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의 결정판 - 유월의 두타, 청옥산 5 ; 삼화사와 무릉반석
푸르름의 결정판 - 유월의 두타, 청옥산 5
; ('07. 6. 16)
- 삼화사와 무릉반석
동해시에서 서쪽으로 20km 가량 떨어져 있는 두타산은 강원도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무릉계곡을 안고 있는 명승지이다.무릉계곡의 초입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무릉반석 조금 위쪽에 동해시 최대의 사찰 삼화가 자리잡고 있다.
옛날, 삼화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자장율사가 두타산에 절을 짓고 흑연대라고 하였다가, 신라 경문왕 4년인864년 범일 국사가 절을 개축하여 삼공암이라 하였으며, 고려 태조 때 삼화사라고 개칭하였다.
현재 삼화사에는 세 가지 창건설이 전해지는데, 그 중 하나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신라 말기의 어느 날에 각각 많은 무리를 거느린 세 사람의 신인(神人)들이 이곳으로 와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의논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버리자 이곳 사람들은 그곳을 "삼공"이라 이름지었으며, 그 후 얼마 뒤에 사굴산문의 개산조(開山祖)인 범일 국사가 이곳에 들러 절을 창건하고, "삼공사"라 하였다는 것이다.이 설을 뒷받침이나 하듯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조선시대에 와서 태조는 칙령을 내려 이 사찰의 이름을 문안에 기록하여 후사에 전하게 하였다.
그리고 "신인이 절터를 알려 준 것이니 신기한 일"이라 하면서, "그 옛날 신성한 왕이 삼국을 통일한 것은 부처님의 영험의 덕택이었으므로, 그 사실을 높이 기리기 위하여 절 이름을 삼화사로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고려의 태조 왕건이 불력에 의해 후삼국을 화합하여 통일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여러 가지 창건설을 간직한 삼화사는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약사전만 남았었는데, 현종 1년(1660년)에 중건되었고, 순조 23년(1823년)과 고종 43년(1906년) 두 차례의 재난에 의해 소진되었던 것을 재건축하는 등 생생한 역사의 기록장이기도 하다.
그 후 여러 차례 소실ㆍ중건하였으며, 1997년에 쌍용채광권 내에 편입됨으로 인해서 옛날 중대사가 있었던 곳으로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한, 1988년 전통사찰로 지정된 삼화사는 사찰 내에 도지정 문화재인 삼화사철불 및 삼층석탑, 삼성각 등 많은 문화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동석산성이라고도 부르는 두타산성은 무릉계곡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피사왕 23년에처음 쌓았다고 전해진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때 왜군이 이곳에 쳐들어 와서 많은 사람 들이 이 산성으로 피난하였고, 이 고장 청년들은 의병을 조직하여 왜군을 격침한 항쟁지로 그 성터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