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얼이 담긴 문화재
창동 마애불
창현마을
2007. 3. 19. 17:55
창동 마애불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의 남한강변을 내려다보는 큰 암석벽에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이 불상은 충북유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마을에서는 임진왜란 때의 신립장군의 자화상을 그려놓은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거대한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의 윗부분은 양각을 하고 있으며, 아래로 내려오면서 선각으로 새겨놓은 형태로 크고 길게 찢어진 눈꼬리와 큰 코와 귀는 부처의 자비로움보다는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고려초의에 만들어지는 불상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기도 하다.
마애불은 창동이라는 동네 앞, 작은 산 언덕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다. 바위라고 해서 옆으로 드러누워 있거나 평평하게 앉아 있는 바위는 아니다.
그야말로 금방이라도 발을 잘못 디디면 강 속에 빠져버릴 듯한 가파른 바위이다. 어떻게 그 바위 위에 불상을 새겨 넣었는지, 그야말로 미지수이다. 그저 보기만 해도 아찔할 뿐이다.
그 마애불 앞에 서 있는 표지판을 보니, 마애불의 높이가 무려 630cm나 된다. 실제 크기를 봐도 정말로 엄청나다. 어떻게 그토록 큼지막한 바위에 불상을 새겨 넣었을지 입을 떡하니 벌리게 된다.
그 마애불 앞에 서 있는 표지판을 보니, 마애불의 높이가 무려 630cm나 된다. 실제 크기를 봐도 정말로 엄청나다. 어떻게 그토록 큼지막한 바위에 불상을 새겨 넣었을지 입을 떡하니 벌리게 된다.
물론 크고 길게 새겨진 눈 꼬리와 불거진 귀와 코를 보면 근엄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서민적인 친근감을 더 나타내 준다. 어찌 보면 충주지방의 토속적인 미를 더 드러내는 것 같았다.
이 마애불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남한 강변에서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이른바 남한 강변을 따라 탄금대 쪽을 바라보고 있다. 탄금대란 바로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왜군들을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죽은 곳이다. 그 까닭에선지 충주 사람들은 이 불상이 신립장군의 자화상이라는 이야기를 옛적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연꽃 모양이나 불상에 새긴 옷 문양 등을 볼 때 이 불상은 임진왜란 때 새긴 불상이 라기보다는 훨씬 앞선 고려시대의 불상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그만큼 학자들은 이 불상의 시대상에 관심을 모으겠지만,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야 그것을 만든 이유를 더 중요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이 강변 암벽에 새겨져 있다는 것, 인근에 목계 나루터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수로를 이용할 때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상 앞에서 빌고 또 빌면서 건너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없으리란 법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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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꽃 모양이나 불상에 새긴 옷 문양 등을 볼 때 이 불상은 임진왜란 때 새긴 불상이 라기보다는 훨씬 앞선 고려시대의 불상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그만큼 학자들은 이 불상의 시대상에 관심을 모으겠지만,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야 그것을 만든 이유를 더 중요시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불상이 강변 암벽에 새겨져 있다는 것, 인근에 목계 나루터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사람들이 수로를 이용할 때 아무런 사고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불상 앞에서 빌고 또 빌면서 건너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 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없으리란 법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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