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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궁궐 알아보기 1 - 경복궁 2 ; 경회루

창현마을 2006. 7. 25. 12:20

 

 

가슴으로  궁궐 알아보기  1

 

               ;    경복궁 2 - 경회루

 

 

                                                  사진갤러리

 

 

 

 

복궁을 처음 지을 때의 경회루는 작은 누각에 지나지 않았다.

1412년 그 건물이 기울자, 이를 수리하면서 위치를 서쪽으로 옮기고,

원래보다 크기도 크게 하였으며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둘레에 못을 박았다.

 

새 건물이 완공될때 태종은 종친, 공신, 원로 대신들을 불러 기뻐하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다.

 

경회는 경사가 모이기만을 바라는 뜻이 아니라. 올바른 사람을 얻어야만 경회라고 할 수 있다는 뜻에서 왕과 신하가 덕으로써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1473년 4년 성종 때 아래층 돌기둥에 용을 조각하였다. 연산군은 경회루 연못 서편에 만세산을 쌓고, 연못에 배를 띄워 흥청망청 놀기도 하였다.

 

경회루는 임진왜란에 불탔다.오늘날 경회루는 1867년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다.

 

경회루는 정면 7간, 측면 5간 해서 35간이나 된다.이층 누마루집인데 아래층은 돌기둥을 세우고 위층은 나무로 지었다.

지붕은 앞 뒤 지붕면이 높이 솟아오르고 옆 지붕은 중간에 가서 붙고 그 윗부분은 삼각형의 단면이 생기는 팔작지붕 형식이다.

정상은 용마루를 쌓고 그 양끝은 새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이나 새의 꼬리 모양을 흙으로 구워 설치한다.

 

 

추녀마루의 시작 부위에는 용의 머리 용두를 놓는다.

녀마루 끝에는 짐승모양을 얹었다. 잡상이라 한다.

 

잡상은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등의 이름을 가지고 장식효과와 잡귀들이 이 검루에 범접하는 것을 막는 벽사 의미를 갖는다.

 

취두, 용두, 잡상은 아무 건물이나 두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품격이 높은 건물만 설치한다.일반적으로 다섯개이다.

정전인 근정전은 일곱 개, 도성의 정문인 숭례문에는 아홉개다. 경회루는 열한 개나 된다.

예전에 경회루는 연못 둘레를 따라 담장이사바응로 둘려 있고 함홍문, 서쪽 담장에 천일문, 남쪽에 경회문이 있었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내전인 강녕전과 교태전에서 들어가는 것이 정식 경로다. 말하자면 경회루와 그 연못 일대는 경복궁 내전에 딸린 누각이요 정원이라 한다.

이것은 내전에 살던 왕과 왕실의 전용임은 그 구조에도 들어난다.

 

 

경회루 이층

 

경희루의 이층은 마루를 깔았는데 그 바닥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

정면 7간, 측면 5간 해서 35간 가운데 중앙부 세 간이 가장 놓다. 그 세간을 둘러싼 12간은 한 뼘 남짓 낮고, 가장 바깥을 두른 20간을 다시 한 뼘쯤 더 낮다.

그 높이가 달라지는 경계 구역에 한 번 젖혀 들어올리게 되 있는 분합문을 달았다.

분합문을 내리면 안은 닫힌 방이 된다. 경복궁의 이치 우주의 이치가 내재되어 있다

 

 

앙의 가장 놓은 3간은 정당으로 천지인 삼재를 상징한다.

3간을 구성하는 기둥 여덟 개는 팔괘를 나타낸다. 12간은 정당을 보조하는 헌으로 1년 12개월을 상징한다.

 

기둥 16개는 각 기둥 사이에 네짝 문이 있어 64괘를 이룬다.

바깥의 20간은 회랑으로서 기둥은 24개 24절기를 이룬다.

 

기둥도 바깥 둘레의 기둥은 사각기둥이고 안의 것은 원기둥이다. 원과 사각형이 함께 있으면

천원지방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져 있다는 관 년의 표현으로 이해하면 틀림없다.

 

 

 

 

 

 

 

 

 

 

 

 

 

 

 

 

 

 

 

 

 

 

 

 

 

 

 

 

 

 

 

 

 

 

 

 

 

 

 

 

 

 

 

 

 

 

 

 

 

 

 

 

 

 

 

 

 

 

 

 

 

 

 

 

 

 

 

 

 

 

 

 

 

 

 

 

 

 

 

 

 

 

 

 

 

 

 

 

 

 

 

 

 

 

 

 

 

 

 

 

 

 

 

 

 

 

 

 

 

 

 

 

 

 

 

 

 

 

 

 

 

 

 

 

 

 

 

 

 

 

 

 

 

 

 

 

 

 

 

 

 

 

 

 

 

 

 

 

 

출처 : 글및 사진  - 문화재청및 소구리등 발췌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