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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시대 왕릉 찾아보기 -6 - 4대 세종대왕의 영릉 (4) ; 대왕의 발명품들

창현마을 2006. 9. 5. 11:36

 

 

 

 

          이조시대 왕릉 찾아보기

 

                  -6 - 4대 세종대왕의 영릉 (4) ; 대왕의 발명품들

 

 

 

세종대에는 과학기술이 크게 발달했다

 

천문기상 부문에서는 1434년 천체관측시설인 간의대(簡儀臺)가 준공되었다.

이곳에 설치된 혼천의(渾天儀)·혼상(渾象)·규표(圭表) 등 천문관측기기는 송·원의 과학기술의 영향과 고려 때까지의 우리나라 천문과학의 유산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장 괄목할 만한 것으로 해시계·물시계·측우기의 발명을 들 수 있다. 해시계로는 정초·장영실(蔣英實) 등이 발명한 앙부일구(仰釜日晷)·현주일구(懸珠日晷)·천평일구(天平日晷)·정남일구(定南日晷) 등이 있었다. 물시계는 흐린 날이나 밤에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인 표준시계로 쓰였다.

 

1398년에 이미 경루(更漏)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물시계가 있었지만, 세종대에는 장영실이 자동적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自擊漏)와 옥루(玉漏) 등 더욱 발전한 물시계를 만들었다.

 

1441년 측우기의 발명은 빗물이 땅속에 스며드는 깊이로 강우량을 측정하던 종래의 불완전한 방법을 개선해 과학적이고 수량적인 강우량 측정을 가능하게 했다.

 

이밖에도 〈칠정산내편 七政算內篇〉·〈칠정산외편 七政算外篇〉이라는 역서(曆書)를 편찬하고 발달한 중국·이슬람의 천문학과 역법의 계산방법을 흡수해 처음으로 우리나라의 독자적 역법계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세종대에 이루어진 과학기술의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쇄술의 발달이다.
태종 때인 1403년 청동활자인 계미자(癸未字)가 만들어졌으나 글자의 모양과 크기가 매끈하거나 고르지 못한 결점이 있었다.
 
즉위초부터 새로운 금속활자 인쇄기술 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던 세종은 경자자(庚子字 : 1420)·갑인자(甲寅字 : 1434)·병진자(丙辰字 : 1436) 등을 주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기 활발한 간행사업의 수행은 이러한 인쇄기술의 발전에 크게 힘입은 것이었다. 한편 1431, 1446년에는 도량형 제도가 확립되었다. 아악에 사용되는 황종관(黃鐘管)의 길이와 그 속에 담기는 물의 무게를 기준으로 하는 도량형 제도는 그뒤 〈경국대전〉에서도 그대로 채택되었다.
 
화포의 주조기술과 화약 제조기술도 단순한 중국기술의 모방에서 벗어나 크게 발전했다.
천자화포(天字火砲)·지자화포(地字火砲) 등 새로운 화포를 개발했으며, 〈총통등록 銃筒謄錄〉을 편찬하여 화포의 주조법과 화약사용법을 상세히 기록하고 정확한 규격을 그림으로 표시했다.

 

 

 

 

자격루  ;  물시계

 

 

 

 

 

 

 

 

풍기대  ;  바람의 방향과 풍속을 재는 도구

 

 

 

 

 

 

 

 

 

천상열차분야지도  ;  별자리의 위치와 크기를 사실적으로 그림

 

 

 

 

 

 

 

 

수표교  ;  강물의 흐름을 파악

 

 

 

 

 

 

 

 

측우기  ;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