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도갑사 - 전남 영암 : 월출산

창현마을 2006. 2. 15. 09:07

 

 

 

 

 

 

 

 

 

 

 

 

 

 

 

 

 

 

 

 

 

 

 

 

 

 

 

 

 

 

 

 

 

 

 

 

 

 

 

 

 

ㅁ도갑사소개

도갑사는 산세가 빼어나고 풍광이 아름다워 옛부터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호랑이가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형상이라는 산자락 아래 자리잡고 있다.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道詵)국사께서 창건하신 대가람으로
그 뒤를 이은 수미왕사와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 고승대덕들이
주석 하시면서 깨달음의 참다운 이치를 널리 펼치셨다.

해탈문(국보 제50호)과 마애여래좌상(국보 제144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문수 보현보살 사자 코끼리상(보물 제1134호), 대형석조, 그리고 도선수미비 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이다.

ㅁ도갑사연혁

[연표보기]

도갑사는 월출산 남쪽 도갑산(해발 376m)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잡은 도량으로 신라말 헌강왕 6년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현재 고려시대의 기록은 자료 유실로 알려진 것이 없고 조선 이후의 발자취는 소상히 남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사원의 중창은 1456년(세조2년) 수미(守眉)왕사에 의해서였다.
수미왕사는 왕실의 어명을 받들어 국가적 지원으로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을 세웠고, 부속 암자만 해도 상동암, 하동암, 남암, 서부도암, 동부도암, 미륵암, 비전암, 봉선암, 대적암, 상견암, 중견암, 하견암 등 12개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사원중창은 그 후로도 계속 진행되었는데 '억불숭유'의 열악한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대규모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도갑사가 불교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1653년(효종4년)에는 '도선수미비'와 '월출산도갑사석교 중창비'가 세워졌는데, 당시 영의정과 형조판서 등 국가의 지도급 인사들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보아 그 당시 도갑사의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 후로도 사원의 중수는 계속 이어져 1677년(숙종3년)에는 당간석주를 세웠고, 1682년에는 대형 석조(石槽)를 조성하였다. 18세기 중엽에는 연담 유일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당시 불교사전이라 할 수 있는 '석전유해'를 편찬하였다. 그런데 19세기 이후의 연혁은 알려진 것이 거의 없고, 정유재란,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많은 문화재가 유실되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던 것들도 일제시대와 6.25전란을 겪으면서 소실되었다.


더구나 1977년 참배객들의 부주의로 화재가 발생 화려하고 아름다운 대웅보전과 안에 모셔져 있는 많은 성보들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81년 대웅보전 복원을 시작으로 차츰 옛 가람의 복원불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1996년 주지로 부임한 범각(梵覺)스님에 의해 '도갑사 성보관'이 건립되는 등 유관기관의 역사적 검증을 거친 제8차 복원불사가 활발하게 전개되어 도갑사의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앞으로 도선국사의 재조명에 힘입어 새로운 불교문화의 성지로 자리잡아 나갈 것이다.

 

 

 

 < 부속 암자 >

상견성암(上見性庵)




상견성암에 있는 바위에는 월출산의 빼어난 경관을 칭송하는
"천 개의 바위봉우리 는 서로 빼어남 견주고, 만 개의 구렁은 그 흐름을 다툰다"는 문구가 새겨 있다.


가파른 절벽 위에 풍경처럼 매달린 절이 흔들흔들 구름 끝에 걸려있고, 계곡과 봉우리가 서로 빼어남을 자랑하는 경관과 산정의 샘물맛이 일품이다.
또한 상견성암은 스님들의 수행처로서 많은 고승들이 주석하시면서 수행했던 곳이며, 현재도 수행이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동암(東庵)

동암은 옛 도갑사 12 암자중 상견성암과 함께 유일하게 남아있는 암자이며, 약사여래불의 기도도량으로써 많은 영험을 간직하고 있으며,
특히 동암에 있는 우물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이 약수로 소문이 자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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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중습지 형성, 다양한 식물 공생도량

경칩이 가까워지면 눈 녹은 물로 개울물이 불러나면서 물소리도 날로 달라진다. 남도의 산마을 사람들은 달라진 개울물 소리를 '마심'이라고 한다. 월출산의 마심은 버들개지를 틔우고, 바위 속에 숨어 있던 물고기와 나무껍질 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곤충들을 불러낸다. 고로쇠나무도 마심 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물을 빨아올린다. 겨우내 목이 말라 푸석했던 논밭들도 그 물로 겨울 갈증을 푼다. 마심은 생명의 물이다.

