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현마을 2006. 9. 7. 11:24

 

 

          용미리 석불입상

 

 

 

 

 

 

 

 

 

 

 

 

 

 

 

 

 

 

 

 

 

 

 

 

 

 

 

 

 

 

 

 

 

 

 

 

 

 

 

 

 

 

 

 

 

 

 

 

 

 

 

 

 

 

 

 

 

 

 

 

 

 

 

 

 

 

 

 

 

 

 

 

 

 

 

 

 

 

 

 

 

 

 

 

 

 

 

 

용미리 석불입상은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자락에 위치한 용암사 부근 천연암벽에 거대한 불상을 새긴 고려시대의 마애불로서 1963년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 용미리석불입상(龍尾里石佛立像)을 보기 위해 가다 보면 단풍이 예쁘게 든 장지산 자락에 두명의 사람이 서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위상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석불은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 자락에 위치한 용암사 경내 좌측 상단부에 자리하고 있다.

용암사의 정문에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의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무 사이로 거대한 바위가 위엄이 있게 서 있다. 산속에 있어서 그런지 주위의 족제비 같은 짐승이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는 이 석불입상은 천연 바위벽을 이용해 그 위에 목, 머리,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어놓은 2구의 거대한 불상으로 거대한 바위의 느낌이 토속적인 맛이 주는 작품이다. 거대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위압감은 있으나 신체 비율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서투른 조각처럼 보여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투를 듯한 모습이 더욱 정감이 가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두 불상의 얼굴은 턱부분이 넓어 거의 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이며, 얼굴각부가 전부 큼지막하면서 시원하게 표현되었다. 불사에 대한 지식이 없는 우리로서는 두 불상이 갓모양만 둥근 것과 네모난 것으로 달라 보이고 나머지부분은 정말 같아 보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두 개의 불상 중에 왼쪽의 둥근갓을 쓴 불상은 원립불 또는 미륵불로 불리며 사각형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오던 불상과 달라서인지 정신적인 불성은 적어보이며 세속적이고 민속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듯 하고, 목은 원통형이며 당당한 가슴을 드러내고 있지만 바위의 제약으로 목과 가슴이 혼연일체 되지 못하고 있다. 몸체는 법의로 감싸고 있으며 양쪽으로 내려진 옷자락은 세로선 길이로 무늬를 나타냈으며 가운데를 V자형 선으로 조각하였다. 법의 윗부분은 상당히 유연하여 가슴의 띠매듭이 이 불상의 장식적인 효과를 주고 있으나 아랫부분은 옷자락을 나타내는 선만 조각했을 뿐이어서 바위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다. 오른쪽 사각형의 갓을 쓴 불상은 방립불 또는 미륵보살로 불리며 합장한 손모양만 다를 뿐 신체 다른 부위의 조각은 왼쪽 불상과 비슷하다.

구전에 의하면 원립불은 남상(男像), 방립불은 여상(女像)으로 전하는데 고려시대 선종이 자식이 없어 원신궁주까지 맞이했으나 여전히 왕자를 낳지 못했다. 이를 못내 걱정하던 궁주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두 도승이 나타나 "우리는 장지산 남쪽기슭에 있는 바위틈에 사는 사람들인데 매우 배가 고프니 먹을 것을 달라"하고 사라져 버렸다. 꿈에서 깬 궁주가 하도 이상하여 왕께 고하자 왕은 곧 사람을 장지산에 보냈는데 장지산에 다녀온 사람이 "장지산 아래에 큰 바위 두 개가 나란히 서있다"고 보고하였다. 이에 왕은 즉시 이 바위 에 두 도승을 새기게 하고 절을 지어 불공을 드렸다. 그러자 그해에 왕자 한산후가 탄생하였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전설은 구체적인 왕명이 나와있어 불상의 조성연대를 고려 시대로 짐작케 해준다고 한다.

또 불상의 옆쪽 벽면에는 200여자의 명문이 희미하게 조각돼 있는데 마멸이 심해 판독은 어려우나 이러한 구전 내용일 것으로 추측 된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 많이 찾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촛불도 켜져있고 불공을 드리기 위한 방석도 있었다.

이렇게 산속에 한적하게 불상이 두 개 위치한 것만으로도 동대문과 같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는게 조금은 의아했지만 와서 직접 본 느낌으로는 뭐랄까 고려시대부터 있던 이 불상앞에서 불공을 드렸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신앙에서 느껴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느꼈다. 수많은 세월동안 민간인의 정신적인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음직한 힘이 이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보물로까지 승화 시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이런 소중한 불상이 소속되어있는 절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데 있다. 물론 지금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공사중이지만 그래도 수만은 사람들이 오고 간 절이라고 하기에는 대웅전만 있는 모습이 조금은 실망을 주었다. 그래도 이해를 하자면 이렇게 소규모의 절이기 때문에 더욱 소박하고 진솔한 느낌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대웅전의 공사가 순수하게 목구조의 공사여서 건축공학부에 다니는 우리로서는 목조건물의 건축방법에 대해서 생생하게 접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글출처 :파주의 문화 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