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대흥사 1 : 전남 해남 - 두륜산 (대둔산)

창현마을 2005. 9. 2. 22:45

 

  두륜산 대흥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 대흥사(大興寺)는 근대 이전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지역 내의 여러 학생들은 이 곳에 모여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성보문화재가 상당 수 존재한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30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 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 301호),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 320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 1347호),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 1357호), 천불전(전남유형문화재 제 48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 52호),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 93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 94호), 관음보살도(전남유형문화재 제 179호), 표충사(전남기념물 제 19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그 외 성보 문화유산이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대흥사,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 대흥사는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우리 나라 대부분의 사찰에는 다양한 창건연기(創建緣起)가 전하고 있다. 이들 창건 연기는 역사적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해당 사찰의 전통과 사상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는데 대흥사에도 몇 가지 창건 연기가 전하고 있다.
대흥사의 창건 연기를 전하고 있는 자료로는 『죽미기(竹迷記)』, 『만일암고기(挽日菴古記)』, 『북암기(北菴記)』 등이 있으며, 1823년(순조 23) 간행된 『대둔사지(大芚寺志)』는 이들 자료를 종합한 내용과 함께 이때까지의 사찰 역사를 총 정리해 놓은 중요 자료이다.
먼저, 『만일암고기』에 전하는 창건 연기는 426년(백제 구이신왕 7)의 신라 정관존자(淨觀尊者) 창건설이다. 신라의 정관 스님이 426년 대흥사 산내 암자의 하나인 만일암을 창건, 이후 508년(무녕왕 8)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선행(善行) 비구가 중건하였다고하나 안타깝게도 이 자료에서 창건주로 소개한 정관존자는 생애나 활동 내용이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
『죽미기』는 544년(신라 진흥왕 5) 아도화상(阿度和尙)의 창건설을 전하며, 자장(慈藏) 스님과 도선(道詵) 스님이 계속해서 중건하였다는 기록도 함께 실려 있다. 현재 사찰 내에서는 대체로 아도화상의 창건설을 따르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써는 대흥사의 정확한 창건 시점을 밝히기가 매우 어려운 상태라고 하겠다. 하지만 지금 응진전(應眞殿) 앞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의 제작 연대가 통일신라 말기 경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태이므로 대흥사는 늦어도 통일신라 말기 이전에 창건된 고찰로 보아야 한다. 또한 정관존자나 아도화상 같은 분들이 창건주로 인식되고 있었다는 점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흥사의 전통을 이해하는 데 있어 반드시 중시되어야할 내용이다.

 


약도

 

 

대흥사  2   -   (대둔사: 두륜산) 전남 해남


   
♣ 대흥사(대둔사)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대둔사(대흥사)는 해남읍에서 동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두륜산 도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 무령왕 14년에 신라 승려인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며, 그후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선조 37년(1604)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마지막 설법을 한 서산대사는 제자인 사명당 유정과 뇌묵당 처영스님에게 "재난이 미치지 않고 오래도록 더렵혀지지 않을 곳" 이라며 해남 대둔사에 자신의 가사와 발우를 두라고 부탁했다. 그 후로 절은 사세가 번창하고 그의 법을 받아 근세에 이르기까지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하며 선교 양종의 대도량으로 자리잡았다.  
일제 때는 대흥사라 고쳐 불리다가 1993년 대둔사라는 이름을 회복했다.

서산대사는 조선 중종-선조대의 고승으로 임진왜란당시 의승군을 이끌고 나라를 지킨 인물로 평안도 안주에서 태어나 묘향산, 금강산등에서 산사의 생활을 하였다. 그는 소년시절 진사시에 낙방하고 호남의 산수를 유람하다가 출가하는 계기를 맞는다. 소백산맥이  서해바다로 향해 달리는 남쪽 끝에 자리한 두륜산에 아도화상이 모후  소지부인을 위해 대둔사를 창건하였는데 서산대사가 대도량으로 키우면서 대흥사로 부르게 되었다.

