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Annapurn) ; 트레킹의 명소 시리즈 3
안나푸르나(Annapurna)
; 트레킹의 명소 시리즈 3
안나푸르나(Annapurna)란
산스크리트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뜻이며, 등반사적으로는 히말라야 8000미터급 거봉들 중 최초로 등정된 산이다. 네팔히말라야 중앙부에 위치한 안나푸르나 산군은 7~8천미터급 거봉들이 병풍처럼 길게 늘어선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다.
네팔의 성봉인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6993m)를 비롯해 안나푸르나 1봉(Annapurna I, 8091m), 강가푸르나(Gangapurna, 7455m), 안나푸르나 3봉(Annapurna III, 7555m), 캉세르 캉(Kangsar Kang, 7485m), 바라하슁카르(7647m), 타르케캉(7202m) 그리고 안나푸르나 남봉(Annapurna South, 7219m)등 기라성 같은 봉우리들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와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를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늘어서 있다. 그래서 이곳을 안나푸르나 내원 또는 성역으로 부르기도 하며, 네팔히말라야 트레킹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지역이기도하다. 안나푸르나 지역 트레킹은 3~4일 코스부터 20일 이상 걸리는 코스까지 지역과 일정에 따라 다양하다.
새벽에 만난 경이로운 샤울리 바자르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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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오전 7시, 낡고 무너져 내린 벽돌 건물들과 먼지가 풀썩풀썩 날리는 카트만두 시내를 벗어나자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꾸불꾸불한 길이 간간이 보인다. 포장이 되다 말다한 도로를 5시간 넘게 달리니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네팔 제2의 도시 포카라다. 시내를 경유해 북쪽 페와 호반에 한국인 부부가 경영하는 한국 음식점 겸 등반 안내소 ‘사랑산 레스토랑’에 도착해 트레킹 허가 수속을 부탁했다.
침낭 등 부족한 장비를 빌리고 쓸모없는 물품은 주인집에 맡기면서 포터들을 소개받고 최종 산행 준비를 마무리한다.
이 때 카트만두에서 연락이 왔는데 마오이스트(Mao-ist) 반군들의 활동이 더욱 심해져 우리가 빠져 나온 후 고속도로가 폐쇄되었다고 한다.
“포터들을 앞지르지 말라”는 이규태 원장의 말을 명심하며 우리 일행 6명과 셀파 1명, 쿡 1명, 포터 6명 등 총 14명의 트레킹 팀은 히말라야 산맥 속으로 들어섰다.
계곡물은 석회암이 흘러 녹은 듯 파랗고 하얗다. 산세는 마치 60~70년대 초 지리산 대성동 계곡이나 백무동 계곡과 흡사하다. 보라색 들꽃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코끝을 자극하는 가운데 가끔씩 쇠똥 냄새가 뒤섞여 흩날리는 것이 마치 우리나라 봄날 같아 정겹다.
날이 어두워진 후 랜턴을 켜고 30분을 더 간 오후 6시 30분 숙소인 샤울리 바자르(Shyauli Bazar, 1170m)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포터들과 쿡이 닭을 잡아 한참을 고았는데도 어찌나 질긴지 어렸을 적 시골에서 먹었던 묵은 닭 맛이다.
새벽 2시, 한 숨 자고 일어나는 잠버릇 덕분에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다 깜짝 놀랐다. 여태까지의 힘든 일정에 따른 고달픔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히말라야의 산신들은 내게 밤하늘의 속살을 보여주었다. 양쪽 산맥의 검은 실루엣으로 절반을 가득 메운 밤하늘의 위쪽에 갠지스강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다이아몬드’가 짙은 코발트색 밤하늘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마치 창고에 쌓아둔 보석 가마니들이 까만 비로드 위에 한꺼번에 쏟아져 흩어진 형국이었다. 크고 작은 별들이 하나하나 그 빛들을 쭉쭉 뻗어내는 가운데 손 뻗으면 닿을 듯한 밤하늘에는 북두칠성이 영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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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5일, 쿡들의 아침준비로 요란하다. 새벽 별들은 모두 사라지고 하늘은 다시 구름으로 뒤덮였다. 아침 8시, 롯지를 출발하니 서서히 하늘이 개고 봄날 아침처럼 약간 후텁지근하다. 배낭 멘 등에 땀이 밴다. 여러 번의 오르내림 끝에 뉴빌리지 롯지 도착. 포터들이 차려준 점심을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 곧바로 출발했다.
