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명찰 순례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

창현마을 2010. 10. 6. 11:09

 

 

 

 

적멸보궁이 있는 법흥사

 

 

 

 

            

신라 진덕왕 647년경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고'사자산사'라 명칭 되었으나 1939년 중수

불사시 사자산적멸보궁이라 개칭 하였으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5대보궁 중의 하나이다.


사리탑 옆에 는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있다.

법흥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창건한 흥녕사 절이라 한다.
당시 징효대사는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진신사리 100과를 얻어다가 양산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고, 이곳에 적멸보궁형 법당을

세웠다고.....

법흥사는 이들 5대 적멸보궁 가운데 하나인데,  징효대사는 법흥사 적멸보궁 뒷산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한다.


때문에 적멸보궁안에는 부처의 삼존불이 없고 , 뒤쪽으로 뻥뚫린 창만 하나 나 있다.
이것은 산 전체가 부처의 몸이라고 전하는 법흥사 적멸보궁의 뜻이라 한다.

법흥사는 한때 2천여명의 수도승이 운집하기도 했던 큰 가람이었으나, 수차례의 화재로 인해

절간을 모두 소실하고 현재는 적멸보궁과 심우장 , 요사채, 징효대사보인탑비,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이 남아있다.

법흥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 길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경승지 중 하나로 

운치를  더해준다.

 

처음에는 사자산사라 불리던 곳이었으나, 1939년 중수시에 사자산적멸보궁이라 개칭되었

다고  한다.


사찰로 들어가는 오솔길의 소나무숲이 장관이고 사찰 앞에 줄줄이 이어진 아기자기한 아홉개의

봉우리(구봉) 가 역시 일품인 구봉대산이 있어  법흥사 뒷편의 사자산과 백덕산 못지않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  양지방이올

 

 

 

 

 

 

 

 새로지은 일주문

요즈음의 사찰들이 그러하듯 이곳도 일주문을 웅장하게 새로 지었다 

기둥의 받침도 코끼리와 거북이(?)를 조각한 대형 석조상으로 만들고....

 

 

 

 

 

 

 

 

 

 

 적멸보궁

근래 새로이 불사한곳이다

그래서인지 보궁앞마당 한편엔 유명정치인들의 축하화환도

진열되어 있는데 ......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는 것 같고.......

 

 

 

 

 

 

 

 

 

 

 

 

 

 

 

 

 

 

 

 

 

 

 

 

 

 

 

 

 

 

 

 

 

 

 

 

 

 

 

 

 

 

 

 

 

 

 

 

 

 

 

 

 

 

 

 

 

 

 

 

 

 

 

 

 

 

이 탑비는 고려 혜종(惠宗) 원년(944)에 세워진 것으로 통일신라말 사자산문을 개산한 징효대사

절중(折中)의 행적과 당시의 상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탑비의 재질은 화강석이다. 비석을 받치고 있는 귀부는 방형의 지대석과 한돌로 조성되었으며

머리방향은 서쪽을 향하고 있다.

 

머리는 곧게 세우고 목에 주름이 선명하게 조각되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두 눈은 부릅뜨고 콧대는 파손되어 뭉툭하며 목 뒤에는 지느러미가 양옆으로 펼쳐져 있다.

頭上에는 인위적으로 홈을 낸 자국이 남아 있다. 앞 뒤 네발은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발가락 5개의 마디와 발톱이 사실적이고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다.


 

귀갑에는 장육각형의 귀갑문(龜甲紋)이 있고 그 안에 원형 자방(子房)이 있는 사엽(四葉)의

화문(花紋)을 조각하였으며, 귀갑문 사이에는 선조문이 양각되었다.

 

귀부 상면에는 장방형의 비좌가 마련되었는데, 앞과 뒤에는 권운문(卷雲紋)이 조각되었고 양옆으로는

권운문과 당초문이 혼합되어 표현되었다. 사면 모서리에는 우주(隅柱)가 각출되고 비좌상면에는

복엽(複葉)의 복연(伏蓮)이 돌려졌으며, 비신하단의 접합부에는 3단의 괴임을 각출하였다.

꼬리는 갈고리 형태이고 꼬리를 중심으로 중앙에는 등뼈를 표현했다.

 

비신은 전면에 약 2,800 여자, 후면에 385자가 확인되며, 서체는 해서체(楷書體)이다.

수(首)는 장방형으로 전후 측면에는 사룡(四龍)이 안쪽을 향하여 마주보고 있다.

용의 입에는 여의주가 물려 있다. 전면에는 중앙에 방형의 제액(題額)이 마련되고 주변에

연화문을 돌렸으며, 방곽안에는 종이행(縱二行)으로 「고징효/대사비(故澄曉/大師碑)」라고

전서체(篆書體)로 양각하였다.

 

후면에도 중앙에는 방곽이 마련되었는데 9칸으로 분할하였고 방곽 주변에는 연화문이 돌려져

있다.

