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아산 >
; 전남 화순
그 벼랑바위 사이를 어렵사리 타서 위에 오르면, 거기에 또 하나의 경이가 펼쳐져 있었다. 삼백여 평을 헤아리는 그야말로 넓은 '마당'이 질펀했던 것이다. 그런데 또 무슨 조화인지 바위가 평평해서 된 '바위마당'이 아니고 흙으로 된 '흙마당'이었다. 그리고 바위는 담을 치듯이 가장자리를 따라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넓은 바위가 흙을 담고 있는 격이었다." - <태백산맥> 제9권 226쪽
실질적 피해를 없애고, 심리적 불안감을 없애고, 상징적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마당바위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토벌대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번째 싸움에서 다시 밀려나고 말았다. 거기에 맞서 빨치산들은 네번째 공격을 준비했으나 실행에 옮길 수가 없게 되었다." - <태백산맥> 제9권 227쪽
지리산과 무등산을 잇는 지리적 요충지와 험한 산세 때문에 6·25 당시 빨치산 전남총사령부가 주둔(노치리 뒷산 해발 700m고지)했다. 또, 수리, 노치, 솔치 지역에 병기 공장을 건립하고 활동했으며 노치 동화석골에 진지를 구축, 백아산 매봉과 마당바위에서 빨치산과 토벌대간의 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하여 남도 사람들은 늘 백아산에 대해서 조심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16명이 광주에서 백아산으로 출발한 것은 지난 27일 오후 1시 30분이었다. 화순 온천 앞을 지나 동복쪽으로 가다 보면 백아산 휴양림이 나온다. 우리들의 산행은 오후 3시에 화순군 북면 노기리에 있는 백아산 관광목장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우리들도 마당바위에 앉아 짊어지고 간 막걸리를 내 놓고 마시기 시작했다. 자연 우리들의 이야기는 그 시대의 아픔으로 이어졌다. "조정래 소설가가 막걸리 한 병을 들고 올라와 이 마당바위에서 마시며 빨치산의 활동을 취재했던 바위라네요. 이 백아산은 빨치산 전남도당이 위치했던 곳인데 이 마당바위는 화순과 곡성에서 오는 토벌대를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망루가 된 셈이지요." "<태백산맥>에 보면 백아산에서의 전투가 너무 치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마당바위를 빼앗기고 나서 조원제는 해방구까지 빼앗겼다고 생각했는가 봐요." "맞아요. 빨치산에 항미소년돌격대가 조직되어 토벌군과 이 백아산에서 싸웠는데 많은 사사상자가 난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요. 소년돌격대는 삼십여명으로 모두가 열네다섯 살 정도로 하나같이 광부들의 아들들이었다네요."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쓴 <태백산맥>이 독재시대에 정말 젊은이들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었어요." "그래요. 80년대에 <태백산맥>은 우리를 보는 새로운 등불이었다고나 할까요.? 특히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것은 아마 인기가 아니라 현실을 보는 눈을 뜨는 것이었겠지요." "그러한 책을 극우들이 보안법 위반으로 고발해서 조사한 것이 역사의 비극이지요." "그래도 시대는 많이 변한 것 같지요. 남과 북이 하나가 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으니."
"아, 맞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독재의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선왕조, 일제 강점기, 독재 정권으로 계속 이어지는 역사 가운데 우리는 대통령에 대한 상이 아직도 독재 대통령의 상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 대통령이 자꾸 다 내어 놓겠다고 하면 헛소리라고 웃어 넘기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거머쥔 대통령은 독재의 위력만 있지 능력있는 대통령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요. 어떤 교장들과 이야기하면 요즈음 교장을 못해 먹겠다는 아우성이 대단해요. 옛날의 교장처럼 한마디 하면 모든 교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나요? 대통령도 맞아요. 독재시대의 대통령은 그 말이 법보다 더 앞섰잖아요. 그 총대는 정보기관이 메고요. 현 대통령을 보세요. 그런데 독재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여의봉으로 여기던 검찰이며, 세무서며, 안기부며 모두 독립시켜가고 있잖아요." "첨단을 달리는 시대의 대통령상은 달라져야 할 것 같아요. 다 내어 놓을 수 있는 대통령 얼마나 멋있어요. 정말로 대통령은 달라지고 있는데, 독재시대의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통령 무능하다고 욕하고 난리지요. 옛 독재자처럼 모두 잡아다가 족쳐야만 된다나요. 요즈음도 가끔 전두환 대통령이 잘했다는 사람이 있어요. 시원하게 밀어붙였다나. 참으로 독재에 대한 향수가 너무 강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세계적으로도 히틀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처럼."
오후 5시가 넘어 마당바위에서 백아산 정상인 매봉(810m)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철쭉 군락지가 있고, 그 옆에 샘이 있었다. 가을을 알리는 억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역시 백아산 정상은 흰거위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흰거위산이라고 이름하였던 선인들의 정취가 가득했다. 슬픈 역사만 없었다면 온통 흰 바위들이 가득 어우러진 아름다운 산이었다.
전망대에서 백아산 휴양림이 있는 산막까지는 약 1.7km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팔각정에서 능선을 타고 휴양림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이미 해는 넘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발길을 재촉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앞서 갔던 일행 중에는 다급함에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도 있었다. 휴양림인 산막에 도착할 무렵 우리 일행 중에 배낭에서 전등을 꺼낸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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