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부처님 오신날 찾아간 명찰 - 불영사

창현마을 2014. 11. 24. 09:48

 

 

 

 부처님 오신날 찾아간 명찰 - 불영사

 

 며칠전 오랜만에 동해안 일주 여행길에 오르게 되어 도저히 감출 수 없는 설레임으로 인해 구름에 올라탄 듯 달뜬 기분이 가득한

가운데 부처님 오신날을 맞이하게 됐다.

신록의 계절이 이제 막 문을 여는 시기라 여린 나뭇잎들의 연두색이 어린아이의 여리고 보드라운 살결같아 다가가조차 조심스럽다.

언젠가 한여름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를 벗삼아 불영계곡에서 여러날 민박을 하며 찾았던 불영사를 참으로 오랜만에 찾았다.

 

그것도 뜻깊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찾게되니 또 다른 큰 의미로 되새겨진다.

 

처음 여정을 짤 때부터 부처님 오신날에 맞추어 이곳 불영사를 찾을 욕심으로 계획이었지만 여행중간 여정을 바꿀 수 밖에 없었음에도

무리수를 두어가며 고수하려 했던 고단함이 있었다.

 

전날 망양정 옆에 정했던 숙소에서 일찌감치 나오려 했지만 동행하는 우리집 막내의 여독이 조금은 덜 풀려 그다지 이른 시간은 아니었으나 도착하여 보니 이제 들어차기 시작하는 주차장을 보니 아직 여유가 많아 보였다.

 

문화재청의 자료에 의하면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이 세웠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 연못 위에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거기 살던 용을 쫓아낸 뒤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조선 태조 5년(1396) 나한전만 남긴 채 화재로 모두 불에 타 버렸고 임진왜란 때에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불영사는 잡고 터부터가깊은 산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게 만드는 그윽함 뿐만 아니라 발길 닿은 순간부터 편안하고 안락함을 가져다

주어 며칠 눌러 앉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기픔의 아름다움과 세속의 때를 벗게 만들어주는 곳이라 한번 찾고나면

생활의 번민스러움이 다가올 때마다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불국사의 말사임에도 여느 본찰 못지않게 큰 가람의 웅장함이 가져다주는 겉 모습 뿐만 아니라 문화재도 여러 점 간직한 사찰이기도 하다.

 

보물 제 730호로 지정된 응진전을 비롯하여 사찰의 중심이 되는 보물 120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그리고 보물 제 1272호로 지정된 대웅보전 불상뒤 벽화인 불영사영산회상도 (佛影寺靈山會上圖)가 있다. 또한 대웅보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13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가섭과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1984년 수리 공사 때 발견한 기록으로 임진왜란 전·후에 여러번 고쳐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원래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4짝 여닫이문을, 양쪽 칸에는 작은 창을 달아 놓았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에 남아 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

 

영산회상도는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으로, 대개 불상의 뒷벽에 위치한다.

이 영산회상도의 석가여래는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는 우견편단의 옷을 걸쳤으며, 손가락을 땅으로 향하게 하여 마귀를 물리치는 의미를 지닌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앉아 있다. 석가여래 주변으로 10대 보살, 사천왕상, 상단의 10대 제자 등이 배열되어 있다. 주로 영산회상도에서는 8대보살이 그려지는데, 이 그림에서는 10대보살을 표현한 점과 석가불 아래의 그 보살이 유난히 큰 점이 특징이다. 석가의 옷이 붉은색이고 석가 뒤의 광배가 이중으로 붉은 테를 두른 점등은 조선 후기의 불화양식보다 약간 앞선 양식적 특징이다. 채색의 사용법이 유창하고 아름다우며 묘사법이 정밀하여 그림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

조선 영조 9년(1733)에 그려진 이 그림은 격조있는 양식, 양호한 보존상태 등으로 18세기 초 조선불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보전은 기단밑에 거북돌을 받쳐 건물을 받들게 하였는데, 이는 불영사가 잇는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기운을 누루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요즈음 불영사를 들어가다 보면 불영사를 입구 낮은 고개마루턱 못미쳐 우측에 돌을 가득쌓아올린 나무 그루터기가 보인다. 이 고목은 쓰러지기전 한때 천연기념물 제 157호로 지정되어 있던 불영사 굴참나무로서 그 유명세를 알리기도 하였지만 세월의 무게를 못이기고 그만 그 수명을 다하고 쓰러져 지금은 천연기념물로서 지정해제되어 지나는 사람들의 아쉬움만을 남기게 되었다. 필자가 일찌기 1970년대 처음 찾을 때만 해도 비록 천연기념물로서는 해제되었더라도 쓰러져 있는 모습의 크기에서 웅장함이 그나마 본래의 위상을 지키느라 애쓰는 모습을 보았지만 이젠 그마져도 기억만이 아련할 뿐 수령 1,300여년, 수고 35여미터의 둘레 6.2미터 크기의 거목은 그 밑둥만이 돌무더기를 쌓아 올려 추억을 되새기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