오전과 달리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고 경사 급한 길을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 오후가 되면서 하늘은 잔뜩 찌푸려졌다. 항상 오후가 되면 구름이 내려온단다.
힌두교 양식을 따라 꽃으로 장식한 계곡의 나무다리를 건너 돌계단을 한없이 오른 후 평탄한 길에 접어드니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아마 돌계단을 3천개는 넘게 오른 것 같다. 오후 5시, 오늘의 목적지 촘롱(Chomrong)에 도착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
서서히 다가오는 고소증세
12월 16일, 일어나 세수를 하고 기지개를 켜다가 깜짝 놀라 자빠질 뻔하였다. 눈앞에 펼쳐진 갑자기 솟아오른 눈부신 산봉우리를 보고 ‘억!’ 소리가 절로 나왔다. 안나푸르나 남봉이 아침 햇살을 받아 구름 속에서 번쩍이고 있었고, 이어 서서히 오른 쪽으로 구름이 걷혀 가더니 마차푸차레까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물고기 꼬리지느러미를 닮아 서양인들이 ‘피쉬 테일 피크(Fish-Tail Peak)’라고 부르는 날카롭고 아름다운 산봉우리인데, 누구도 못 오르게 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직접 바라보니 알겠다.
모디꼴라 계곡을 끼고 돌아나가는 길이 참 부드럽고 좋다. 이 좋은 길이 한 달 후면 눈과 얼음에 덮여 거의 통행이 불가능해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는 분해 해놓고 주민들도 아래로 대피했다 봄이 되면 돌아온단다.
오후 5시, 안개가 산 밑으로 내려와 우리를 완전히 감싸버린다. 시야가 차단되어 앞서가는 대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가파른데 몸은 지치고 체력은 자꾸 떨어져 자주 쉬면서 전진하는데, 황국희, 강양순, 원영재씨는 아무 소리 없이 잘 오른다. 헤드랜턴을 켜고 어두워지는 경사면을 오른 후 힌코케이브 사면 길을 지나 나무다리가 놓여있는 계곡을 조심스레 건넌다.
안개 꽉 찬 밤길을 셀파가 불어대는 마술피리 같은 휘파람 소리에 홀린 듯 취한 듯 이끌려 걷기를 한 시간 남짓. 드디어 고도 3150미터의 목적지 데우랄리 롯지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완전히 지쳐버렸다.
샤워실엔 찬물만 나오는데 얼굴은 고사하고 발 씻을 엄두도 안 난다. 원영재씨가 준비해온 물티슈로 대충 손발을 문지르고 양말을 갈아 신었다. 고소 때문에 일어나는 발열과 오한, 두통과 몸살, 구토와 복통 증세 등으로 밤새껏 뒤척이며 컨디션 조절하다 보면 날이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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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7일 오전 6시 30분, 쿡의 “굿모닝 서(Good Morning Sir)!” 소리에 억지로 일어나 차 한잔하면서 정신을 차려본다. 떨리는 몸을 추스려 어두움 속에서 짐을 주섬주섬 챙기고 정리해 식당으로 모이는데 다들 얼굴이 엉망이다.
부석부석 부어 누렇게 뜬 사람, 눈이 팅팅 부어 창호지에 면도칼 그어놓은 것 같은 사람, 밤새 토하다 쓴물까지 넘어와 황달 걸린 원숭이 꼴이 된 사람 등 참 볼만하다.
