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계사 雙磎寺
삼신산 (三神山 ) - 경상남도 하동군 화계면 운수리
쌍계사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의 남쪽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유서깊은 사찰로, 지금으로부터 약 1,280년 전인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三法)이 창건하였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 삼신산(우리 나라에서는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을 일컬음) 눈 쌓인 계곡, 꽃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 귀국, 현재의 쌍계사 터에 이르러 혜능의 머리를 묻고 (현 금당 자리) 절 이름을 옥천사(玉泉寺)라 하였다.
이후 약 100여 년 후인 문성왕 2년(840)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진감선사는 이 절 부근에 가져운 차(茶) 종자를 심고 쌍계사를 대가람으로 크게 일으켰다.
이후 정강왕은 선사의 도풍을 높이 여겨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내렸는데, 이 이름은 둘 쌍(雙)자에 시냇물 계(磎)자로,이 절 터의 뒤편에서 흘러오는 두 줄기의 냇물이 일주문 앞에서 하나로 합쳐진다는 의미로 붙여졌다고 한다. 또한 음악적 역량이 높았던 진감선사는 이 사찰의 팔영루에서 한국의 불교음악인 범패를 작곡하고 연구, 중흥시켰다.
쌍계사는 임진왜란중 크게 소실되었으나, 인조 10년 벽암스님에 의해 중건되었고, 이후에도 법훈, 번허, 용담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 이렇듯 1,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고찰답게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에도 조계종의 25개 본사 중 하나로 서부 경남지역의 사찰을 총람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이 절로 들어가는 입구 섬진강변에는 유명한 화개장터가 있어 경상도와 전라도를 아우르는 교류의 장소였으며, 앞서 소개했듯 이 부근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 재배지였기도 하다.
또한 개화기 이후 이곳으로 들어오는 길 주변에는 벚나무가 줄줄이 심어지게 되었는데, 일본의 상징이라는 것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현재에는 부근의 큰 명소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일명 '쌍계사 십리 벚꽃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봄철이면 벚꽃이 화려하게 만개하여 대장관을 이루며, '한국의 아름다운 길' 목록에도 당당히 그 이름을 남기고 있다.
(자료 : 쌍계사 홈페이지, 답사여행의 길잡이 )

'삼신산 쌍계사' 라는 멋진 글씨가 씌어진 편액이 걸려 있는 일주문(一柱門). 해강 김규진의 글씨라 한다.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로 사용되는 문으로, 한쪽에 한 개씩 두 개의 기둥만으로 지탱하는 문으로,
화려한 다포식으로 지어진다.일주문에는 별다른 문이나 빗장을 걸지 않는데, 일주문의 빗장은
마음의 빗장이라고 한다.
삼신산(三神山)이란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불사약이 있다는
영험한 산으로 알려져 불사의 생을 얻기 원했던 진시황과 한무제가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알려진다.
이 이름을 본떠 우리 나라에서는 일찌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는데,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쌍계사가 삼신산 쌍계사라는 편액을 건 이유는 그와 같다.
일주문의 화려한 다포식 구조. 다포식이란 건물의 지붕이 올려지는 수평 부재 위로
이와 같이 화려한 공포들을 여러 단 쌓아 올려
지붕을 훨씬 높게 올려 한층 화려하고 위엄있게 만드는 방식을 말한다.
일주문은 작은 문이지만 가장 화려한 품격의 지붕이 올려져 있는 매우 특별한 구조의 문이다.
일주문의 문지방과 기둥. 쌍계사 일주문에는 이와같이 양쪽으로 보조기둥이 설치되어 있어
일주문으로써의 품격이 다소 떨어진다.
자연석 형태를 그대로 사용한 주춧돌도 눈여겨볼 만 했는데, 현대의 가지런한 돌로 바닥을
모두 덮어 버려서 아쉬웠다.
복잡하게 가공된 부재들을 조립하고, 화려한 단청을 입혀줌으로 해서,
건물이라기보다는 정교한 공예품처럼 보인다.

