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자니 화산 - 인도네시아의 명산
; 트레킹의 명소 시리즈 1
린자니화산은 3,720m 로 인도네시아에서 3번째로 큰 화산이다
1977년 린자니화산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아름 다운 경관과 열대속의 가을 날씨를 가지고 있는 롬복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섬과 주변 바다의 면적을 합하면 미국보다도 큰 인도네시아는 무성한 정글, 광대한 고원, 웅대한 화산군이 특징이고 특히 화산이 약 400개 산재해 있는 화산의 나라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의 섬은 산과 바다와 정글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 사이로 동물과 식물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는 ‘열대의 보고’ 혹은 ‘적도에 걸려 있는 에머랄드 목걸이’로 불리기도 한다. 동서로 길게 늘어선 섬나라 인도네시아는 13,677개나 되는 섬이 산재해 있고 섬들마다 2∼3천미터급의 산들이 자리잡고 있어 최고의 트레킹지로 각광받고 있다.
이 가운데 린자니(Rinjani 3726m)는 인도네시아 트레킹의 메카라 할 수 있다. 린자니를 찾아가는 길은 다소 복잡하다. 우선 관광의 천국인 발리까지 가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25분을 날아가야 닿을 수 있는 롬복섬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해안선을 따라 날던 비행기가 롬복섬의 중심인 마타람공항에 사뿐히 내려섰다. 발리와 달리 작고 조용한 공항이었다.
우선 나는 세나루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가는 택시표를 사는 줄에 섰다. 택시요금은 버스터미널까지는 8천루피, 세나루까지는 6만 5천루피, 셈바룬 라왕까지는 11만루피라고 벽보에 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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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창구 앞에서 선 순간 난 예정에도 없이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나의 산행기점으로 예정하고 있던 셈바룬 라왕으로 곧장 가는 택시표를 사버렸다. 셈바룬 라왕은 아주 외진 마을인데 그곳까지 곧장 가는 차편이 없어 차량을 대절하거나 세나루에서 들어가는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셈바룬 라왕까지 택시비를 혼자 내기에는 다소 부담스런 금액이었지만 혼잡한 버스에서 그것도 혼자 한나절을 시달릴 것을 생각하니 서슴없이 셈바룬 라왕이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었다.
사실 린자니의 대표적인 등산기점은 세나루다. 롯지형 숙소가 많이 있고 등산장비를 대여하거나 포터를 고용하기가 쉽다. 또 린자니를 등반하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세나루에서 오르기 때문에 버스터미널에는 비록 낡고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세나루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또 어쩌다 운이 좋으면 공항에서 세나루까지 택시를 함께 타고 갈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한다.
영국에서 발간하는 세계적인 여행안내서 로운리 플래니트(LONELY PLANET)를 참고로 계획을 세운 나 역시 처음에는 이 책이 안내하는 대로 세나루에서 등반을 시작해서 셈바룬 라왕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었다. 그러나 비행기에서 만난 현지인은 반대 코스로 등반할 것을 권했다.
세나루 라왕 쪽은 셈바룬 쪽에 비해 등반거리가 길고 봉우리를 한 번 더 넘기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다. 또 셈바룬 라왕으로 하산하면 마타람으로 나오는 차편을 찾기가 힘들 뿐 아니라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셈바룬 라왕으로 올라가서 세나루로 내려오는 코스로 산행계획을 수정했다. 세나루와 셈바룬 라왕으로 갈라지는 지점인 바톡까지는 길이 아주 좋았다. 바톡에서 세나루까지는 약 10분 거리지만, 셈바룬 라왕은 린자니산을 동쪽으로 돌아 1시간 30분은 더 달려야 한다.
즉 린자니 우측의 동쪽 코스가 셈바룬 라왕 코스고 북쪽 코스가 세나루 코스다. 오후 3시 셈바룬 라왕에 도착해 포터를 구하니 나서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유는 내일이 마을 촌장을 뽑는 투표일이라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의 표현을 빌면 인도네시아는 하나의 연방이고 각 섬은 또 다른 하나의 나라이며 각 마을은 그들만의 삶의 테두리라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서로 무관하고 다르다는 말에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들은 다른 투표는 다 빠져도 내일 투표만큼은 빠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출발하든가 아니면 모레 아침에 가자고 한다. 포터를 1시간 이상 설득했지만 꼼짝하지 않아 나는 할 수 없이 세나루로 가서 포터를 구해올 수밖에 없었다. 셈바룬 라왕으로 돌아오자 이미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고 오늘은 차량대절비로 예정에도 없던 20만루피나 지출했다.
원추의 균형미 갖춘 린자니
모든 화산이 그렇지만 린자니의 모습은 화산의 전형이다. 원뿔을 세워놓은 듯 완벽한 균형에 조형미가 뛰어나 육감적인 인상을 풍긴다. 아침에 마주 대하는 린자니의 인상은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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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떨어져 있는 듯 유난히 돋보이는 린자니의 모습은 나무 하나 없는 화구 외벽이 아침 햇살을 받아 붉은 황톳빛을 토해내며 강렬하게 대지를 뒤흔들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차츰차츰 흑갈색으로 변화된다. 그 원래의 모습이 의심스러운 이 변모의 과정은 빛이 창조하는 화산만의 독특한 영상체험이라 할 수 있다.
