 낚시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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