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머무는 여행지

강릉의 선교장과 활래정 2 - 사진 갤러리

창현마을 2006. 6. 29. 13:40

 

           <  선교장과   활래정  2  >

 

                             ;    강릉시 운정동 -  사진갤러리

 

 

 

 

 

 

 

 

 

 

 

 

 

 

 

 

 

 

 

 

 

 

 

 

 

 

 

 

 

 

 

 

 

 

 

 

 

 

 

 

 

 

 

 

 

 

 

 

 

 

 

 

 

 

 

 

 

 

 

 

 

 

 

 

 

 

 

 

 

 

 

 

 

 

 

 

 

 

 

 

 

 

 

 

 

 

 

 

 

 

 

 

 

 

 

 

 

 

 

 

 

 

 

 

 

 

 

 

 

 

 

 

 

 

 

 

 

 

 

 

 

 

 

 

 

 

 

 

 

 

 

 

 

 

 

 

 

 

 

 

 

 

 

 

 

 

 

 

 

 

 

 

 

 

 

 

 

 

 

 

 

 

 

 

 

 

 

 

 

 

 

 

 

 

 

한국의 美 -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 선교장

  

 

 

글· 사진_ 전현정 | 라이터스


건축에 관해 문외한이라도 잘 지은 집, 좋은 집, 화려한 집을 구경을 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선교장(船橋莊)은 국내 최대 살림집 규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정형화된 살림집의 형식과 비교해선 그 형태가 익숙하지 않다.

 

정형화된 규칙 없이 늘어선 사랑채와 안채, 긴 장막을 연상시키는 행랑채를 비롯한 건물들의 행렬, 이색적인 열화당의 차양에 이르기까지 파격에 가까운 장면들을 곳곳에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파격적인 공간 수법들이 선교장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건축 양식의 틀을 벗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럽고 호화스러운 저택, 선교장 안으로 들어가 본다.

 

 

 

주택의 일탈

 

선교장은 기능적으로 분류했을 때 분명 주거 건축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통 주거의 형태와 비교한다면 일탈에 가까운 예외적인 건축이다. 선교장의 대문간에 들어서면, 궁궐에서나 봤음직한 긴 행랑채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아준다.

 

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길게 나열된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과 평대문이 찾아온 방문객으로 하여금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선택하게 한다. 일반적인 주택이 하나의 대문을 가진데 반해, 선교장에는 두 개의 문이 나 있다.

 

열화당의 전면에 덧붙여진 서구적인 차양 또한 이채롭다. 선교장에 다다르기 전 시선을 사로잡는 정자(활래정)까지 이 집 영역의 확장임을 알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저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주거건축이 집 주인의 성품과 그 집이 지어진 지역적인 성격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선교장의 자유롭고 파격에 가까운 공간구조에선 손님맞이를 즐겨하던 집 주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하나의 공간, 두개의 변주곡

 

선교장(船橋莊)이란 이름은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선교장이 건축되었던 때만 해도 경포호의 물이 이 집 앞까지 범람해, 배를 타야 집 구경을 할 수 있었던 까닭에 ‘배다리 집’이란 별칭도 가지고 있다.

서남향 배치의 선교장은 처음 지어질 당시부터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대가족을 위한 주거로 건축돼졌지만, 후에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지금의 형태로 증축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교장은 열화당을 포함한 사랑채 영역, 연지당과 서별당 영역, 안채와 동별당 영역 등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다. 가족을 위한 공간과 이 집을 방문하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특징.

 

이 때문인지 두 개의 서로 다른 기능을 하나의 공간 안에 담기 위한 독특한 건축적 장치들이 등장했다. 좀 더 은밀한 가족간의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안채의 동남쪽으로 동별당이 마련되었고, 방문객의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 사랑채인 열화당과 정자인 활래정(活來亭)이 마련되었다. 객(客)을 위한 공간인 사랑채와 가족을 위한 공간인 안채와 동별당 사이에는 서별당 영역이 삽입되어 있다.

