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부석사 2 - 사진 갤러리와 글
창현마을
2006. 2. 4. 21:30
부석사 2
해마다 이맘때면 무더위를 이기기 위한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견디기 힘든 찜통더위를 피해 바다와 산과 계곡들을 찾는 것이다.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밀려오는 파도속으로 몸을 던진다거나 매미소리 진동하는 나무그늘에 앉아 맑디 맑은 계곡물에 수박 한덩이만 넣어
두어도 더위는 싹 가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어찌 바다와 산과 계곡만을 피서지라 하랴! 여기 또 하나 더위를 이기는 비법이 있으니 바로
여름휴가를 이용한 '답사여행'이 그것이다.
쨍쨍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그 옛날 조상의 얼이 담긴 문화유적을 들여다보는 '시간여행'을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더위를 잊고 마는 것이다.
경북 영주에 있는 부석사가 바로 그런 곳들 중 하나이다. 부석사는 우리 조상들이 건물 하나를 지을 때에도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자연을
닮아가려 애를 썼는지, 조그마한 돌덩이 하나에도 수많은 의미를 부여하며 그 속에서 깨달음을 얻으려 얼마나 고민했는 지를 잘 보여주는 훌륭한
전범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중 하나로 꼽히는 부석사 여행을 통해 '극락으로 오르는 행복한 순례'를 해보자.
극락으로 오르는 행복한 순례
극락을 뜻하는 안양문을 지나면 바로 무량수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중 하나. 꼭 필요한 것만을 갖춰 간결한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는 주심포양식의 대표적 건축물이며 그대로 한국 고건축의 교과서가
된다.
사람의 착시를 교정하고 시각적 안정감을 주기위해 보정작용을 하도록 고안된
기둥의 '배흘림'과 '귀솟음' 방식, 가운데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게 하여 위나 옆에서 무량수전을 보았을 때 처마 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게 해 육중하면서도 넓은 무량수전의 지붕이 무겁거나 둔하게 보이는 것을 방지하는 '안허리곡'의 수법 등 이 건물 하나에
숨어있는 갖가지 첨단기술들은 알면 알수록 그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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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전경 |
ⓒ2004 이양훈 |
부석사는 당나라가 조국 신라를 침공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 급거 귀국한 의상대사가 서기 676년에 창건한 절이다. 그러하니
지금으로부터 자그만치 1300여 년의 세월과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찰이 일반적으로 산 속 깊은 곳에 터를 잡는 것에 반해 부석사는 독특하게도 산등성이에 길게 자리잡고 있다.
한계단 한계단을 오를 때마다 주변 풍광이 놀랍도록 달라지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기도 한데, 바로 이것이 절을 처음 설계할 때부터
정교하게 계산된 공간구도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저 감탄할 뿐이다.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을 그대로 쌓아 축대를 만들었는데 그 사이사이에 잔돌을 맞춰 끼워 힘을 분산시키도록 했으니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훌륭한 조형예술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다. 부석사의 이 석축은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시나브로 극락에 이르도록 설계되었다.
'구품만다라'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화엄경의 사상을 실제 현실로 나타낸 것이라고도 하는 이 치밀한 구도는, 어찌 되었든 계단 하나
석축 하나라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불교사상을 드러내려한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있는 것만은 분명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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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락에 오르는 안양문. 자연석으로 만든 2단의 석축과 저 뒤로 무량수전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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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무량수전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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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 현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물때 쓴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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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루의 공포사이로 보이는 다섯분의 부처님 형상. '현현불'이라고도 하고 부석사의 숨은 부처님이라고도 한다.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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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의 공포.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꼭 필요한 것들로만 만들어져 있어 '간결미'가 돋보인다.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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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 전경 |
ⓒ2004 이양훈 |
부석사를 부석사이게 하는 또 다른 하나는 바로 무량수전에서 바라다보는 '전망'이다. 겹겹이 쌓인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한 품에 들어오도록
석축을 쌓고 계단을 올려 마치 모든 산들이 부석사를 위해 자리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도록 한 이 놀라운 안목!
