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네쉬 히말라야 ; 트레킹의 명소 시리즈 2
가네쉬 히말라야
; 트레킹의 명소 시리즈 2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지역
카트만두에 도착하면 중세풍의 도시 뒤로 보석처럼 빛나는 만년설의 히말라야가 보인다. 무더운 카트만두의 날씨와 대조적으로 하얀 만년설의 봉우리들이 구름위로 나열되어 신비로움을 느끼게 하는데, 그 중 신들의 세계처럼 아름다운 곳이 가네쉬 히말라야와 랑탕 히말라야 산맥이다.
가네쉬 히말라야에는 84년 가을 처음 네팔 방문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 다녀왔지만 대부분이 여행사 업무 차 다녀간 것이다. 방문 때마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하면서 처음 보게되고 떠나면서 바라보던 인상 깊은 산을 올해야 처음으로 트레킹을 떠날 수 있게 되어 설렘과 기쁨이 함께 했다.
99년 2월 12일 가네쉬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일행 10명은 '샤브르벤시'를 향하는 공포의 낡은 버스에 올랐다. 일행이 오른 버스는 카트만두에서 오전 6시20분 출발하여 폭풍 속에서 항해하는 조각배의 운명처럼 마구 흔들리며 굽이굽이 끝없는 절벽 길을 돌고 돌아 오후 6시 30분 랑탕 히말과 가네쉬 히말(7,408m)의 분기점인 깊은 계곡 속의 마을 샤브르벤시에 도착했다.
셀파족에 버금가는 따망족
다음날 10명의 대원과 3명의 셀파 모두 초행인 가네쉬 히말로 향하며 우리는 가네쉬 신에게 행운을 빌었다. 가네쉬는 네팔의 국교인 힌두교에서 나오는 신인데 전해 내려오는 신화에 의하면 가네쉬는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와 그의 부인인 '우마'의 사이에 태어난 둘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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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쉬는 어머니를 극진히 섬기어 늘 우마의 곁에 있었다. 어느 날 우마가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시바가 외출에서 귀가하였고 우마의 방에 출입하려던 시바를 가네쉬가 제지를 하였다.
시바는 우마를 의심하여 강제로 우마의 방에 들어가려고 아들인 가네쉬의 목을 단칼에 베어 버려 우마의 분노를 샀다.
시바는 불같은 우마의 분노를 피하려고 가네쉬를 회생시키려 하였지만 가네쉬의 잘려진 머리를 찾지 못하고 지나가던 코끼리의 머리를 잘라 가네쉬의 머리에 접합하여 회생시켰다.
그때부터 가네쉬는 코끼리 머리를 가진 형상이 되었고 철저한 충성과 신의를 지키는 신으로 추앙되어 현재까지도 사업을 하는 사람과 관공서에 그의 신상이 모셔져 있다. 계곡을 따르고 초원을 지나 산간 마을로 오르니 가네쉬 히말과 랑탕 히말이 잘 보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트레킹의 휴식처인 롯지는 하나도 없다. 가파른 오르막을 계속 오르면 '파중'이라는 따망족 마을이 나오는데 따망족은 셀파 못지 않은 고산족이며 전통적인 풍습과 복장이 특이하다. 파중은 전형적인 따망족 고산 마을로 1층은 동물들의 거처이고 2층에는 사람들이 살림을 한다. 특이한 것은 창문마다 여러 문양으로 조각된 전통 가옥들로 이루어진 마을이라는 점이다.
마을에는 여러 장식으로 멋을 내는 아가씨들이 밀렛(조 종류)을 타작하고 있으며, 할머니의 귀에는 손바닥만한 장식의 귀걸이와 무거운 귀걸이 때문에 늘어진 귀의 큰 구멍이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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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에는 옛날 시골에서 풀무질을 하며 쇠를 다듬는 그림 같은 정경이다.
전통적인 따망족의 마을을 찾기도 어렵지만 이처럼 외지의 영향을 받지 않은 곳은 이제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이미 여러 차례 네팔 트레킹 경험이 있는 정병천씨(49세) 부부는 고아원의 원장님처럼 모여든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을 나누어주느라 애쓰고, 사진작가 김창배씨(46세)와 박안홍씨(48세)의 카메라는 불이 날 정도로 촬영에 열을 올린다.
일행은 마을의 샘터에서 점심을 마치고 오늘의 목적지인 따또바니(온천)까지는 뜨거운 햇볕과 1200미터의 고도를 오르느라 모두 지쳤다.
따또바니는 일반적인 온천이 아니고 놀랍게도 황토 온천이었다. 이런 높고 깊은 곳에 황토온천 이라니? 깊은 산 속에서 솟아오르는 붉은 황토 온천은 우리의 지친 몸을 풀어주고 잔병(?)까지 치유했다.
