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파계사 - 팔공산

창현마을 2005. 10. 28. 16:46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둘러보기



파계사 일대는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어서
마치 속세를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들게 하고
부인사에서 서쪽 방향으로 10분정도 달리면 검문소와 같이
삼거리가 나타나고 이 삼거리는 왼쪽으로 대구시내 방향의
내리막 길이 뻗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파계사로 이어지는 오르막 길이 펼쳐진다.


파계사는 804년에 창건된 절로서
부인사가 신라 선덕여왕과
인연이 있었다면 파계사는 조선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다.
조선조 숙종임금이 어느 날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신하를 시켜 남대문 밖을
살펴보도록 하니 정말 한 승려가 그 앞에서 쉬고 있었고
그 승려가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임금은 영원선사에게 왕자탄생을 위한
백일 기도를 부탁하였고 그 뒤 얼마안가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보였고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하였으니 그 왕자가
바로 영조 대왕이다.


크게 기뻐한 숙종임금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렸다.
현응은 지혜로운 승려로 당시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로 승려들이
고역을 치루고 있었는데 이에 현응은
왕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았다.


그래서 지금도 파계사에는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그리고 영조대왕의 도포가 보관되어 있다.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면 원통전을
중심으로 한 진동루, 설선당,
적묵당 등의 격조높은
당우 4채가 "ㅁ"자를 이루고 있고 원통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영조 대왕의 도포가 발견된 곳이고
목관음보살상이 안치되어 있다.








원통전(圓通殿)
(유형문화재 제7호)





원통전(圓通殿)은 일반적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주불로 봉안하는 불전을 말한다.

파계사 원통전(把溪寺 圓通殿)은 1977년 6월 봉안된 보살상의
개금불사 때 보살상의 복장(腹藏)에서 영조대왕의 어의(御衣)가
나와 파계사(把溪寺)의 중심전각이 되었고, 중심전각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원통전(圓通殿)은 일반적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 하며,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주불로 봉안하는 불전을 말한다.



   파계사 원통전(把溪寺 圓通殿)은 1977년 6월 봉안된 보살상의
개금불사 때 보살상의 복장(腹藏)에서 영조대왕의 어의(御衣)가
나와 파계사(把溪寺)의 중심전각이 되었고, 중심전각인
원통전(圓通殿)을 중심으로 좌우에 설선당, 적묵당 그리고 앞에는
진동루 등이 위치하여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1605년(宣祖 38) 계관법사가
중건하고, 1695년(肅宗 21)에 현응조사때 삼창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건축양식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으로 가구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은 후 둥근기둥을 올리고 있다.
법당 내부의 불단은 은해사(銀海寺) 백흥암(百興庵)의
수미단(須彌壇)과 같은 형태로 정교하게 무늬를 새겨 넣어
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불단의 상부에는 보개(寶蓋)를 설치하고 있다.



 
  원통전(圓通殿) 앞에는 좌우 양쪽에
당간지주와 석등이 배치되어 있다.







목관음보살좌상부복장유물 (
木觀音菩薩坐像附腹藏遺物)(보물 992호)




신라 애장왕 5년(804)에 심지왕사가 세운 파계사에 유리상자를
씌워 단독으로 모시고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기록에 의하면 세종 29년(1447)에 다시
만들었다고 적혀 있어 연대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전체 높이는 108.1㎝이며 머리에는 꽃모양을 정교하게 붙인
3중의 높은 관이 묵중하게 씌여져 있다.


    오른손은 어깨쪽으로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밖으로 하고 있으며, 왼손은 약간 들어 엄지와 중지를 맞댈 듯이
하여 손바닥을 위로 하고 있다.


    옷깃이 양쪽 팔에 걸쳐 무릎으로 흘러 오른발 끝을 덮은
점이라든가, 가슴과 양팔, 무릎등 전신을 감싼 화려한 장식,
무릎 밑에 보이는 물결무늬 등에서 앞시대의 영향이 나타 난다.


    근엄한 표정, 두터운 옷, 손모양, 가슴위로 올라온 치마를
주름잡아 끈으로 고정시킨 것 등은 장육사 건칠보살좌상
(보물 제993호)과 비슷하며, 고려 후기 불상의 전통적인 특징을
지닌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설선당(設禪堂)(문화재료 7호)









이 건물은 인조(仁祖) 1년(1623년) 계관법사(戒寬法師)에 의해
창건(創建)되어 1646년과   1725년 두 번의 중건(重建)과 1762년
중즙공사(重葺工事)가 실시되었다 하며, 1922년과  
1973년 부분적인 보수공사(補修工事)가 시행되었고,
1976년 대수선(大修繕)하였다.



    건물은 정면 7간, 측면 7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겹처마 팔작  지붕집이고, 구조양식은
고복초석(鼓腹礎錫)위에 기둥을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 (
柱頭)를 얹은 민도리 집이며, 상부(上部)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다.



    이 건물은 대중식당(大衆食堂)과 강습소(講習所)로
사용되고 있으며, 구조양식과 가구 수법등이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파계사승가대학으로 사용되고 있다.



산령각(山靈閣)(문화재료 8호)




창건시대(創建時代)는 문헌(文獻) 기록이 없어 잘 알수 없으나,
1976년 중창(重創)되고 1979년 보수되었다.