산자락 어디선가 봄꿩 우는 소리 들린다. 옛글에 '春雉自鳴(춘치자명)'이라고 했다. 누가 불러서 봄이 오는 게 아니며, 누가 잡아당겨서 봄풀이 올라오는 게 아니며, 누가 부추겨서 꿩이 우는 게 아니다.

봄이 오면 모두들 스스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길옆으로 도갑천 물줄기가 마심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다.지금은 위쪽에 물길을 틀어막은 저수지 때문에 수량이 줄었지만, 도갑천은 그 옛날 서해의 배들이 올라와 마을에서 구워낸 도자기들을 실어내던 수운로였다.개울은 여울과 소가 적당하게 어울려 있어야 한다. 여울만 이어져 있거나 소만 따로 있으면 생태계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여울은 물속에 공기를 넣어주고, 소는 부유물이 침전하여 수서곤충이나 혐기성 미생물들의 서식지가 되기 때문이다. 수질면에서도 여울과 소가 함께 있어야 좋다.

산모롱이를 돌아서면 저수지가 나온다. 지난 정월에 방생을 다녀간 흔적들이 제방둑에 여기저기 남아있다. 저수지를 하얗게 덮었던 얼음은 다 녹았지만, 물은 아직 얼음만큼이나 차다. 저 차디찬 물속에다 과연 무슨 고기를 방생했을까... 최근 방생에 대한 새로운 인식들이 싹 트고는 있지만, 언론과 환경단체의 눈총은 여전히 따갑다.

저수지를 지나면 왼쪽으로 노적봉(420)이 듬직하게 앉아있고, 오른쪽으로는 도갑산(375)과 주지봉(491)이 이웃해 있다. 노적봉과 도갑산 사이에 자리한 홍계골은 억새밭 발봉까지 길다랗게 나 있고, 동암골은 도갑산 중턱까지 나 있다. 그리고 안골이 도갑산과 주지봉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도갑사는 그 세 골짜기 들머리에 앉아있다.

월인교 아래로 도갑천 개울이 흐르고 있다. 가끔 장마철에 개울물이 범람하자 지난 2000년 가을에 영암군이 개울 주변을 수염 깎듯 정비해버렸다. 구조가 너무 직선적이라서 단순한 배수로에 그치고 말았다. 모름지기 개울은 가장자리로 수생식물들이 들어차 있어야 수서곤충과 물고기와 새들이 찾아와 보금자리로 삼는다. 그리고 토사의 유실도 막아준다. 현재 개울 주변에는 갈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녹조류만 물속에 그득하다. 게다가 군데군데 보까지 막아서 저수지의 물고기들이 골짜기로 오르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상수리, 말채나무, 서어나무, 단풍나무, 산벚 같은 활엽수들이 입승들처럼 건장하게 서 있다. 숲 바닥에는 야생차들이 융단처럼 푸르게 깔려있다. 제 고향인 남중국을 떠나 산 설고 물 선 남의 땅에 와서도 굳건히 살아가는 차나무는 보면 볼수록 그 생명력이 대견스럽다. 곡우를 전후해 절에서 차잎을 따서 덖는다고 한다. 따뜻한 남쪽지방에서는 절집의 조경수로도 적합하다. 가지를 적당히 쳐주면 바자울로도 썩 좋다. 사철 푸른 데다 겨울에 꽃까지 볼 수 있으니 회양목보다야 훨씬 낫다.

해탈문을 비켜 동림암 토굴로 가는 길이 나있다. 큰 절을 돌아난 그 길은 흙냄새 나는 맨땅이다. 게다가 분위기까지 호젓해서 포행산책로에는 딱이다. 대나무와 이대가 밭을 이룬 숲 속에 잎 푸른 난대수인 붉가시나무들이 서 있다. 붉가시나무는 큰 절 뒷숲에서도 볼 수 있다. 붉가시나무 숲은 월출산이 북방한계선이다. 따라서 도상으로 보면 도갑사 북쪽으로는 자생하는 붉가시나무 숲을 보기 어렵다. 붉가시나무는 제주도와 남해안에 자라는 상록활엽수로, 잘 자란 것은 높이가 20미터에 이른다. 동백나무와 비슷한 나무껍질은 매끄러운 편이다. 긴 타원형을 한 잎은 길이가 10센티 안팎이며, 혁질에 윤택이 있다. 암수 한 나무로 꽃은 5월에 핀다. 도토리처럼 생긴 열매는 다음해 가을에야 익는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도갑사 경내가 활짝 열린다. 요사채 앞 작은 화단에 심어놓은 서향이 막 꽃망울을 터뜨렸다. 서향은 중국 원산으로, 상록관목이다. 한줄기에서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잎은 두껍고 광택이 있다. 특히 향기가 좋고 진해서 '천리향'이라고는 별명을 갖고 있다. 오층탑 옆 느티나무 가지에 오색딱다구리가 붙어서 목탁소리를 내며 먹이를 찾고 있다. 딱따구리는 숲속의 의사와 같다. 나무 속에 숨은 해충들을 구제해주기 때문이다.