모두들 즐거워했다. 하루의 피곤함은 황토 온천과 주위에 80여명의 현지인들과의 춤과 노래 등의 흥겨움으로 사라졌다. 따또바니 역시 롯지가 없어서 마을 마당 가운데 텐트를 치고 캠핑을 했다.
깊은 산중의 황토 온천
한참 곤히 자는 새벽 2시경에 마을의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옷을 벗고 춤과 노래를 하면서 온천에서 목욕을 하는 이색 광경이 펼쳐졌다. 특히 노래는 남자와 여자가 한 소절씩 번갈아 부르는 형태이며, 여자의 합창은 서편제처럼(?) 심금을 울려 우리를 환상의 세계로 넘나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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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들은 별빛이 가장 강력한 달이 없는 그믐 새벽에 별빛을 받으며 온천욕과 기도를 하면 병이 치유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 일행은 하산 할 때에 건강 목욕 축제에 참가하기로 했다. 일행 모두 아침 5시까지 계속된 축제를 보느라 수면 부족으로 피곤해 있었지만 베이스캠프로 향한다.
그나마 울창한 소나무 숲을 따라 걸으니 피곤함보다 트레킹의 상쾌함으로 고도를 높여 갈 수 있었다. 설선을 지나 깊은 계곡을 따라 오르니 산에서 계곡으로 떨어지는 폭포들이 모두 얼어붙어 수십개의 빙벽들이 줄지어 이루어져 있었다.
높은 빙벽은 200미터가 넘었다.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가네쉬 빙하를 향하는데 금방 지나온 길에서 갑자기 눈과 얼음 사태가 떨어졌다. 아마 5분만 늦었으면 불귀의 객이 될 뻔했다.
모두들 "이거 트레킹 맞아?" 하고 의아해 한다. 세차고 낙차가 큰 계곡의 물을 외나무다리로 건널 때는 두려움까지 느끼게 한다. 필자는 트레킹 안내인으로서 "와! 멋있는 광경이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속으로는 히말라야 등반대가 베이스캠프에서 전진캠프로 향하는 등반로를 찾는 상황이었고 셀파들도 긴장되어 내 눈치를 본다.
4000미터를 조금 지나 깊은 계곡 위의 암벽 아래에 갈매기 집처럼 텐트를 겨우 설치하자 어둠이 내린다. 처음 4000미터를 오른 사람들은 지치고 고소 증세로 인해 컨디션이 좋지 않아 힘들어했다. 그때마다 오송호씨(00세)의 재치와 농담으로 항상 어려움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특히 4000미터의 즐거운 술판과 오송호씨의 무용담은 차가운 바람, 고소 증세를 모두 잊게 해 주었다. 다음날 목적지인 '산중칼카'까지는 초원 위에 펼쳐진 가네쉬 연봉 및 날카로운 팔도르(0000m)봉의 아름다움은 어려운 트레킹에 대한 소중한 선물이었다.
멀리서 보이던 히말라야가 드디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어 참가자들은 흥분된 얼굴로 트레킹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서로의 감상 표현 및 촬영을 마치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 트레킹은 거대하면서 아름다운 히말라야를 감상하는 즐거운 발걸음이었고 신비의 황토온천과 정성으로 이루어진 이순용씨의 양 바비큐는 트레킹의 즐거움을 한층 더해주었다.
가네쉬 히말에 대한 트레킹 지도와 자료에는 표기된 지명이 전체적으로 맞지 않았으며 특히 따또바니에서는 전혀 민가와 인적이 없는 계곡을 따라 오르는 형태인데 지도와 자료에 있는 지명은 무엇을 근거로 했는지 의문이다.
어떤 자료에는 가네쉬 지역은 중국(티베트)과 국경 분쟁이 있다고 되어있고 많은 트레킹 지도에도 가네쉬히말 상당 부분이 중국(티베트)으로 표기되어 있다.
「네팔 트레킹(TREKKING OF NEPAL)」에는 지명과 시간이 비교적 상세히 표기되어 참고로 했지만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어 혼돈과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처음 가는 지역이라 준비한 GPSⅢ가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 정확성은 놀라웠으며 지명은 물론 현재의 위치까지 정확히 표시되어 처음 가는 트레킹에 대한 불안은 많지 않았다.
GPSⅢ는 국경을 넘어 중국(티베트)으로 갔다가 다시 네팔로 들어오는 것으로 표시된다. 그래서 이 지역에는 롯지는 물론 민가조차도 없으며 등반과 트레킹의 허가가 수월하지 않음을 알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네팔 트레킹 안내서를 제작 중인데 GPSⅢ로 표기를 해야됨을 느꼈으며 등반이나 새로운 지역을 여행할 때 GPSⅢ는 꼭 필요한 장비라고 생각한다. <석채언>
출처 ; 마운틴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