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가치는 ‘그것답다’는 데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생은 선생다워야 하고, 군인은 군인다워야 하듯이…. 그러면 사찰의
가치는 사찰다울 때 있는데, 절이 절답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이것입니다’하고 똑 부러지게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막연하게나마 고즈넉하고,
고풍스럽고, 명산 속의 어울린 곳에 터를 잡고, 정갈하고, 보기만 해도 신심이 절로 우러나올 듯하고… 등등 이런 분위기의 종합이
아닐까. 절다운 절이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사라지고 있지만 경북 의성군 단촌면에 자리잡고 있는 고운사(孤雲寺)를 찾으면 누구나 ‘참으로
절답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고운사를 절답게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우선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기까지 1km 남짓한 숲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이 세상 이치라면 자동차로 편히 가는 것보다 천천히 숲 속을 걸어가며 자연을 느껴보는 것이 더 좋으련만
많은 사람들이 무신경하게 자동차로 먼지 일으키며 바삐 드나든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충분한 이 길은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놓아 어느 계절에 찾아도 마냥 좋다. 굴참나무의 연두색 새잎이 돋는 봄은 봄대로 좋고 온갖 수목이 제 자랑하는 여름은 여름대로,
단풍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면 더더욱 좋다. 활엽수는 옷을 다 벗어버리고 소나무가 비로소 자신의 계절인양 푸름을 뽐내는 겨울에도 역시 좋다.
넉넉한 숲길을 천천히 걸어들어 가면 다리품을 보상해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있는데, 고운사를 다들 왜 최고의 명당터라 하는지,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모습)의 터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은 알 듯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예전부터 고운사가 한강 이남에서는 최고의 명당터임을 지관이나 풍수지리를 공부하는 사람 등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숲길을
걸어 고운사 일주문쯤 이르면 주변 산세가 걸어들어 온 사람들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듯 차츰 눈에 들어오는데, 반쯤 핀 연꽃잎을 닮은 산봉우리가
고운사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반쯤 핀 연꽃봉오리에 자리 잡은 고운사(孤雲寺)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경북 북부지역의 중심 사찰인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의성 고운사 모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는데, 신라시대 큰 사찰은
종교적 역할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였으므로 이 지역을 하나의 벨트로 형성하여 거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지금도 고운사는 부석사와 봉정사를 말사로 거느린 조계종 16교구 본사이다.
고운사는 비록 의상대사가 창건했지만 의상대사 보다는
최치원에 관한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다. 신라말기 최치원이 고운사에 잠시 있으며 가운루, 우화루 등을 건축하는데 힘을 보탰고 절 이름도 최치원의
호 고운(孤雲)을 따 고운사(孤雲寺)라 이름했다고 전해진다.
고운사 답사여행에서 놓치지 말고 꼭 보아야할 문화재가 몇 곳 있는데,
우선 가운루와 우화루이다. 외형적 웅장함과 종교적 중요성이야 당연히 대웅전이겠지만 대웅전은 최근에 터를 마련하고 새로 지은 건물이라서 문화재적
가치를 말하기는 어렵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면 개울을 가로지르는 정면 5칸 측면 2칸(전통건축에서 1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한다)의 팔작지붕을 한 장중한 건물이 바로 가운루인데, 여러 절집에서 여러 누각(樓閣)을 봤지만 이처럼 장중하고 아름다운 누각은 드물었다.
개울을 가로지르게 건축한 것으로 봐서 개울을 건너는 다리 역할도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지금은 새로 난 다리와 복개한 길이 있어 제
모습과 가치는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가운루에 올라 천왕문과 일주문 쪽으로 바라보고, 또 대웅전 쪽으로 바라보면 왜 이곳에 누각을
세웠는지 짐작이 간다.
가운루와 인접해 개울을 비켜 앉은 누각이 우화루(羽化樓)인데, 사찰에서 우화루라는 이름은 흔하다. 송광사, 화암사, 백련사, 봉정사 영산암 등
여러 사찰의 누각에서 우화루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줄인 말로써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특이한
것은 고운사 우화루에는 현판이 두 개 달려있는데, 밖에는 신선이 된다는 도교적인 우화루(羽化樓)라는 현판을 달고 있고 누각 안에는 불교적 용어인
꽃비가 내린다는 뜻을 가진 우화루(雨花樓)라는 현판을 달고 있다.
지금은 개울을 복개해 흐르는 계곡 물을 볼 수 없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우화루에 앉아 흐르는 계곡의 물과 가운루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때마침 활짝 핀 벚꽃 그 하얀 꽃잎들이 우수수 꽃비라도
뿌릴라치면,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신선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옛 이야기가 되었지만…. 가운루와 우화루를 거쳐 대웅전
구역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찰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솟을대문에 ‘만세문’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특이한 건물이 보이는데, 바로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터에 자리잡은 ‘연수전(延壽殿)’이다. 연수전은, 조선 말기 왕실에서 고종황제의 만수무강을 기도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건물이다. 비록 사방 3칸의 작은 건축물이지만 황제를 위한 곳이라 온갖 정성을 다해 지었다.
조선 후기양식의 연수전 단청은
푸른색이 감도는데 사찰에서 사용하는 연꽃 등 일반 문양이 아니라 왕실에서 주로 사용하는 문양이 많이 그려져 있다. 우선 조선 말기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태극문양이 가장 눈에 많이 띄고 벽과 천장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과 봉황이 그려져 있다.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도 또한 그려져 있는데 비바람이 들이치는 곳은 불과 1백년의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희미하게 윤곽만 남아
있다. 조선 말기의 단청을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기에 서둘러 보전처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고운사에는 그 밖에도
극락전, 명부전, 약사여래석불, 응진전 등 문화유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느 한 가지만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문화재를 보러가며 어찌 문화재만 하나만 달랑 보고 오겠는가. 산을 보고 꽃을 보고 사람 살아가는 것도 보고 두루두루 봐야하는데
우리는 어느 한 가지에 국한하는 작은 눈을 가질 때가 더러 있다.
돌담에 핀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정겨움을 느끼며 천천히
둘러보면 고운사가 절답다는 것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무렵 고운사에는 절을 감싸고 있는 느티나무와 굴참나무가 우거지고, 부용반개의
산봉우리마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서는 솔향기가 가득 우러나 마음을 채운다.
사찰 주변에 그 흔한 음식점과 기념품 가게 하나 없고
주차료와 입장료가 없는 절다운 절 고운사의 숲길을 천천히 걸어 나오다보면, 단풍들고 낙엽 지는 가을에 오면 또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각 지역마다 대표하는 문화유적과 여행답사지가 있다. 영주 하면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안동 하면 하회마을이, 강릉
하면 경포대와 오죽헌이 떠오르듯이 어느 지역이나 대표하는 여행지가 따로 있다.
의성의 대표적 여행지는 당연히 고운사이다. 그리고
금성면 탑리에 있는 5층탑과 삼국시대 이전 부족국가의 고분, 그밖에도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 씨앗을 처음으로 재배한 목화 시배지와 공룡 발자국
화석 등이 있는데, 다들 고운사에서 30-40여분 거리인 의성군 금성면 탑리 부근에 있기에 그리 힘들이지 않고도 두루두루 둘러볼 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