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따라서 훌쩍 떠나는 테마여정

화개장터의 풍경

창현마을 2008. 8. 8. 09:02

 

 

 

화개장터의  풍경

 

 

 

 

 

 

 

 

 

 

 

 

 

 

 

 

 

 

 

 

 

 

 

 

 

 

 

 

 

 

 

 

 

 

 

 

 

 

 

 

 

 

 

화개장터라는 이름은 조영남의 '화개장터'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래 내용과는 달리 번성했던 장터는 찾아볼 수 없고 인위적으로 급조해 놓은 장터와 '화개장터' 노래시비만 있을 뿐이다.

 

구례군과 하동군의 경계에 있는 화개장터는 섬진강을 이용하는 수운 때문에 발달한 장터였다. 화개장이 한창일 때는 남해 거제 삼천포 등 남해안의 해산물이 이곳까지 실려와 구례 남원 함양 등지의 내륙 농산물, 지리산에서 나오는 임산물들과 교환됐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7대 시장 중의 하나로 손꼽혔던 곳이지만 지금은 버스정류장을 가운데 두고 몇몇 상가들이 늘어서 있는 한가로운 면소재지 마을에 불과하다.

.김동리의 소설 의 무대도 화개장터다. 김동리는 광복 후 친구를 따라 잠시 화개에서 문학공부를 한 적이 있다. 는 이곳 화개장을 풍성하게 했던 예인집단 남사당패를 모델로 삼아 쓴 것이라 한다.
 
화개장터를 지나 쌍계사가 있는 북쪽으로 들어서면 지리산의 거대한 종주능선이 나타난다.

그 서쪽은 반야봉, 남쪽은 황장산이 있는 불무장등이, 동쪽은 지리산 남부능선의 삼신봉·형제봉과 맞닿아 있다.

 

화개는 물길을 빼고는 모두가 험준한 산악인 셈이다. 부쳐 먹을 땅도 없고 산을 개간한 밭 몇평과 화개동천변에 있는 계단식 논이 고작이다.

 

화개동천의 양옆 산등성이로는 화개 사람들의 밥줄인 차나무가 산록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자란다. 이 야생차밭은 화개장터 동서 산록에서부터 쌍계사를 지나 범왕리에 이르는 산기슭을 따라 12㎞나 뻗어 있다.
 
화개는 1년 내내 눈오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다. 남원은 폭설인데 산 넘어 화개에서는 비가 내린다.

이 비는 한겨울에도 차밭을 푸르게 하는 양분 역할을 한다.

 

차나무는 늦가을에서 초겨울 사이 소담스러운 흰꽃을 피우는데 이 꽃이 지고 나면 동백 같은 동그란 씨를 맺는다.

이런 기후에서 자란 화개차는 향기가 짙고 빛깔이 뛰어나다.

맛 또한 연하고 부드럽다.

이곳 사람들은 그 맛을 어머니 젖맛에 비유한다.

 이 차를 마시면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되는 정신의 향수를 느끼게 한다.
 
지금은 화개 사람들의 주소득원인 고마운 차밭이지만 한때는 이 차로 인해 고초를 겪기도 했다.

화개면지 기록에 보면 화개에서는 음력 섣달에 찻잎을 딸 때(고려 때 조정에 상납하는 차는 겨울에 땄다) 늙은이 젊은이 할 것 없이 징발했으며, 맹수가 들끓는 험한 산중에서 갖은 위험을 무릅쓰고 찻잎을 땄다고 씌어 있다.

 

또 곡우 때에는 늙은이나 어린이를 가리지 않고 징발했으며, 이들은 험준한 산중에서 어렵게 차를 따 천리 밖 개성까지 등짐으로 져 날랐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의 재상 이규보는 백성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이 차밭에 불을 지르면 세금이 없어져 백성들이 편안해질 것이라고 읊고 있다.
 
