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13) - 화성 행궁 4 ; 건물의 배치
수원 화성 (13)
- 화성 행궁 4 ; 건물의 배치
화성행궁의 건물 배치와 주변 경관을 일목요연하게 알려주는 자료로는, 순조 1년에 간행된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도설"과 작자미상의 규장각 소장본 "화성행궁도"가 있다.
이들 자료에 묘사된 화성행궁의 전체 그림을 보면, 행궁은 팔달산 정상 서장대 아래의 산기슭을 중심으로 경사지가 펼쳐지고, 시가지가 열리는 곳의 평지에 위치해 있다. | |
객사는 원래 그 안에 전패(殿牌)를 봉안하고 한달에 두차례씩 왕께 배례하며, 때로는 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수원 신읍치의 객사에는 벽대청(大廳)과 동서헌(東西軒) 등이 있었다. 다음의 향교는 성전(聖殿)을 중심으로 전사청(典祀廳)과 동·서무(東西), 동·서재(東西齋)가 마련되어 있었다.
또 그 후편의 산기슭은 물론 좌·우의 담장 내외에는 소나무·버드나무 등을 비롯한 여러 수종을 식수하여 아름답고 운치있는 조경을 이루어 놓았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신풍루에서 좌익문·중양문·봉수당은 화성행궁 배치에 있어서 하나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나머지 건물들은 이 중심축의 좌우에 약간 비대칭적인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좌측의 남군영 뒤에는 서리청(書吏廳)·비장청(裨將廳)이 내담장을 사이로 직결되어 있고, 이보다 행랑이 옆으로 조금 길어지면서 외정리소(外整理所)가 있고, 그 뒤에 4면으로 긴 행랑으로 둘러싸이면서 정사각형에 가까운 넓은 마당을 갖춘 유여택(維與宅), 그 뒤로 복내당(福內堂)이 이어져 있다.
복내당의 우측으로는 긴 행랑을 통하여 장락당(長樂堂)이라는 건물이 있고, 이 장락당은 행궁의 정당인 봉수당과 지붕이 거의 맞닿아 있을 만큼 앞뒤로 겹쳐져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 뒤로는 10여 그루의 나무가 서 있는 직사각형의 빈마당이 행각 등으로 4면이 둘러싸인 곳이 나온다. 이 마당 북쪽(우측)에는 우화관(于華館)어라는 건물이 담장쪽으로 붙어 서있고, 이 마당의 뒷편으로는 네모난 작은 연못이 파져 있고, 정사각형에 가까운 때 마당을 지나면 ㄱ자형의 낙남헌(洛南軒) 건물이 북쪽을 향하여 건립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화성성역의궤} 소수의 [도설 화성행궁도]에서 마치 도성의 궁궐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왕권의 위용과 품격높은 안목을 거듭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
행궁 앞 - 신풍루
신풍루는 화성 행궁의 정문으로 1790(정조 14)에 누문 6칸을 세우고 진남루(鎭南樓)라고 하였다. 1795년 정조는 신풍루로 고치라고 명하여 조윤형으로 하여금 다시 편액을 쓰게 하였다.
'신풍'이란 이름은 일찍이 한나라 고조가 '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 이라고 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조에게 있어 화성은 고향과 같은 고장이라는 의미로 편액을 걸게 한 것이다.
1795년 을묘 행차시에 신풍루 앞에서는 정조가 친히 참석하여 화성부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굶주린 백성에게는 죽을 끊여 먹이는 진휼 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행궁 건립때 사용한 기중기
봉수당
행궁 명물중에 하나인 300년넘은 고목
장락당
봉수당
글출처 : 화성행궁홈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