용추폭포 옆을 지나면 도선국사비각 앞을 지나 등산로가 나 있다. 등산로는 홍제골을 지나서 억새밭-향로봉으로 이어진다. 놀랍게도 이 홍제골에 버들치와 함께 갈겨니가 살고 있다. 갈겨니는 피라미와 매우 비슷하지만, 눈이 크고 검다. 수량도 많지 않고 수심도 얕은 홍제골에 갈겨니가 살고 있다는 것은 기록해둘 만한 일이다. 너른곳에 사는 갈겨니에 비해 씨알도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왔다갔다 하는 것을 보면 노가리만큼이나 굵고 크다. 갈겨니는 물 흐름이 느리고 모래가 깔린 여울에다 알을 낳는다. 유감스럽게도 홍제골에는 그런 조건에 합당한 곳이 많지 않다. 불과 몇 개의 소(沼) 밖에는 없다는 것은 홍제골 갈겨니가 항상 멸종의 위기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만들어 놓은 자연관찰로가 부도전 앞에서 시작된다. 이곳 탐방로의 생태적 특징은 산중습지에 있다. 작은 개울이 산사태 등으로 해서 지형변화를 일으켜 덮히면서 습지로 바뀐 곳이다. 습지 바닥은 이탄층으로 되어 있어서 푹신푹신하다. 이탄층이란 바닥에 떨어진 식물의 잎과 가지가 제대로 분해되지 않은 채 서서히 탄화되어 켜를 만든 곳을 가리킨다. 이탄층은 스펀지처럼 항상 물을 머금고 있는데, 이곳에 끈끈이주걱, 이삭귀개, 잠자리난, 은대난초, 물매화, 숫잔대 등과 같은 흔치 않은 습지식물이 자라고 있다.

습지주변과 햇볕 좋은 산기슭에는 봄꽃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레지와 노루귀를 비롯해서 개불알풀, 애기똥풀꽃, 흰민들레, 현호색, 졸방제비꽃, 남산제비꽃, 양지꽃, 구슬봉이, 괭이밥, 산자고, 족도리꽃, 금창초, 보춘화 등이 선두주자로 나섰다. 뒤이어 홀아비꽃대, 동자꽃, 산매발톱, 원추리, 금붓꽃, 앵초, 산괴불주머니, 둥굴레, 천남성, 피나물, 앉은부채, 개별꽃, 꿀풀 등이 저마다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올 것이다.
습지를 지나면 억새밭으로 가는 등산로와 상견성암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대나무, 참나무, 동백, 사스레피나무, 야생차나무 등이 한데 섞여서 특이한 식생을 보여준다.

키 작은 사스레피나무는 남부지방에서 볼 수 있는 상록활엽수로, 흔히 꽃다발을 만들 때 잎과 가지가 들러리로 많이 쓰이는 나무이다. 다음달이면 연한 황록색 꽃을 피울 것이다. 동백도 햇볕 좋은 곳부터 차례로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어린 동백들이 송송 돋아나 있다. 바닥에 낙엽이 푹씬하게 쌓인 상태를 멀칭(mulching)이라고 하는데, 멀칭은 땅을 덮어 토양유실과 냉해를 막아주고, 땅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준다.

상견성암으로 가는 능선 부근에서야 소나무숲이 나타난다. 나무들도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소나무는 이곳처럼 저들끼리 회중(會衆)을 이루어야 건강하다. 활엽수 가운데 독살이를 하다보면 죽기 십상이다. 소나무와는 반대로 칡이나 송악 같은 덩굴식물들은 저들끼리 회중을 이루어봐야 별수 없다. 다른 나무들 사이에 따로따로 독살이를 해야 나무들을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이다.

 

 

 

 

 

 

 

 

 

 

출처 : 소개글 - 도갑사홈

         아래글 - 목인님블로그

         사진 -    일부 마가렛님, 산사랑이야기님블로그갤러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