서산대사는 바다와 산이 이곳을 둘러싸 안고 있는데다 골짜기 또한 그윽하여 만세의 땅 삼재불입지처 만년불파지지 종통소귀지처(三災不入之處 萬年不破之地 宗統所歸之處)라 하였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 휘하의 승군총본영이 있었다. 왜란에 선조 대왕이 의주로 피난하자 그는 전국의 승군 5천명을 모아 관군을 도왔는데, 사명은 강원도 금강산에서,처영은 전라도 지리산에서, 해안은 경상도에서,영규는 충청도에서 승군을 일으켜 스승인 서산을  돕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73세의 고령으로 평양탈환에 공을 세우자 선조는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總攝)이라는 최고의 승직을 내리려하였으나 나이를 내세워사양하고 묘향산으로 돌아가 국가의 안녕을 기원했다. 이여송은 서산대사에게 송시(頌詩)를 한편 보내왔으며 이것은 판각으로 새겨 묘향산 보현사와 밀양 표충사에 보관되고 기타의 유물은  대흥사에 보관되어 있다.

송시 (訟詩)

공리(功利)야 생각없고 불도만 닦았고나.
나라일 위급하니 산을 내려왔도다.

그는 선종과 교종의 통합에 힘쓰다가 1604년(선조 37년) 85세로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멸하였다. 저술로 "선가귀감(禪家龜鑑)"과 "청허당집(淸虛堂集)"이 있다.

대둔사를 찾기위해 대둔사 입구로부터 10리나 되는 울울창창한 나무숲길과 계곡물을 따라 가면 피안교, 일주문을 지나 부도밭을 만난다. 서산대사를 비롯, 대둔사에서 배출한 역대 스님들의 부도와 부도비가 가지런하다. 해탈문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대둔사가람이 펼쳐지는데 전체 경역이 넷으로 나뉘어 각 구역이 돌담으로 둘러있다.  두륜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나뉘고, 다시 남원 뒤편으로 뚝 떨어져 서산대사 사당인 표충사 구역과 대광명전 구역이 있다.

구역별 유적내용
○ 북원구역  
침계루를 지나  북원 안마당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보전, 그 좌우에 명부전과  범종각, 응진전이 나란히 있다. 응진전 앞 3층석탑은  이 절의 유물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보물 3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남원구역
법당으로  천불전과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실어온 옥돌 불상 천개가 빽빽 하다.
○ 표 충 사  
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 외에 8칸짜리 일자집인 보현각, 요사채도 있다.
이 밖에 경내 당우들에 걸려 있는 현판글씨들은 당대 명필들이 쓴 조선시대 서예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표충사는 정조대왕, 대웅보전,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이광사, 백설당 지붕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전주에서 활약하던 호남의 명필가 창암  이삼만의 글씨이다.  

두륜산은 정감록의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기도 한 해발 703m의 산으로 코스가 험하지 않아 2-3시
간 정도면 정상에 이를 수 있다. 구름다리는 정상으로 가는 명소이며 남쪽 억새밭 능선을 따라  남해의
그림같이 떠있는 다도해를 감상할 수 있다.

등산코스
○ 종주로 : 매표소 - 장춘동 - 능선 - 고계봉 - 오소재 - 능허대 - 가련봉(정상) - 만일재 - 두륜봉(구름다리) - 도솔봉 - 작전도로 - 혈망봉 - 오도재 - 향로봉 - 능선 - 상가촌 (8시간소요)
○ 1코스  : 매표소 - 장춘동 - 대흥사 - 삼거리 - 북암 - 오소재 - 능허대 - 가련봉(정상) - 천년수(만일암터) - 일지암 - 삼거리 - 표충사 - 대흥사
○ 2코스  : 매표소 - 장춘동 - 대흥사 - 삼거리 - 북암 - 천년수(만일암터) - 만일재 - 두륜봉(구름다리) - 진불암 - 물텅거리골 - 표충사 - 대흥사(4시간소요)
  현지교통 : 해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대둔사행 군내버스 이용/30분 간격/20분 소요
도로안내 : 해남읍 버스터미널 앞에서  완도  방면 13번 국도를 따라 읍내를 벗어나면 길  
왼쪽으로 대둔사 가는 827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827번 도로로 가다보면 신기리에서 두 갈래 길인데 오른쪽 807번 지방도로로 계속 가면 대둔사 입구 숙박단지가 보인다. 숙박단지 끝에 있는 대둔사 앞에서 절까지 경내버스가 수시운행. (해남읍에서 숙박단지까지 약 9.5km)
  숙박업소 및 음식점 : 두륜산도립공원 집단시설지구내 숙박시설 다수

                               

 

 

                                               << 출처 : 글 1 - 대흥사홈                   

                                                             글 2  - 한국의 산천님           

                                                             사진 - 소구리홈갤러리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