쿡이 정성스레 준비한 한식 메뉴와 누룽지 그리고, 두 누님들과 이은영씨가 준비한 밑반찬이 널린 우리의 화려한 밥상은 식사 때마다 외국 트레커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오늘은 영 밥맛이 없다.
오전 8시 30분, 영하의 날씨 속에 간간히 바람이 분다. “각자 컨디션에 맞추어 가도록 하라”는 이 원장의 말에 따라 가다 쉬기를 반복하면서 앞으로 전진한다.
저 멀리 계곡 사이로 설봉이 보이는데 어찌나 눈이 부신지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다. 햇살이 피어오르자 순식간에 뜨거워져 버린다. 껴입은 옷들을 벗고 또 벗고 선크림도 바르고 선글라스도 끼고 사이사이 간식도 먹어가면서 서서히 올라간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빛나는 산봉우리들이 빙 둘러 감싸고 있는데 바람은 더없이 싱그럽다. 드디어 히말라야의 내원에 들어온 것이다. 눈에 뒤덮인 거대한 산들과 고소증세만 없다면 마치 따뜻한 봄날 고향 뒷산에 온 느낌이다.
아름다운 안나푸르나 산군, 그러나 밤은 고통스럽다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3700m)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했다. 움직이면 숨이 찬데 쉬고 있으면 참 편안하다.
주변엔 거대한 캠핑장이 펼쳐져 있고 롯지도 규모가 크다. 빙 둘러 산들인데 서쪽 앞산 끝자락에 히운출리(Hiunchuli, 6441m)가 조금 보이고, 그 서쪽으로 안나푸르나 남봉, 바라하싱카르(Fang봉), 안나푸르나 1봉, 캉사르캉, 강가푸르나, 안나푸르나 3봉, 다시 동쪽으로 간다르바 출리(Gandharva chuli, 6248m), 마차푸차레가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신의 보살핌이 아니고는 이렇게 쾌청한 날씨가 없단다.
오후 1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출발. 눈앞에 안나푸르나 남봉이 보인다. 그 아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m)가 있다고 하는데 보기와 달리 한참 멀다. 오후 2시 중간 휴식. 고개를 들어보니 마차푸차레 봉 위에 걸린 초승달이 기가 막히다. 새파란 하늘 아래 뾰족한 삼각형의 설봉이 솟았는데, 그 꼭지점 위에 한 마리 새처럼 올라 앉아 있다.
오후 3시, 폭 좁은 걸음으로 가고 또 가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4130m)하니 해가 넘어가는 상황이라 금방 추워진다. 얼른 옷을 껴입고 주변을 빙 둘러보며 촬영을 해 보는데 그래도 옷 입는 시간이 늦어 몸이 떨리고 머리가 울린다. 한 명, 한 명 자신의 컨디션에 따라 대원들이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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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과 마찬가지로 오후 9시경에 취침에 들었다.
영하 5~10도 정도인 추위에 대비해 나무 침상 위에 스폰지 요가 있음에도 그 위에 다시 매트리스를 깔고 침낭을 펼쳤다.
껴입을 수 있는 온갖 옷가지를 다 껴입고 쑥 찜질팩까지 안은 상태로 침낭 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드러난 얼굴 때문에 한기가 느껴졌다. 그래서 침낭 입구를 봉해 버리면 또다시 숨이 막힌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온 밤을 지샜다.
12월 18일, 기상시간이 되자 눈꺼풀은 무거워지고 몸은 나른한데 그때야 한 숨 자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낮보다 밤이 훨씬 지내기 힘들다. 아침식사 때까지 눈은 붓고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헝클어진 채 몸이 오싹오싹 떨린다.
옆에서는 아랫배가 아프고 속이 메슥거린다고도 한다. 입맛이 없어 밥보다는 누룽지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밖으로 나오니 금세 햇살이 분지 안에 활짝 퍼져 있다. 칼날처럼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방한복을 껴입고 분지 위로 올라갔다.