이수 상면에는 원형의 간석위에 앙련(仰蓮)이 표현된 상륜이 있고 그 위에 보주가 조각되었다.

 

 

 

 

 

 

 

 

 

 

 

 

 

 

 

 

 

 

 

 

 

 

 

[징효대사부도]


부도는 화강암재로 조성되었는데, 팔각원당형(八角願堂形)을 기본으로 삼았고 2개의 방형

판석으로 이루어진 지대석 위에 건립되었다.


지대석 위에는 팔각의 하대석이 있고 각 측면에는 안상이 표현되었으며, 상면에는 갑석의

형태를 각출하였다.

하대석 위에는 연화대석이 놓였는데, 팔변(八變)의 복연(復緣)이 양각되고 모서리에 귀꽃이 조식

되었다.

연화대석 상면에는 갑석형의 팔각괴임대가 마련되어 중대석을 받치게 하였다. 중대석은 팔각으로

각 모서리에는 우주가 표현되었다.

중대석 위에는 상대석이 놓였는데, 원형으로 측면에 이중의 앙련(仰蓮)이 양각되었고 그 밑으로

중대석과 연결되는 곳에 2단의 평면팔각 받침이 마련되었다.

상대석 상면에는 탑신을 받치는 팔각 괴임이 각출되었다.

탑신은 위, 아래가 좁아지는 곡선을 이루며 각 면은 팔각이다.

전, 후면에는 방곽이 마련되고 그 안에 자물쇠 장식이 표현되었는데, 전·후면의 방곽크기가 약간

차이를 보인다(전면:16.3×20cm, 후면:12.7×17.7cm).

 

탑신 위에는 팔각의 옥개석이 놓여졌는데, 일부는 파실되었다. 처마마루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처마 끝에는 귀꽃이 조식되었다.


옥개석 밑면에는 탑신연결부에 팔각괴임과 주변에 연화문을 조식했으며, 상면에는 복련이

양각되고 1단의 팔각괴임이 마련되었다.

 

옥개석 위에는 팔각의 간석이 놓여졌고 그 위에 보개가 있는데, 일부 파실되었다.

보개는 옥개석의 형태와 거의 비슷한 양식이며, 밑면에는 간석 연결부에 팔각괴임이 있다.

보개 위에는 연봉형의 보주가 마련되어 상륜으로 삼았다.

 

 

 

 

 

 

 

 

 

 

 

 

 

 

 

 

 

 

 

 

 

 

 

 

 

 

 

 

 

 

 

 

 

 

 

 

 

 

전에 있었던 현판을 왜 떼어냈는지 모르겠다........????

 

 

 

 

 

 

 

 

 

 

 

 

 

 

 

 

 

 

 

 

 

 

 

 

 

 

 

 

 

 

 

 

 

 

 

 

 

 

 

 

 

 

보궁뒤 부도옆에 있는 석실

 

적멸보궁 뒤 석실 옆에 있는 고려시대 부도로 화강암으로 제작되었다.

이 부도는 1959년에 옥개석과 보개가 파손되었다는 이유로 신재로 교체되었다가 1968년에 다시

신재를 해체하고 원래의 부재로 교체하였다.

 

지대석은 방형으로 1석이고 1단의 높은 받침이 마련되었으며, 그 위에 팔각하대석이 놓여

있다. 대석의 각 면에는 안상이 마련되고 그 안에 화문(花紋)이 양각되어 있다.


팔각대석 위에는 원형의 연화대석이 놓여 있는데, 복엽(複葉)의 복련(伏蓮)이 조각되었고

상면에는 팔각의 3단 괴임이 각출되어 중대석(中臺石)을 받고 있다.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우주(隅柱)가 있으며, 그 위에 상대석이 놓여 있다.

상대석의 측면에는 상, 하 이중으로 앙련(仰蓮)이 돌아가고 상단 연화문 안에는 자방(子房)이 있는

사엽화문(四葉花紋)이 조식되어 있다.

상대석의 상면과 하면에는 3단의 평면팔각 괴임이 각출되어 있다.

상대석 위에는 탑신이 놓여 있는데, 상면과 하단이 좁아지면서 배가 약간 부른 형태이다.

측면의 전·후면에는 장방형 곽안에 자물통 문양이 양각되었고 나머지 6면에는 입상이 조각되었다.


전면 문비(門扉)의 좌우 양면에는 인왕상(仁王像)이 조각되고 측면의 좌우 4면에는 사천왕상

(四天王像)이 배치되었다.

옥개석은 하단에 3단의 팔각괴임이 마련되었고 추녀는 얇으며 완곡을 이루다가 우각(隅角)에 이르러

반곡(反曲)이 급해진다.

 

추녀 끝에는 귀꽃이 있다. 상면에는 복발(覆鉢)이 있고 복발 위에는 보개가 축소된 양식으로

남아 있으며, 보개 위에는 평면 십자(十字)의 화염형(火焰形) 보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