일주문의 뒤쪽에서 본 지붕의 모습. 기와 틈으로 낙엽들이 쌓여 있다.

뒤쪽에는 '선종대가람'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역시 해강 김규진의 글씨.

일주문의 지붕을 자세히 들여다 본 모습.

일주문 다음에는 금강문이다. 최초 창건은 신라 문성왕 2년(840년)이라고 한다.
왼쪽에는 밀적금강,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이다.

1979년 고산스님이 중수했다는 이 금강문은 새로 보수공사를 하던 중이었다.
맞배식 지붕의 개방된 양쪽 면을 보호하는 풍판의 모습이 잘 보인다.
목조건물은 주기적으로 부재인 목재를 교체하는 공사를 하는데, 옛날 목재와 새로 교체된
목재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새 부재들에는 아직 단청도 칠해지지 않은 말끔한 상태.

금강문 안쪽에서 바라본 일주문. 금강문에 설치된 홍살문이 보인다.

천왕문. 사천왕을 봉안하고 있는 문으로, 1978년 마지막으로 중수되었다고 한다.

측면 벽에 그려진 그림들과 풍판의 모습.

사찰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大雄殿)의 기와지붕과 처마. 부드럽게 떨어지는 물매 곡선이 잘 보인다.
서까래 위에 흙을 깔고 건물에 사용된 목재를 다듬은 조각들(적심)을 채워넣어 높이 차를 만든 뒤
기와를 올려 이 곡선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함으로써 빗물이 지붕을 더욱 빠르게 타고 내려 한층 배수 성능이 좋아진다고 한다.
(오래된 건물일수록 지붕의 하중으로 적심이 압축되어 물매 곡선이 점차 밋밋해진다고 한다.)

팔작지붕의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 기와를 층층이 쌓고 강회로 모서리를 마무리하는 형태로 마감되었다.
마루란 순수 한국어로 '하늘' 또는 등성이를 이루는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를 일컫는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단어)
기와지붕에는 이와 같이 3종류의 마루가 있는데, 맞배식에는 용마루와 내림마루만 있으며,
숭례문과 같은 우진각 지붕에는 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다.

한옥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 추녀곡선. 겹처마 구조라 더욱 화려하다.
일본의 지붕은 서까래가 장식 부재 수준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지붕은 더더욱 장식적이면서도 실제 힘을 받는 구조부재의 역할을 한다.
이로 인해 한옥의 지붕이 일본의 그것보다 더욱 얇고 날렵한 형태가 되는 것이 가능했다.

경내에 가득 피어 있던 목련꽃.

금빛으로 씌어 있는 대웅전의 편액과 다포식 공포, 겹처마 구조.

여러 지붕들이 늘어놓여진 절 내부의 모습.

쌍계사 대웅전.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높은 기단 위에 올려져 상당히 위엄을 과시하는 건물이었다.
방문객이 매우 많았다.

대웅전의 추녀 끝 부분

공포가 첩첩이 쌓여진 다포식 구조.

금단청의 화려함도 이 정도가 되면 조금 경건함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단청을 필하는 4색의 물감들 중 가장 값비싼 것은 청색이라고 하는데,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이 재료를 전량 수입해 사용했다고 한다.

진감선사 부도비. 국보이다. 특이하게도 대웅전과 평행으로 놓여 있다.
이 비석의 글은 신라시대의 대학자 최치원이 썼다고 한다.

팔상전 건물. 옆으로는 금당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쌍계사에는 현대에 설치된 석등이 지나치게 많이 설치되어 있어서,
오히려 고찰로서의 품격이 떨어지는 듯 했다.

금당으로 오르는 돌계단. 금당에는 혜능선사의 머리가 묻혀져 있다고 한다.

돌담에 설치된 작은 대나무 문. 느슨한 분위기.

팔영루 앞 구층석탑. 석등은 별로 안 어울린다.
출처 ; 티티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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