등반은 거의 평지를 이룬 갈대숲을 따라 시작된다. 완만한 갈대숲 길을 따라 1시간 40분을 가면 첫 휴게소가 나온다.
휴게소에서 먼저 와 있던 두 명의 독일청년을 만났다. 그 중 스트라우트에 산다는 이름이 도미 센테인 28살의 청년은 대학을 졸업하고 3개월간의 졸업여행을 즐기는 중이었으며 그 시간 이후로 린자니 등반 내내 나의 사진모델 겸 친한 벗이 돼주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40분을 걷자 두 번째 휴게소가 나오고 세나루에서 출발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정상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은 3명의 독일인으로 젊은 학생들이었다. 다시 30분을 걷자 어두운 계곡이 나오고 능선으로 이어지는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포터들은 여기에 이르자 짐을 풀고 점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곳 이후로는 정상의 화구에서 뻗은 능선에 올라붙기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더욱이 능선에 올라서기까지는 물이 없기 때문에 시간은 좀 이르지만 여기서 식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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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은 자리에서 능선의 팔라완가 제2야영장까지는 약 3∼4시간이 걸린다. 가파른 이 오르막길은 몸을 노곤히 하기에 충분했다.
능선에 다다르자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더니 짐을 내려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화장실 간 줄 알고 기다려도 오지 않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찾는데 30분이 지나서야 포터들은 손에 잔가지들을 한 묶음씩 쥐고 겨드랑이에는 굵은 나뭇가지를 끼고 나타났다. 정상 직전의 이 팔라완가 제2야영장(2400m)은 능선에 올라 왼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데 10동 가까운 텐트를 칠 만한 넓은 평지였다.
왼쪽으로는 가파른 사면이고 오른쪽으로는 절벽에 가까운 경사로 린자니 화구에서 뻗은 주릉상의 평지인 것이다. 야영지에는 나무가 없어서 포터들은 저녁과 아침을 지을 땔감용 나무를 주워온 것이다. 저녁은 나시고랭과 샌드위치였다.
고랭은 쌀이고 나시고랭은 야채를 기름에 데쳐서 밥을 넣고 기름에 살짝 볶는 야채볶음밥이다. 인도네시아를 여행하다보면 하루 한 번은 꼭 먹게 되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 야채와 특히 고추가 입에 맞아 한 접시를 다 비웠다. 저녁을 먹고 자리에 누우니 잠이 오질 않는다.
포터들은 담요 같은 거적을 하나 덮고 밤새 불을 낮게 지피면서 불 주위에 앉아 밤을 지샌다. 가이드라고 따라온 사람은 자기 짐만 메고 하루 종일 내 뒤만 좇아오더니 저녁도 포터가 다 지어놓고 부르자 텐트에서 나와 밥만 달랑 먹고는 다시 드러눕는다. 그런데도 포터들은 불만이 없다.
신분에서 오는 차이를 인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네팔을 트레킹할 때도 느꼈고 인도를 여행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힌두교 국가의 공통된 현상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인정하는 자신의 운명과 신분을 거부하지 않고 따르는 그들의 모습. 그것은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잠을 청하자 인간의 삶은 유한하고 그 시작은 남녀의 교합에서 나온다는 평범한 진리 속으로 빠져든다. 힌두교 사원 곳곳에 난잡하게 각인 되어 있는 미투나상 그 섬세한 성행위 묘사는 인간본성에 대한 극도의 추구가 아닌가.
그런데 태어날 생명체가 어떻게 살아갈지 자신의 운명을 보면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남녀의 교합을 만물의 근원이며 위대한 창조의 행위라 한다면 이는 이기적인 어른들의 자기주장일 수밖에…. 잠 못 이루고 새벽이 되도록 포터와 모닥불에 마주앉으니 말이 오가지 않아도 삶이란 공평하다는 진리에 고개가 숙여진다.
분화구 속의 또 하나의 화산
롬복섬의 최고봉 린자니는 1901년에 마지막으로 폭발했다. 이때 린자니를 대표하게 된 초승달 모양의 거대한 분화구와 세가라 아낙이란 호수가 생겨났다. 세가라 아낙은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600미터 아래 위치하고 있으며 직경이 6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호수다. 이 호수의 중앙에는 바루봉(Gunung Baru)이라는 또 하나의 화산이 솟아 있는데 이것은 200년이나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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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이한 모습은 거대한 분화구 호수 가운데 연기를 내뿜으며 살아 움직이는 작은 분화구로, 그 솟아 있는 모습이 아주 기이하고 독특해서 린자니 최대 장관 중 하나이다. 새벽 4시 독일 친구의 목소리에 일어났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3시에 기상하여 3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하였으나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어 피곤했는지 4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
두 독일 친구는 예정대로 3시에 일어나서 내가 일어날 때까지 1시간 가량 기다린 것 같았다.