  화강석(花崗石) 외벌대 기단(基壇) 위에 건립된 정면 1간 측면
1간 규모의 겹처마에 박공지붕집이며, 구조양식(構造樣式)은
화강석(花崗石) 정평초석(礎石)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와 봉두(鳳頭)를 장식한
초익공 (初翼工) 양식(樣式)이다.


    3량가(樑架)로 구성된 지붕 하부구조(下部構造)는
우물천장으로 가려져 있고, 건물 내, 외부에는 금단청(錦丹靑)을
올렸으며, 이 건물은 익공계(翼工系) 건축으로 조선 후기에 발달한
번잡한 장식수법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적묵당(寂默堂)(문화재료 9호):
신라 애장왕(哀莊王) 5년(804년) 창건(創建)되었다는 사전(寺傳)과
조선 광해군(光海君)   12년(1620년)에 창건(創建)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으며, 현재의   건물은 숙종(肅宗)
21년(1695) 중건(重建)되고, 1920년 중창(重創)되었으며, 1976년
번와공사(飜瓦工事)가 있었다.


건물은 정면 6간, 측면 6간 규모로 평면이 ㄱ자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前面)만 겹처마인 팔작(八作) 지붕집으로,
구성양식(構成樣式)은 주상(柱上)에 주두(柱頭)를 얹은 굴도리집으로
상부가구(上部架構)는 5량가(樑架)이며, 비교적 소박한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진동루(鎭洞樓)(문화재료 10호)








조선 숙종(肅宗) 41년(1715년) 창건(創建)되었으며, 1970년
단청공사(丹靑工事)와 1976년 번와공사(飜瓦工事)가 실시된 이
건물은 정면 5간, 측면 3간 규모는 2층 누각(樓閣)으로, 지붕은
팔작(八作) 겹처마로 꾸며져 있다.

  구조양식(構造樣式)은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2개의
쇠서를 장식한 이익공(二翼工) 양식(樣式)이며, 가구(架構)는
5량가(樑架)이고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처리되었으며, 건물의
내·외부에 모노단청(毛老丹靑)을 올렸다.






이 건물은 후대에 유리창문을 넣는등 일부 개조된 부분도 있으나,
이익공(二翼工)의 쇠서등은 조선시대 중·후기 양식에 어울리는
고격(古格)을 보이고 있다




기영각 (祈永閣)(문화재료 11호)




조선 숙종(肅宗) 35년(1696년)경 현응조사(玄應祖師)가
성전암(聖殿庵)과 더불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며, 1974년과
1983년 두 번에 걸쳐 보수공사가 실시되었다.

    건물은 화강석(花崗石) 바른층 쌓기 기단(基壇)위에 건립된
정면 3간, 측면 2간 규모의 겹처마 팔작 (八作)지붕으로,
구조양식(構造樣式)은 덤벙 초석(礎石)위에 원주(圓柱)를 세우고,
주상(柱上)에 주두(柱頭)와 함께 앙서와 수서를 장식한 외일출목
(外一出目) 주심포계(柱心包系) 양식을 보이고 있다.


    상부가구(上部架構)는 5량가(樑架)이나 우물천장으로 가리어져
있으며, 이 건물은 주심포계(柱心包系) 건물로 주두(柱頭)의 장식이
번잡하게 발달한 조선후기 공포양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영조(英祖) 임금나무




영조(재위기간:1724-1776)는 조선21대 왕으로서 숙종의 2남으로,
어머니는 숙빈 최씨이다.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하여 붕당(朋黨)
정치를 혁파 하였고 균역법을 실시하여 조세를 감면하는등 정조
(正祖)와 더불어 조선시대의 가장 찬란한 학문과 문화의 꽃을 피운
임금이다.

파계사는 왕실의 원당이자 현응스님의 도움으로 영조임금이
탄생했다는 설화와 그가 입었던 도포(중요 민속자료 제220호)를
간직한 절이다.

따라서 사찰내 가장 크고 아름다운 250년 정도 된 이 느티나무를
골라 "영조(英祖)임금 나무"라 이름지었다.



위에서 언급한 건물 이외에도 여러 의미가 담긴 건물들은
많이 있다.
































그리고 ...
파계사 를 구경하다보면 이곳 저곳에서 부처님의 모습도 자주
만나볼수 있다.












그 이외에도 건물의 벽에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치장이 되어있어
파계사를 방문하는 이로 하여금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것 같다.















찾아 오시는길

자동차를 가지고 가시는 분은...


기성동 삼층탑이 있는 칠곡 기성리 삼거리에서 오른쪽 팔공산
순환도로를 따라 4.9Km가시면 파계사 국민관광단지가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1.4Km가면 파계사 국민관광단지가
있는 사거리가 나오며,  사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라 1.3Km 가면
파계사 주차장까지 닿는다.


승용차는 파계사 주차장까지 갈 수 있으나 대형버스는 파계사
국민관광단지 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입구를 들어 서면서 마주치는 것 하나하나도 파계사의 오래된
정취를 느끼게 하는것들로 만들어져 있다.






























파계사 약도 및 주변 유적지 약도



                                   출처 :  금강의 종소리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