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

수원 화성 (17) - 각루 2 ; 방화수류정(동북각류)

창현마을 2007. 3. 22. 23:31

 

 

 

 

 

수원 화성 (17) 

 

           -  각루(角樓)  2 

 

                  ; 방화수류정- (동북각루-東北角樓)

 

 

 

 

 

 

 

 

 

 

 

 

 

 

 

 

 

원래 방화수류정은 비상시 화성동북방 군사지휘부 구실을 하는 건물인 동북각루로

설계되었다.

 

광교산 줄기에서 뻗어내려 유천곁에 용머리처럼 쳐든 바위 언덕위,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누대를 세우고 높이 쌓아올린 기단부에 총포구멍을 내었으며

곁에는 비밀통로인 암문까지도 설치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이곳은 평상시에는 유락의 장소로도 이용되도록

고안하여 광교산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머무는 곳에 용연이란 연못을 파고

연못가운데 화목 우거진 작은 섬을 두어 높이솟은 동북각루와 어우러지게

꾸몄다. 

 

 

 

 

군사적 목적의 이름은 동북각루로서 지휘소의 역할과 망루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곳에 지었다. 그리고 방화수류정이라는 멋진 이름도 붙였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니 휴식처의 이름으로서 제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맥의 형상을 좇아서 용두각이라고 불렀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건 화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이다.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은 그 홀로의 아름다움이 아니다. 북쪽의 용연과 서쪽의 화홍문, 그리고 동쪽의 북암문이 어우러져서 빚어낸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지 방화수류정의 자태가 아름다운 것은 그 자신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조화의 아름다움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그래서 방화수류정은 우리에게 혼자 잘난 체하지 말고 주변과 잘 어울리라고 충고하는 듯하다.

 

 

방화수류정은 군사 시설과 휴식 시설의 절묘한 만남을 구현했다. 마루 밑에 감추어진 비밀이 군사 시설로 지어졌음을 나타낸다면, 바깥에서 보는 형태는 고급의 휴식 시설로 손색이 없다.

 

적군들이 방화수류정의 자태에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사이 마루 밑에서는 포가 작렬할 것이며, 총구가 사정없이 불을 뿜을 것이다.

 

마루 밑에 감추어진 총구와 포구는 군사적 긴장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구들을 놓은 숙직방까지 갖추었으니 휴식 시설을 빙자한 군사 시설이라고도 하겠다. 적군은 성안의 사정이 매우 궁금할 것이다.

그런데 밖에서 보는 방화수류정의 모습이 그지없이 아름답다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된다. 얼마나 튼튼한 군사가 지키고 있기에 화려한 정자를 만들었을까 하고 두리번거리게 된다. 튼튼한 벽돌을 구워서 정연하게 쌓은 돌성 위에 공격용 진지를 구축하고 마루를 놓아 정자를 지었다.

그러나 밖에서는 그냥 정자로 보일 뿐이다. 게다가 서쪽의 벽은 높은 자리에 앉은 품새 때문에 화홍문 쪽에서 잘 올려 보인다. 방화수류정의 건축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여기에 고급의 꽃담을 설치한 것이다. 열십자 문양을 교차 시켜서 검은 벽돌과 회백색의 조화를 이끌어냈다. 꽃을 활짝 피운 듯한 모습이다.

 

 

 

방화수류정의 평면은 복잡하다. 동서 방향으로 세 칸인데 가운데 칸에 구들을 놓은 방이 있고, 방에서 북으로 한 칸을 붙이고, 남쪽으로 반 칸을 물렸다. 그리고 서쪽의 또 한 칸은 길게 두 칸을 끌어내었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지붕도 복잡해진다.

 

팔작 지붕이 모여서 열십자 형태가 되면서 모임 지붕처럼 절병통을 얹어 장식했고, 서쪽의 길게 내려간 지붕도 팔작 지붕으로 마감하였다.