이 차나무는 하동과 산청, 구례 등 지리산 언저리 곳곳에 흔히 무리져 자생하는 대나무밭과 어울려 겨울에도 초록색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치 라인강을 따라 하이델베르크 언덕을 오르다 보면 키 작은 푸른 포도밭을 만나는 정경과 흡사하다. 그러고 보면 화개는 찻잎처럼 온유하고 댓잎처럼 푸른 선비 정신을 닮았다.
 
화개를 둘러보고 노래한 시인 묵객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고운 최치원, 목은 이색, 서산대사,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부사 성여신, 율곡 이이,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등 많은 선비들이 화개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학문은 알기만 해서는 안된다며 실천을 강조한 대유학자 남명 조식은 일상생활에서 철저한 자기 절제로 일관하며 불의와 일절 타협하지 않았다.

 

경으로써 안을 곧게 하고 의로써 바깥을 바르게 하고자 경과 의를 칼에 새기고 벽에 써붙인 것도 모자라 항상 방울을 옷에 달고 다니며 방울 소리가 들릴 때마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피는 치열함을 보였다.
 
조식은 1558년 4월10일부터 26일까지 화개동을 유람했다. 진주목사 김홍이 수행하고 큰 배까지 동원됐다.
조식은 화개동을 유람하고 적은 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삼백리길 바다와 산을 유람했지만 오늘 하루 동안에 세 군자(고려 말 섬진강변에서 은둔한 선비인 섯바위의 한유한, 화개의 정여창, 옥종의 조지서)의 자취를 다 보았다.

 

물을 보고 산을 보다가 그곳에 살던 사람을 보고 그 세상을 보니 산 속에서 10일간 품었던 좋은 생각들이 하루 사이에 언짢은 생각으로 바뀌었다. 훗날 정권을 잡는 사람이 이 길로 와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고 술회하고 있다.
 
겨울 산록을 짙푸르게 물들이고 있는 차밭을 둘러보며 화개에서 차로 10분쯤 올라가면 쌍계사 다리와 만나게 된다. 여기에서 곧장 위로 올라가면 칠불사와 대성골이 나오고, 다리를 건너가면 쌍계사다.
 
화개는 차 시배지, 범패의 발상지 등 그 문화를 말하자면 한이 없다. 화개를 노래한 시문만도 400여편이 넘는다. 화개로의 여행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가는 게 좋다. 하루로는 모자란다. 적어도 2박3일은 돼야 대충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되돌아갈 때에는 왔던 길로 가지 말고 하동에서 왔다면 섬진강 상류를 따라 구례 쪽으로 가던지, 남원·구례 쪽에서 화개로 왔다면 되돌아갈 때는 하류를 따라 하동 쪽으로 가 보자. 화개에서 하동은 20분, 남원까지는 40분 거리다.
 
하나 잊은 게 있다. 굿데이펜션 '수류화개(水流花開)'에서 화개장터 쪽으로 약 1㎞ 내려가다 보면 유황온천이 나온다. 여기에 잠시 들러 온천욕을 하고 섬진강 은어 한 접시에 반주 한 잔이면 긴 여행의 피로는 온데간데 없다.

 

 

 

 

 

 

 

 

 

 

 

 

 

 

 

 

 

 

 

 

 

 

 

 

 

 

 

 

 

 

 

 

 

 

 

 

 

 

 

 

 

 

 

 

 

 

 

 

 

 

 

 

 

 

 

 

 

 

 

 

 

 

 

 

 

 

 

 

 

 

 

 

 

 

 

 

 

 

 

 

 

 

 

 

 

 

 

 

 

 

 

 

 

 

 

 

 

 

 

 

 

 

 

 

 

 

 

 

 

 

 

 

 

 

 

화개장터  /  조영남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전라도쪽 사람들은 나룻배타고
경상도쪽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경상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가
오손도손 왁자지껄 장을 펼치네


구경 한번 와 보세요
오시면 모두모두 이웃사촌
고운정 미운정 주고 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 라라라라~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줄기따라 화개장터엔
아랫말 하동사람 윗말 구례사람
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 장터지만
있어야 할건 다 있구요
없을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구경한번 와 보세요


오시면 모두모두 이웃사촌
고운정 미운정 주고 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