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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용선대 석조불상 722년 무렵 제작판명

창현마을 2009. 7. 13. 17:56

 

 

 

 

창녕 용선대 석조불상 722년 무렵 제작판명

 

 

 

 

 

 

 

 

 

 

 

 

 

 

 

 

 

 

 

 

 

 

'개원 10년' 새긴 명문 발견, "불상 기준작"


(창녕=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 기슭 관룡산(해발 739.7m) 정상 부근의 용선대에 있는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은 통일신라시대 초기인 722년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사실은 이 불상의 팔각형 좌대(座臺) 한쪽 측면에서 불상 제작 연대를 나타낼 가능성이 큰 명문(銘文.새김글자)이 보인다는 김선덕(44) 서진문화유산보존연구소장의 제보를 바탕으로, 연합뉴스가 문화재위원이자 불교미술사 전공인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 등과 함께 11일 현지 조사를 통해 명문을 확인하면서 드러났다.

현지 조사결과 명문은 세 줄에 걸쳐 '開元十../月卄日(?)../成內..'이라는 글자로 잠정 판독됐고, 조사단이 제공한 사진으로 정밀 판독을 시도한 한국서예사 전공 손환일 박사는 '開元十../月卄五../成明..'으로 읽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나머지 글자는 마모가 심해 전체적인 맥락을 잡기는 힘들지만 "개원 10년(722년)..월 25일에..(불상을) 조성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개원(開元)은 당나라 현종 때의 연호로 개원 10년은 서기 722년이다.

최성은 교수는 "그동안 이 불상은 막연히 통일신라시대 불상 정도로만 알려졌고, 일부 불교미술사학자는 양식적인 특성에 주목해 9세기 무렵 작품이라는 견해를 제시했을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명문 발견을 통해 이 불상이 제작된 연대가 개원 10년, 또는 개원 10년에서 개원 19년(731년) 사이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8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또 다른 기준작을 확보하게 됐다"면서 "특히 8세기 전반 석불 중 좌상으로는 제작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이 된다"고 최 교수는 평가했다.

8세기 전반 통일신라시대 석불로 명문을 통해 조성 연대가 알려진 사례는 입상인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719년)과 같은 감산사 석조아미타불입상(720년) 정도에 불과하다. 8세기 중ㆍ후반 작품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석불은
석굴암 본존불 좌상과 석남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766년), 김천 갈항사지 석불좌상(758년 무렵)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이 용선대 석불좌상이 항마촉지인을 한 오른손이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고 무릎 위에서 그친 점은 7세기 후반 작품으로 생각되는
팔공산 군위석굴 삼존불상의 본존상과 동일하고, 부은 듯한 눈두덩과 도드라지게 양각한 대좌 앞면 주름은 감산사 석조미륵불입상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또 좌대 상대(上臺) 앙련석은 두껍고, 삼엽문(三葉文.이파리 3개)을 기본으로 하는 연화문(蓮花文)을 새겼으며, 팔각형 중대석의 각 면에 위, 아래로 긴 안상(眼狀.눈 모양)인 장식을 표현한 점은 이후에 등장하는 9세기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과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이 불상은 전체높이 318cm 에 불상 높이 189cm, 좌대 높이 129cm다.

한편, 최 교수는 이번 조사 성과를 오는 18일 오후 2-6시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열리는 신라사학회 제85차 학술발표회를 통해 공개하는 한편, 문화재위원 자격으로 문화재청에 용선대 불상에 대한 정밀조사를 요청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2009년 07월 13일(월) 오전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