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춘향과 이몽룡도령의 사랑을 찾아...(1)
- 남원 광한루의 사진갤러리
< 남원과 광한루 >
온통 춘향이 사연으로 덮여 있는 도시 남원, 남원역 근처의 시내 복판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廣寒樓園)이라고 한다.
광한루의 역사는 세종 때 명신 황희(黃喜)정승의 아버지 황감평이 지은 일재(逸齋)라는 작은 서실로부터 시작된다. 그 뒤 그의 아들 황희가 태종의 양영대군 세자폐위를 반대하다가 이곳에 유배되었을 때 그 자리에 누각을 짖고 광통루(廣通樓)라 했다.
그 후 전라감사였던 정인지(鄭麟趾)가 누에 올라 경치를 감상하다가 “달나라에 있다는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가 바로 이곳이 아니겠느냐.”고 한데서 광한루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정문인 남문에는 청허부(淸虛府)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후로 여러 명의 남원부사, 전라감사 등에 의하여 증축되고 개수 되었으며,광한루 앞 장방형의 큰 연못 안에는 신선이 산다는 전설의 삼신산을 본떠 만든 세 개의 인공 섬이 있는데 이 섬들은 송강 정철이 관찰사로 있을 때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섬과 섬 사이는 오작교를 놓아서 연결시키고, 두 섬에 각각 정자가 하나씩 있어서 하나는 방장정(方丈亭)이고, 또 하나는 영주각(瀛洲閣)이다.
나머지 한 섬에는 정자가 없고, 그 앞의 연못 밖으로 큰 정자가 있어서 그것은 틀임 없이 봉래정(蓬萊亭)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지만 나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가서 완월정(玩月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철이 섬을 만들고 이름을 지었지만 그 후 사람들이 정자를 지으면서 정자 이름을 섬 이름에 맞추지 않고, 당명황(唐明皇)처럼 달속의 광한청허부를 완상하려고 완월정이라고 했나 보다.
광한루 뒤 오른쪽에는 춘향의 절개를 상징하는 듯 대나무 숲에 둘러 쌓인 춘향사(春香祠)가 있고, 춘향사에는 누가 그렸는지 예쁘게도 생긴 춘향의 영정이 세워져 있다.
산책길 중간에는 춘향이와 성이 같다고 하여 춘향이 아버지 일 것이라고 하는 성안의(成安義)의 비석이 다른 비석들과 차별이라도 하려는 듯 저만치 홀로 서 있어서 눈길을 끈다.
경내의 한편에는 월매집이라는 초가를 재현시켜 놓았고, 또 다른 쪽에는 전시관을 지어서 춘향의 일생을 그린 대형 그림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입구에는 이도령이 암행어사 출두 전 변학도 생일잔치에 거지행색으로 참석하여 지었다는 잘 알려진 유명한 시와 함께 춘향이 옥중에서 이도령을 그리며 썼다는 또 하나의 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지난 해
어느 땐가 임은 가시고
去歲何時君別妾
벌서
겨울이 지나 가을이 오네
昨已冬節又動秋
세찬
바람 한 밤중에 찬 비만 내리는데
狂風半夜雨如雪
어쩌다가 남원 땅의 죄수가 되었는고.
何爲南原獄中囚
보물 제281호 광한루(廣寒樓)
출처 :글 - 남원 광한루홍보물홈발췌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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