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머무는 여행지

천자암 쌍향수

창현마을 2006. 5. 20. 22:14

 

 

 

 

 

 

 

 

 

 

 

 

 

 

 

 

 

 

 

 

 

 

 

 

 

 

 

 

 

 

 

 

 

 

 

 

 

 

 

 

송광사의 3대 명물중 하나라는 쌍향수의 이름을

오래전부터 듣고 사진도 많이 보았지만 실제로 가 보지는 못하였다.

처음에는 송광사 경내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송광사에서 멀리 떨어진 천자암이라는 암자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가을 조계산 등산을 하면서도 천자암을 가려고 하였으나 멀어서 포기 하였다.

 

이번에는 마음먹고 천자암을 목표로 집을 나섰다.

송광면 이읍리에서 천자암으로 가는 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읍리를 찾았다.

이읍리에서 부터 천자암까지는 가파른 산길인데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중간에 마주 오는 차가 있으면 교행이 어려울 정도로 길이 좋지 않았다.

 

산 중턱에 있는 자그마한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파른 길을 걸어서 간다.

평소 등산으로 단련이 되어 힘들이지 않고 10여분만 천자암에 도착하였다.

멀리 산 아래 마을이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종각이 우리 부부를 반겨주었다.

 

 

천자암은 작은 절이지만 전망이 좋은 곳이다.

멀리 이읍리 마을이 보이는데 오늘은 조망이 좋지 않다.

일요일(3월 12일) 오전에 황사가 심하고 날씨가 추워서 아쉬움이 많았다.

 

 

천자암 뒤 뜰에 꿈에도 그리던 쌍향수가 서 있었다.

800년을 한결같이 이 자리에서 사람들을 맞이하였던 쌍향수...

서로 마주보며 서 있는 두 그루의 항나무를 바라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아내와 나는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고개를 숙여 참배하였다.

쌍향수는 예사 나무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고 바라 보기가 송구스러운 그런 나무였다.

 

 

전설에 의하면 쌍향수는 고려시대 보조국사와 제자인 담당국사의 지팡이라고 한다.

800년이라는 긴 세월을 백성들의 입을 통해 전해 지는 것은

쌍향수가 단순한 나무가 아니고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에게 희망이었다는 증거이다.

 

 

나는 쌍향수를 바라 보며 역사를 생각하였다.

유난히 왜적의 침략이 많았던 남해안의 역사를 쌍향수는 알고 있으리라....

고려말 왜구의 노략질, 그리고 임진왜란때 왜적들의 침략....

수 많은 전란속에서도 백성들은 끈질긴 삶의 끈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을 괴롭히는 것이 어디 왜적뿐이었을까?

쌍향수 나무를 만지면 극락에 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나무 주변에 울타리를 둘러서 사람들이 만지지 못하지만

옛 사람들이 극락에 가기를 기원하며 쌍향수를 손으로 만졌다고 한다.

쌍향수는 800년 긴 세월동안 우리네 民草들의 희망이었다.

희망의 나무 쌍향수가 있어서 그 어려운 세월을 견딜 수 있었으리라.....

 

 

천연기념물 제 88호라는 표지석도 큰 감동을 주었다.

뒷면에는 大韓民國이라고 새겨져있다.

 

 

쌍향수를 참배하고 산을 내려 오면서 길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산 위 주차장까지 간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이읍리에서 걸어서 30~40분이면 충분히 천자암에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걸어서 오르신 이 길을 나도 걷고 싶었습니다.

이제 천자암을 오르는 길을 알았으니 다음에 오면 이읍리에서 걸어 가겠습니다.

희망을 찾아서 쌍향수를 찾아가는 조상님들이 걷던 길입니다.

 

 

 

 

 

 

 

 

 
 

 

 

 

 

출처 : 미디어다음기사

남도별곡님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