이렇게 복잡한 지붕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숙련된 목공 기술이 요구된다. 멋들어진 처마 곡선을 표현하면서 구조적으로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기둥은 물론이고 서까래가 튼튼하게 받치고 있어야 하는데 각진 부분이 많다 보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까래를 놓되 잘 가공해서 놓아야만 처마 곡선도 살리고 힘도 받을 수 있다.

 

 각진 부분에서 구석진 곳으로 서까래를 모아 들이기 위해서는 밖은 둥그렇고 안은 뾰족한 서까래를 깎아야 한다. 이런 서까래들이 합쳐져서 부채를 활짝 편 듯한 모습을 나타낸다. 부채를 활짝 펴서 끝을 잡고 살랑살랑 부치면 시원한 바람이 분다. 이 부챗살 서까래의 구조는 부채와 같다.

뾰족한 부분을 가공할 때는 하늘 쪽으로 높게 가공해서 쉽게 부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런 부챗살 서까래(선자연扇子椽)가 백칠십 개 들어갔다.-- 방화수류정에 올라 눈을 들어 천장을 바라보면 활짝 편 부채가 곳곳에 들어 있다.

그러니 바라보기만 해도 시원한 정자인 것이다. 이밖에도 방화수류정의 비밀은 곳곳에 숨어 있다. 마루에 오르기 전에 시설한 월대에는 네모난 벽돌을 깔았는데 읍양揖讓의 예를 올릴 수 있는 면적이다.

 

지체가 높은 사람에게 보고하거나 인사할 때 쓰라고 만든 시설이다. 이 월대의 아래를 보면 화강석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벽돌로 막았다. 벽체석연이라고 했다. 돌 액자 속에 벽돌로 쌓은 벽이라는 뜻인가 보다. 화성의 여러 시설에서 보이지만 전에는 쓴 적이 없다고 했다.

화강석 기둥도 눈 여겨 보면 가운데에서 두 줄의 돋을 새김을 볼 수 있다. 이는 나무 기둥에서 흔히 쓰는 쌍사기법이라는 것인데 화강석 기둥에 쓴 특별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 화강석을 보고 방화수류정의 나무 기둥들을 보면 그때서야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정자를 천연의 요새에다 짓다 보니 공력도 많이 들어갔고 돈도 많이 들어갔다.

목수 일은 강원도에서 불려온 굉흡이라는 스님의 재주에 의존했고, 건설 비용은 오천 삼백 오십 두 냥 일 전 세 푼이 들었다. 서북각루와 동남각루의 건설 비용이 사백 냥 남짓이고, 서남각루의 비용이 구백 냥 안쪽인 것에 비하면 엄청난 비용을 들인 것이다
.

 

그래서 방화수류정의 건설 책임자인 별감동 김후 장군은 정조 임금에게 꾸중을 듣는다. 너무 화려하게 짓느라 국고를 탕진했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에게 있어 그는 한없이 자랑스러운 존재다. 화성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해준 방화수류정은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다
.

 

 

 

 

 

 

 

 

 

 

 

 

 

 

 

 

 

 

 

 

 

 

 

 

 

 

 

 

 

 

 

 

 

 

 

 

 

 

 

 

 

 

 

 

 

 

 

 

 

 

 

 

 

 

 

 

 

 

 

 

 

 

 

 

 

 

 

 

 

 

 

 

 

 

 

 

 

 

 

 

 

 

 

 

 

 

 

 

 

 

 

 

 

 

 

 

 

 

 

 

 

 

 

 

 

 

 

 

 

 

 

 

 

 

 

 

 

 

 

 

 

 

 

 

 

 

 

 

 

 

 

 

 

 

 

 

 

 

 

 

 

 

 

 

 

 

 

 

 

 

 

 

 

 

 

 

 

 

 

 

 

 

 

 

 

 

 

 

 

 

 

 

 

 

 

 

 

 

 

 

 

 

 

 

 

 

 

 

 

 

 

 

 

 

 

 

 

 

 

 

 

 

 

 

 

 

 

 

 

 

 

 

 

 

 

 

 

 

 

 

 

 글출처 : 수원화성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