세계 여러 산악인들의 추모비가 눈에 띄었으며, 우리나라 여성 산악인 지현옥씨의 추모비석도 보인다. 해가 뜨니까 언제 그렇게 춥고 성가셨냐 싶게 금방 살기 좋은 낙원으로 변한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 4200미터 지점까지 거닐면서 2시간 남짓 보내고 내려왔다.
칠순을 바라보는 황국희, 강양순, 원영재씨는 고소적응도 잘 하고 컨디션도 매우 좋아 보여 젊은 필자를 긴장시킨다. 8000미터 봉우리에 쌓인 눈과 얼음들이 녹아 갠지스 강을 따라 벵골만을 거쳐 인도양으로 흘러드는 모디꼴라(Modikhola) 빙하의 시원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간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너무 놀다 보니 점심때를 놓쳐버렸지만 축복 받은 날씨와 내원의 경관은 모든 것을 보상해 주었다. 우리를 위해 그동안 맑게 개었던 날씨가 흐려지면서 구름은 벌써 능선 밑으로 내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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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 반, 도반 롯지(2400m)에 도착했다. 힌코케이브(Hinkocave)에서부터 개이던 두통증세가 2900미터의 히말라야 롯지를 지날 때는 코만 약간 맹맹한 가운데 컨디션이 많이 회복되었다.
약간 쌀쌀한 게 한국의 초가을 지리산 대성동 계곡에서 캠핑 하는 것 같다. 계곡을 끼고 산들이 포근히 싸고 있는 도반 롯지가 참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진다.
가벼운 하산길에 울려 퍼지는 ‘래쌈 삐리리’
12월 19일 아침에 일어나는데 몸이 아주 가뿐하다. 고도가 신체에 이렇게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 못할 것이다. 어제는 자그마치 고도 1700미터를 내려왔다. 그것도 6시간 만에. 모디꼴라 계곡의 꽃들이 너무 아름다워 야생화 촬영을 해가며 다시 더워진 날씨에 옷을 벗고 내려간다.
오후 3시, 쿡이 타주는 네팔 차를 한 잔 하며 휴식을 취하는데 산등성이에 퍼진 안개가 개이지 않고 계속 내려와 우리 주위를 완전히 감싸 돌더니 실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변덕스러운 날씨였지만 날씨의 여신은 우리 편이었다. 촘롱에서 세 시간 거리인 뉴브릿지 도착, 네팔의 민요(우리의 ‘아리랑’ 같은 것) ‘래쌈 삐리리’를 흥얼거리며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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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브릿지의 롯지에서는 태양열에너지로 전깃불을 밝히는데 형광등을 달아놓았다. 새끼 손가락만한 촛불로 밤을 보내는 롯지도 있는데 이곳은 호화판 전등이다.
히말라야지역 롯지의 방 크기는 각각인데, 침상의 크기만큼은 어디나 가로 약 70센티미터, 세로 약190센티미터 정도로 마치 옛날 지방대학의 낡은 기숙사와 흡사하다.
이곳은 돌을 쌓아 벽을 만들고 나무 칸막이로 방과 방 사이를 막았는데 천장은 대나무로 짠 방석을 덮었다.
12월 20일,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해 사울리 바자르에서 점심 먹고 나야풀에 도착, 기다리던 차에 짐을 싣고 팁을 받은 기분 좋은 포터들이 흥얼거리는 네팔 민요를 들으며 포카라에 도착했다.
네팔 민요 가락은 비교적 단순한데 대체로 낙천적이다. 우리의 민요처럼 한이나 안타까움이 배어있지 않은 것 같다.
산행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저절로 흥이나 한 잔 술에 회포를 풀며 진도아리랑 가락에 즉흥 가사를 붙여 히말라야 아리랑을 흥얼거려 본다.
출처 : 마운틴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