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초 ‘대승사론현의기’ 우리나라 最古문헌 맞나
7세기초 ‘대승사론현의기’ 우리나라 最古문헌 맞나 | |
입력: 2006년 10월 23일 18:37:14 |
대승사론현의기’(大乘四論玄義記·이하 사론현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문헌인가.
지난주 한국 최고의 문헌이 발견됐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학계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지난 20일 서울 대우재단 빌딩에서 열린 ‘백제 승려 혜균(慧均)과 대승사론현의기의 재발견’ 연구 발표회에는 70여명의 학자·시민들이 참석해 불교사 관련 세미나치고는 성황을 이뤘다.
이날 주제 발표자인 최연식 목포대 역사문화학부 교수는 사론현의가 중국 문헌이 아니라 600년 무렵 백제에서 백제인 혜균에 의해 쓰여졌다고 주장했다.
최교수가 결정적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 문헌에 나오는 절 이름 ‘보희사(寶憙寺)’가 2000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에 새겨진 보희사와 일치한다는 점이다.
최교수는 “‘현재 이곳(今時此間)’의 ‘보희사 연법사(寶憙淵師)’와 ‘기원사 운스님(祇洹雲公)’이…”라는 부분에 주목했다. 중국에 보희사라는 절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려진 바 없지만 백제에는 확실히 있었음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 책이 백제에서 쓰여졌다는 논리다.
이외에도 최교수는 당시 중국에서 잘 쓰이지 않았던 ‘탐라(耽羅·제주도)’ ‘곤륜(崑崙·인도와 서역) ‘오로(吳魯·남북조)’ 등의 지칭이 쓰인 점을 정황증거로 들었다.
사론현의는 인도 대승불교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한반도에 처음 전해진 형태의 불교 종파인 삼론종(三論宗)에 대한 개론서다. 그 필사본이 일본에만 전해지며 편찬자 혜균은 막연히 중국 승려로만 알려져 왔다.
최교수 주장이 사실일 경우 사론현의는 통일신라시대에 쓰여진 원효의 ‘대승기신론소’보다 60년가량 앞선 문헌이 된다. 아울러 남아 있는 문헌이 거의 없어 연구 불모지에 가까웠던 백제 불교사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토론자들은 최교수 주장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불교사)는 “앞뒤 문맥 상 ‘보희사 연법사(寶憙淵師)’는 필사자가 원본을 베껴쓰는 과정에서 ‘보량법사(寶亮法師)’를 잘못 옮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로마자나 한글과 달리 한문은 오사(誤寫·잘못 베낌)가 특히 많아 의심스러운 부분을 결정적 근거로 삼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김상현 동국대 교수(한국사)는 “최교수가 중국에서 발견되지 않은 보희사에 대해서는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중국 절임이 명백한 기원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분석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최교수가 자신의 논리에 맞추기 위해 단 하나의 증거를 무리하게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들 두 교수는 당초 언론 보도에서 최교수의 주장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코멘트를 한 것으로 돼 있다. 이들은“그때는 논문을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기자의 유도 질문에 ‘예 예’ 하는 식으로 답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최교수는 이들의 주장에 대해 “오사(誤寫)를 문제 삼기 시작한다면 텍스트 자체를 들여다 볼 수조차 없다” “‘보량법사’는 절 이름 없이 승려 이름을 쓰면서 ‘기원운공’은 앞에 절 이름(기원사)을 쓰고 뒤에 승려 이름(운공)을 쓰는 것은 일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이날 토론은 양측의 팽팽한 공방으로 평행선을 그렸다. 공방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사론현의의 내용에 대한 심화된 검토와 새로운 자료가 발견돼야 명쾌한 결론이 날 것으로 보았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