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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 주산지 가는 길 복사꽃 만개했던 봄날부터 바탕화면에 띄웠던 '영덕 도화꽃'은 탱탱한 속살을 맘껏 드러낸 절정의 복숭아로 변해 있었다. 차창 문을 열고 손을 뻗으면 복숭아 무게로 찢어질 듯한 가지가 손에 잡혔다. 주산지 가는 길도 물을 겸 길가 원두막에 차를 세웠다. 맘씨 좋은 아주머니가 가는 길 꼭 들르라며 털이 숭숭 날리는 복숭아를 한아름 안겨 주신다.
우설령 고개 마루에 잠시 차를 세우니 누리장나무의 고약한 향이 한여름 열기보다 먼저 반긴다. 전신주를 본 지가 한참 되었으니 깊긴 깊은 모양이다. 고개를 넘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쌓은 돌이 탑을 이루고 있었다. 멀리 주왕산의 연봉들이 그윽하게 켜켜이 골을 이루고 쌓여있다. 중국 당나라 때 주도라는 사람이 후주천왕을 칭하고 난을 일으켰다 패하여 쫓겨 온 곳이라 하여 주왕산으로 불린다는 전설을 간직한 곳이다. 빼어난 기암절벽 골마다 숨어 있는 계곡들로 인해 바위로 병풍을 쳤다는 '석병산'이 '주왕산'으로 바뀐 연유이다. 왕버드나무가 그린 수면 위의 수채화, 주산지 주왕산 골짜기 부동면 절골 방향에 1720년 조선 숙종 때 쌓기 시작해 1년만에 완성한 호수 주산지가 숨어 있다. 하류지역의 가뭄을 막기 위해 만든 길이 100m, 폭 50m의 작은 인공 호수이다. 둑이 완성되면서 물과 함께 세월을 보낸 왕버드나무가 호수를 한 폭의 수채화로 만들었다.
장마 끝인데도 왕버드나무는 군데군데 뿌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뿌리를 드러냈을망정 지금까지 아무리 가물어도 바닥을 드러낸 적이 없는 못이다. 물 속에서 세월을 견디어 온 왕버드 나무가 한여름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흰빛 줄기를, 줄기 끝 바람에 팔랑이는 잎새를 바라보고 있다.
삼십 년 전 물에 잠긴 내 고향마을 밤마다 횃불을 켜고 가재를 주워 담던 암룡추 개울가 팽나무도 저 왕버드나무처럼 고단한 삶을 이어나가길 잠시 바래본다. 겹겹이 쳐진 철조망으로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내 고향 풍경이 이젠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활동사진의 장면처럼 조각난 이미지로만 언뜻 언뜻 연상될 뿐이다. 너무 진부한 표현이지만 사무치도록 고향이 그립다. 이루어질 리 만무한, 절대 불가능한 소원이지만 엄마와 함께 저수지 가에 서서 물에 잠긴 감나무며 감나무를 타고 오르던 머루덩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주산지 입구 포장마차에서 민박집 아주머니를 소개받은 것은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주산지에 다녀올 동안 입구에서 옥수수를 먹으며 기다리던 시어머니의 전리품이었다. 주산지 입구 절골 삼거리에서 방 세 개짜리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금례 아주머니(56)는 김기덕 감독이 사계절 주산지 풍경을 촬영하는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위해 밥을 해서 주산지로 날랐다고 했다. 쌀을 씻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이며 전을 붙이는 아주머니의 손길이 분주해졌다. 상에 차려진 음식 중 자신들의 손으로 생산하지 않은 것은 잔멸치뿐이라고 했다. 미리 밥을 해 놓지 않고 손님이 온 즉시 쌀을 씻고 밥을 한다. 밥이 익는 동안 김기덕 감독이 영화를 찍은 후 청송 여러 곳을 둘러 본 주왕산의 가을 풍경을 담은 '그곳에 가고 싶다'를 비디오로 보며 연신 감탄했다. 사진을 보내 준다던 영화제작팀이 결국 사진을 한 장도 보내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마 무척 바빠서일 거예요." 내가 괜히 미안해하며 변명해 본다.
늘 여행은 아쉬움을 남긴다. 대전사 쪽 내원마을까지 걷고 싶었다. 여든 다섯의 어머니를 동행한 여행은 언제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도 나도 시누이도 조금씩 양보하고 적응하는 법을 안다. 어머니는 민박집 거실에 목침을 베고 오수를 즐기고 나는 주산지 입구 도라지 꽃밭
산책에 나섰다. 온 세상이 보랏빛이다. 보랏빛 꽃잎마다 실핏줄 같은 잎맥을 드러나 그 연약함에 안쓰럽다. 분홍색 담배꽃과 덜 영근 청송 사과가
여름 주산지 입구에서 익고 있었다.
봄.여름.가을.겨울.그리고.봄. OST 中 명창 김영임의 "정선아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