그러나 이것은 직접 발로 밟아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게끔 되어 있다.
왜냐하면 부석사는 애초부터 모든 건물과 전망이 한 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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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석사에서 바라다 보이는 전망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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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량수전의 오른쪽, 조사당 오르는 길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 전형적인 신라탑 양식을 보이고 있다. |
ⓒ2004 이양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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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실을 넣고 지나보면 실이 걸리지 않는다는 부석. 즉 바위가 공중에 떠 있다는 얘기이다. |
ⓒ2004 이양훈 |
국보 5점 보물 4점 도유형문화재 2점이 소장되어 있다는 부석사. 1300여 년 전, 조국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의상과
그를 흠모하여 인간의 몸을 버리고 용이 되어 끝까지 수호신이 되어 주었던 선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그래서 부석사가 되었다는 전설 등 이것저것을
생각하며 발길을 옮기다 보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물러가 있다.
부석사 3
역마살을 돋우는 늦가을 색채의 향연. 매년 이맘때면 부석사 은행나무길은 길 떠난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옆사람과 귀엣말을 나눌 여유도 없다. 노란 잎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온몸, 온 마음이 은행잎과 함께 흔들리니까.
역마살을 돋우는 늦가을 색채의 향연. 매년 이맘때면 부석사 은행나무길은 길 떠난 이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옆사람과 귀엣말을 나눌 여유도 없다. 노란 잎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온몸, 온 마음이 은행잎과 함께 흔들리니까.
◆가을을 만나는 부석사=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곳이다. ‘삼국유사’에
‘부석(浮石)’이라는 명칭의 유래가 전해진다. 절을 창건할 당시 일대에 도적이 많아 어려움이 적지 않았으나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를 사모했던 선묘라는 여인의 영혼이 큰 돌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도둑들을 쫓았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절 이름도 ‘뜬 돌’이라는 뜻을 담게 됐다.
경북 영주 부석사 초입의 은행나무길은 전국에서 손꼽을 정도로 아름답다. 자동차로 영주나들목에서 풍기군 쪽으로 약 15분을 달리면 이
길을 만날 수 있다. 은행나무가 맞이하는 약 500m의 짧은 길은 잠깐 한눈을 팔면 쉬 지나가고 만다. 좀더 짙게 운치를 느끼고 싶다면 잠시
차에서 내리는 것이 좋다. 바람결에 들으면 노란 잎들의 아우성이 더욱 생생해진다.
절에 들어서면 약 1300번의 가을을 맞이한 산사의 위엄 앞에 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겨우 몇십 년을 살고도 세상을 다 아는 양
떠드는 사람들을 꾸짖는 듯하다.
헐떡거리며 구품 만다라를 상징하는 아홉 석축을 잇는 계단을 다 오르자 겨우 절과 한몸처럼 느껴진다. 조그만 고통이라도 겪게 하고 나서야
절은 비로소 불청객을 받아들인다. 이윽고 허리를 펴니 가을 빛을 머금은 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즈넉한 산사와 가을 햇살, 이제 막 물든
단풍과 은행잎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가을 아니면 보지 못할 빛깔들이다. 산사는 그저 그 자리에 있을 뿐인데 왠지 마음만 갈팡질팡한다. 어떻게
하면 대자연과 융화할 수 있을까.
시간 여유가 있다면 무량수전에서 노을을 감상하는 것도 좋다. 발 아래 산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연봉들에 펼쳐진 붉은 빛 노을이 장관을
이룬다. 단풍과는 또 다른 아스라한 빛깔이다. 약 20분간 빛의 축제가 펼쳐지고 난 다음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지면 산사를 찾은 이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자연스레 새어나온다. 이런 풍경을 천년 넘게 접했을 산사는 인간의 탄식에 개의치 않고 짙어지는 어둠 속에서 붉은 빛을 드리우고 있다.
입장료 어른 1200원 청소년 800원, 주차료 3000원.


◆부석사에 앞서=부석사로 가는 도중에도 다양한 곳을 구경할 수 있다. 영주나들목을 지나 풍기 쪽으로 약 9㎞를 가면 화려한 고려벽화를
볼 수 있다. 단체 여행객에게 친절한 설명과 함께 벽화를 개방한다.
