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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 생가

창현마을 2010. 4. 27. 11:52

 

 

 

명성왕후 생가

 

 

 

 

조선 제26대 고종 황제의 비로 뛰어난 외교력으로 자주성을 지키면서 개방과 개혁 정책을 추진하다

1895년 양력 10월8일 새벽 을미사변으로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가 출생하여 8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 (숙종 13년) 인현왕후의 아버지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 남아있는 것은 안채 뿐이었으나, 1995년에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생가 앞에 위치한 명성황후 기념관은 일제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고자 건립되었으며,

전시실에는 명성황후의 친필과 시해당일 일본인이 사용했던 일본도(복제품),

시해장면을 재현한 매직비젼 영상물 등 당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기념관 옆에 있는 161석의 공연장에서는 명성황후와 관련된 영상물을

단체 관람객들에게 상영하고 있으며,

그 주변으로 명성황후의 개화 사상과 민족 자주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조각공원을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생가 옆에 “명성황후탄강구리”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어

명성황후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으며,

그 옆에는 인현왕후의 아버지 민유중 선생의 신도비가 있고,

그곳으로부터 우측 산쪽 150m 지점에 그분의 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