 

서재와 아이들의 교육 장소 역할을 했던 서별당은 부속채인 연지당과 하나의 영역을 이루면서 가족공간과 손님을 위한 외부 공간 사이의 완충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단 차이를 둔 연지당(부속채)은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차단하는 방패막이가 되었고, 서별당은 마루를 통해서 안채 영역과 간접적인 매개 공간의 역할을 했다.

 

각각의 독립된 영역들은 진입부에 위치한 줄행랑채에 의해 하나의 군(群)으로 묶인다. 행랑채에는 방문객을 위한 사랑채 영역과 가족을 위한 안채 영역을 분리하기 위해 자연스레 독립된 두 개의 문이 생겨났다.  

 


독립 & 집합

 

사랑채 영역의 열화당은 4칸×3칸의 크기로 일자형 평면을 이룬다. 단일 건물로, 대청, 사랑방, 침방,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열화당 전면 마당은 일반적인 주택의 ‘사랑마당’과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르다.

 

별채에 딸린 방문객들과 하인들의 북적거림을 수용할 만큼의 넉넉함을 자랑한다. 전면 툇마루 앞의 햇볕을 막기 위한 이국적인 차양의 형태 또한 열화당의 형태를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이것은 개화기 때 러시아 영사가 선물한 것으로 연경당의 서재에 있는 차양과 같은 모양이다. 본격적인 선교장 영역으로 접어들기 전, 멀리 동별당이 내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정자인 활래정은 선교장의 바깥주인이 좀 더 가까운 지인들과 풍류를 즐겼던 사랑채의 확장된 영역으로 생각할 수 있다.

 

열화당을 중심으로 한 사랑채 영역은 안채 영역과 구분되는 마당과 대문을 가진 독립된 영역으로서 외부의 손님을 접대하던 공공적인 주거의 성격을 가진다.

 

 

연지당을 거쳐 사랑채 영역을 지나면 개인적인 주거의 성격을 지닌 안채영역이 펼쳐진다. 선교장의 정면에 마치 병풍을 둘러친 듯한 행랑채의 평대문을 들어서면 다시 안채 영역으로 진입하는 대문과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대문은 행랑채의 평대문이 열린 방향과는 90°로 방향이 꺾여 있어 안채 영역으로 직접 시선이 통하지 않게 되어 있다. 대문의 방향을 틀어서 가족 영역으로 진입하는 밀실적인 대문 마당을 마련한 셈이다. 이런 작은 공간의 배려로 공공적인 성격의 주거와 가족적인 주거라는 별개의 공간이 각각 독립된 영역을 가질 수 있었다.

 

선교장의 안채는 부엌을 중심으로 동별당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겹집(건물의 평면에서 전후에 여러실이 맞붙어 배치된 집)의 평면을 가지고 있다. 동별당은 ㄱ자집의 형태로 선교장 주인의 주거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족들의 회의장소와 접대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던 진정한 의미의 별당이다.

 

안채의 건넌방 측면에는 서별당이 위치해 있는데, 6.25때 소실되었던 건물로 1997년에 복원되었다. 연지당과 마주보면서 대가족 내 아이들의 훈육공간이자 서재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열화당 영역과 안채 영역 사이의 완충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가족과 손님을 위한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독립적이고 유기적인 건물군들은 마치 가벽과 같은 줄행랑이 앞에 놓임으로써 다시 하나의 집합체가 된다. 행랑채는 열화당과 연결되면서 하나의 독립된 마당을 생성했고, 안채 영역과 연결되면서 가족들을 위한 은밀한 대문간을 만들어냈다.

 

행랑채는 내부의 영역들과 교류하면서 독립적인 공간들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다양한 장면들을 배출했다. 선교장의 건물동들은 다른 기능만큼이나 높낮이나 형태도 제각각이다.

 

긴 선형의 매스감을 가진 행랑채는 개성이 다른 건물동들을 전면에서 은폐함으로써 자칫 산만할 수 있었던 건물군에 통일감을 불어넣었다. 선교장의 자유로운 배치에서 기준점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