고려시대 벽화를 감상하고 다시 2㎞를 더 가면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만날 수 있다. 서원은 1542년 풍기군수 주세붕이 고려
유학자 회헌 안향의 사묘를 세운 곳이다. 서원의 기품이 너무 당당해서일까. 이곳의 소나무들은 모두 서원쪽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다.
이곳에서는 또 단종 복위 운동이 탄로나 떼죽음을 당한 선비들의 영혼 소리가 들린다는 죽계천을 만날 수 있다. 주세붕이 이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바위에 붉은 색으로 ‘경천애인’의 첫 글자인 ‘경(敬)’자를 새기자 울부짖음이 멎었다고 한다.
가을이 조금씩 깊어 가는 중인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알싸하다.
바로 옆에 위치한 선비촌에 도착하면 꼿꼿한 선비의 기품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선비촌은 영주 일대 고택 12채를 원형대로 복원한
곳이다. 1만7400평에 지역문화재인 해우당, 두암고택 등 기와집과 선비가 살던 초가, 마을 공동공간인 정자, 물레방아 등이 들어서 있다. 단체
관광객은 방문하기 전에 미리 영주시에 연락하면 전문 가이드의 설명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다.
영주시 문화관광과 (054)639-6391
출처 :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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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조금씩 깊어 가는 중인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제법 알싸하다.
백두대간을 끼고 있는 경북 영주는 늦봄의 소백산 철쭉으로 유명하거니와 가을 풍광도 빠지지 않는 고을이다.
특히 봉황산 기슭에 자리잡은 부석사(浮石寺)의 가을 풍광은 나라에서 명성이 드높을 정도로 빼어나다.
- 최고의 미학을 자랑하는 목조건물 부석사 사하촌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길 좌우론 은행나무가 줄을 잇는다.
- 최고의 미학을 자랑하는 목조건물 부석사 사하촌을 지나면 완만한 경사의 길 좌우론 은행나무가 줄을 잇는다.
가을이 깊어 가면 샛노란 이파리로 뒤덮여 장관을 이루는 길이다.
또 은행나무 뒤로 펼쳐진 산비탈 과수원에선 주렁주렁 매달린 붉은 사과가 유혹한다.
나라에서 가장 예쁘며 웅장한 절집으로 꼽히는 부석사는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렇게 가슴을 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은행나무 덮인 일주문 지나 천왕문 오르는 길. 왼편엔 절에서 깃발을 게양하던 당간 지주가 우뚝 서 있다.
전문가들이 “우리나라 절집의 당간지주 중 가장 세련되게 다듬은 명작”이라고 평가 하는 작품이다.
여기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아홉 개의 거대한 석축은 극락에 이르는 구품정토(九品淨土). 계단을 하나 오를 때마다 고통의 사바 세계는 점차
멀어진다.
무량수전 처마와 석등이 보이기 시작하는 안양루(安養樓) 계단을 올라 뒤돌아 보면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산줄기들이 영남 땅 아담한
분지들을 껴안은 풍경이 펼쳐진다.
김삿갓이 여기서 “인간 백세에 몇 번이나 이런 경관을 볼까나”하며 읊조렸다던 풍경이다.
고개 돌리면 드디어 무량수전(無量壽殿). 창건연대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건물 가운데 두 번째로 오래된 무량수전은 한 미술사학자로부터
‘더하고 뺄 것 하나 없는 완벽함’을 자랑하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아랫 중간 부분이 불룩한 배흘림기둥과 사뿐히 고개든 추녀의 어울림은 현대 건축가들도 탄복할 정도.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에서도 감탄은
이어진다.
보통 불전(佛典)은 내부 정면에 불상을 놓지만 이곳의 주불(主佛)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은 왼쪽 벽에서 오른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다.
무량수전의 건물이 남향이므로 불상은 동향인 것이다.
이는 불국정토의 올바른 정진을 바라는 불교 정신의 발로라 한다.
