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은사 (4) - 문화재와 갤러리
천은사 (4) - 문화재와 갤러리
천은사 괘불(보물 1340호)
괘불은 기우제, 영산제, 예수제, 수륙제 등 사찰에 대중이 많이 모이는 큰 집회 때 야외에 모셔지는 거대한 불화이다.
평소에는 법당 뒷편의 괘불함에 보관되며, 사용시에는
옥외의 괘불대에 걸려진다. 이러한 괘불의 조성은 불교국가 일반에 보편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와 서역 등 몇몇 국가에서만 유행하였다. 지금까지
조사된 우리 나라의 괘불은 1600년대에서부터 1900년대에까지 약 300년에 걸쳐 제작된 70여점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영남지역의 사찰에 소장되어 있다.
괘불의 내용으로는 주로 석가모니불이 많은데, 1위, 3위, 또는 다위의 입불, 좌불 등이 있다.
그 형태는 석가모니불을 보신불로 하여 장엄 보살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많으며, 영산회상도와 같은 그림도 있다.
괘불의 도상적 특징은
괘불특유의 대형화된 형식상의 문제와 영산회상의 주존에 대한 표현에 있다. 일반불화에서 통용되는 의궤와는 달리 괘불 특유의 도상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영산회상의 장엄한 종교적 분위기를 대형화하여 표현하였다고 풀이 할 수 있겠다.
오늘날 티벳의 괘불가운데 30여미터의
크기에 달하는 것도 있어 대형괘불의 기원은 아무래도 서역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티벳에서는 탱화를
탕가(Thangka)라고 발음하고 있는데, 그 발음이 우리의 탱화와 유사하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불화를 한자로 ‘幀畵’라 표기하고 그대로
‘정화’라 읽지 않고 ‘탱화’라 발음하는 것에서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하겠다.
천은사 괘불은 비단채색으로 크기는 길이 894㎝, 폭 567㎝로, 거대한 화면에 꽉 차게
정면을 향하여 서 있는 석가의 모습을 그렸다.조선 현종 14년(1673)에 경심·지감·능성이 그린 이 괘불은 단독상으로 괴체적인 형태, 항토색이
강한 독특한 채색, 필선, 문양 등에서 17세기 후반의 새로운 경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2002년 7월 2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畵記
....證明 比丘 勝旭
畵員 敬心比丘,
志鑑比丘, 聖比丘
....南原府 地異山 甘露寺, 大靈山敎主尊像日軸 時維 康熙十二年 癸丑 五月日 莊嚴己畢
求禮泉隱寺掛佛...
아미타 후불탱화 - 보물 제 924호
천은사 극락보전 아미타후불탱화는
세로360㎝, 가로277㎝ 크기의 삼베바탕에 짙은 녹색과 적색으로 채색되었는데, 그 구도와 기법등이 매우 훌륭하고 보존 상태가 좋아 현재 보물
제924호로 지정되었다. 제작은 1776년(영조52)에 극락보전을 지금의 모습으로 중수하면서 신암(信庵)스님을 비롯한 14명의 금어 스님이
조성하였다. 구도는 아미타불이 극락세계에서 설법하는 광경을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 아미타불을 비롯하여 8대보살, 10대제자, 사천왕,
호법신중 등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더욱이 각각의 불보살과 신중 등에는 옆에 그 명칭이 적혀 있어 불화를 조성한 화사(畵師)의 세밀한
배려와 독창성을 엿보게 된다.
머리는 나발로 육계가 적고 중간에 초승달 같은
중간계주가 표시되어 있다. 이러한 얼굴의 묘사는 다른 보살상들에도 거의 흡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광에는 향우측에 「광명보조수명난사사십육대원무양수여래불(光明普照壽命難思四十六大願無量壽如來佛)」이라고 씌여있어서 아미타불 중 무량수불임을 알 수 있다. 대좌 앞에 향우측 보살은 화려한 보관과 영락장식을 갖추고 정면을 향해 서 있다. 보관에는 화불이 그려져있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어서 관음임을 알수 있는데 두광에 문성구고관세음보살(門聲救苦觀世音菩薩)이라고 되어 있다.
관음의 윗쪽으로 합장을 한 세보살은 문수보살,
금강장보살, 미륵보살이고 대세지보살의 윗쪽으로 합장을 한 보살은 보현보살, 연봉우리를 들고 있는 보살은 제장대보살이며, 승형머리에 석장을 든
보살은 지장보살이다.
이어서 이 불화를 그린 화사(금어)들의 이름과 이 불화에 직접 참가한 승려(僧侶)들과 그 직명(職 名)을 열거하고 있다. 향좌측 화기난에는 이 불화를 조성할 때 시주한 시주자들의 명단을 적고 있어 이 불화와 관련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이어서 록화질에는 이 불화를 그릴 때
염불[송주(誦呪)]을 한 사명의 비구와 완성 후 이 불화를 증명한 삼명의 승려(증사)들의 이름을 열기하고 있는데, 이 록화질에는 주목되는 점은
이 불화를 그린 화사(畵師)들을 명기한 곳이다. 화사를 보통 금어라고 하는데 금어로서 신암 등 십사명이 참가하고 있다. 고려 불화와 달리 많은
화사들이 공동 제작하였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