왼쪽 끝에 불상을 배치하면 정면에서 볼 때보다 먼 거리의 공간 감각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불상 앞의 기둥들에 의해 장엄함까지 더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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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끝에 불상을 배치하면 정면에서 볼 때보다 먼 거리의 공간 감각을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불상 앞의 기둥들에 의해 장엄함까지 더해 진다.
거기에 천장도 막혀 있지 않으니 웅장함까지 표현되는 것이다.
또 길이와 굵기가 제각기 다른 부재들은 뛰어난 절제미를 자랑하고, 기둥 – 대들보 -서까래의 조화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음률을 자아낼
정도로 빼어나다는 평가다.
그리고, 무량수전에서 조사당(祖師堂)으로 가는 언덕길의 삼층석탑에서 바라보는 경관도 좋다.
안양루에서의 그것에 빠지지 않는다.
소박하고 간결한 미를 지니고 있는 조사당은 1377년에 건립된 건물. 내부의 입구 좌우에 보살상, 사천왕상 등 고려말에 그려진 벽화가
있었는데 벽면 전체를 떼어서 보존하고 있다.
역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스승 같은 탄산수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떨쳐 온 오전약수는 부석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샘솟는 탄산 약수로서 보통 부석사 탐방과 한 코스로 엮인다.
- 마음의 병을 고쳐주는 스승 같은 탄산수오래전부터 유명세를 떨쳐 온 오전약수는 부석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샘솟는 탄산 약수로서 보통 부석사 탐방과 한 코스로 엮인다.
백두대간 박달령에서 발원한 계곡의 암반에서 솟아나므로 물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도 수려하고 공기도 맑고 깨끗하다.
특히 요즘 같은 가을엔 잡수가 끼지 않아 더욱 진한 물맛을 선사한다.
오전약수는 조선시대 물맛이 가장 뛰어난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를 주세붕(周世鵬ㆍ1495~1554)은 “이 약수는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 만하다“고 자랑했다.
약수터 옆 바위엔 주세붕이 찾아 왔다가 썼다는 친필 휘호 ‘人生不老(인생불로) 樂山樂水(요산요수)’가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도 소문이 나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명성은 21세기인 요즘에도 여전하다.
주민들은 약수가 신경통, 신경허약증, 선후풍, 고혈압 등에 효과가 있다고 자랑하는데, 특히 위장병과 피부병에 큰 효험이 있다고.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약수터 주변엔 병을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오랫동안 묵는 초가집이 수십 채가 있었다.
지금은 현대식 건물에서 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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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현대식 건물에서 묵는다.
약수로 요리한 닭백숙은 쫄깃쫄깃한 맛이 아주 일품이다.
한편, 매년 가을이면 부석사 가는 길목의 풍기읍에서 인삼 축제가 열리는데, 올해는 10월 6(수)일부터 10(일)까지 닷새간 펼쳐진다.
이 기간엔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인삼캐기 체험을 비롯해 인삼요리 시식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풍기 인삼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 숙식 부석사 입구에 명성식당(054-633-3262)
등 산채ㅍ? 산채비빔밥이 잘하는 식당이 여럿 있다.
대부분 민박을 겸한다.
또 오전약수 주변에도 숙박할 수 있는 민박집과 약수탕 닭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많다.
▲ 교통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우회전)→931번 지방도→ 8km →소수서원→10km →부석면 삼거리(좌회전)→3km →부석사 주차장. 오전약수는 부석사 입구에서 승용차로 20∼30분쯤 걸린다.
약수백숙 1마리(1인분) 15,000원.
▲ 교통 중앙고속도로 풍기 IC(우회전)→931번 지방도→ 8km →소수서원→10km →부석면 삼거리(좌회전)→3km →부석사 주차장. 오전약수는 부석사 입구에서 승용차로 20∼30분쯤 걸린다.
부석면 삼거리→931번 지방도→8km→물야면 삼거리(좌회전)→915번
지방도→5km→오전약수
민병준 여행 작가
출처 : 글 2 - 오마이뉴스
글 3 -
주간한국
사진 - 소구리홈갤러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