포터들은 야영지까지만 짐을 날라주고 정상 등정에는 동행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이드를 한 명 고용했다. 그러나 두 독일 청년은 포터만 고용하고 가이드는 고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이드 없이 정상등정에 나서는 게 걱정이 되었던지 어제 저녁 자기들은 가이드가 없어서 그러니 정상에 오를 때 동행해도 되겠느냐며 부탁을 해왔었다.
난 내가 가이드를 해줄 테니 걱정 말라는 농담을 건넸지만 그들은 여하튼 길을 아는 사람과 같이 정상에 오르는 게 위안이 되었는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우선 야영지에서 화구 가장자리에 올라서기 위해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가파르고 미끄러운 길로 1시간 30분 정도 올라가야 한다.
뚜렷한 길 표시는 없지만 사람들이 다닌 길은 움푹 패어 있기 때문에 낮이라면 길을 잃을 염려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출발하게 되면 때로는 길을 잃을 수도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낭떠러지로 이어지기도 하므로 항상 주의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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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구상에 올라선 후 왼쪽으로 둥글게 이어진 가장자리를 따라 린자니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6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출발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었기 때문에 쉬지 않고 정상을 향해 걸었다. 그러나 화구에 올라 30분쯤 걷자 예기치 않던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정상으로 이어진 사면은 경사가 급해지면서 잔돌과 모래, 화산재로 이루어진 사면은 빙판을 걷는 것처럼 미끄럽고 쓸려 내려와서 세 걸음을 옮겨 놓으면 두 걸음 미끄러져 앞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정상은 그 자리에서 가물가물하기만 했다. 난 먼저 앞서가다 독일 친구인 토미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그러자 그가 앞에서 갔고 나는 그가 발을 디딜 때 모래와 돌이 밀리면서 다져진 데만 골라 디디니 힘을 덜 들이고 따라갈 수 있었다.
그렇게 가다보니 정상은 아직도 먼데 일출은 시작되었고 앞서가느라 지친 토미와 다른 독일 친구는 더 못 가겠다고 나자빠졌다. 나는 토미에게 30분이면 정상에 닿을 텐데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그를 설득해서 함께 린자니 정상에 섰다.
이미 해가 중천에 뜬 7시 10분이었다. 의외로 정상은 매우 좁았다. 화구 쪽으로는 절벽이고 뒤쪽 화구 외벽으로는 가파른 사면이다. 그래서 정상과 협소한 능선은 10여명이 서기에도 좁은 공간이었다.
토미 말에 의하면 작년에 린자니를 오르던 현지인들 중 8명이 추락사했다고 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추락사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의를 하지 않으면 곳곳에 위험요소가 다분히 있는 산이다.
정상에서 받은 린자니에 대한 인상은 마치 백두산의 위세나 모습과 매우 흡사한 것이었다. 정상에 거대한 분화구가 있고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주봉이 날카롭고 주변의 위성 봉들을 압도한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그러나 린자니에 장백폭포 같은 장관은 없었다. 특이한 점이라면 화산이 폭발하면서 만들어 놓은 거대한 화구호 가운데에 다시 화산의 분출로 생겨난 바루봉이라는 화산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팔라완가 제2야영장으로의 하산은 마치 뛰는 것같이 빠르다. 미끄러지는 발에 힘을 주며 걸음을 옮기다 보면 정상적인 속도보다 세 배나 빨리 내려오게 된다. 야영지에서 린자니 정상까지 오를 때는 4시간 이상이 걸리는 반면 하산은 2시간이면 족했다.
화구호 세가라 아낙 호수
린자니는 힌두교의 성지다. 그래서 산꼭대기에는 신들이 산다. 신들이 살기에 세가라 아낙 호수만큼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현지인들은 호수 바로 아래 있는 온천에 와서 목욕 재계하고 기원을 한다. 바로 이 거대한 호수를 보며 신의 위대함을 인지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아직도 삼킬 듯 연기를 뿜고 있는 바루봉에 삶의 안전을 구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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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린자니의 일방적 폭력에 많은 지인들을 잃은 롬복인들이 아닌가? 그런 그들에게 린자니의 한가운데에서 연기를 뿜고 있는 바루봉은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까다로운 존재고 그 연기를 두려워하는 한 그들의 숭배행렬은 영원할 것이다. 그것이 린자니와 주민간의 숙명적 영면성(永面性)은 아닐는지!
9시에 팔라완가 제2야영장을 출발하여 호숫가 초지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려 11시쯤에 도착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다. 이 호숫가 초지에서 하루를 묵고 다시 반대편 화구로 올라가 세나루 코스로 내려왔다.
호수에서 세나루 쪽 화구 가장자리로 올라서는 데 약 2∼3시간이 걸리고 화구 가장자리에서 세나루까지는 계속 내리막길이므로 3∼4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따라서 마지막 야영지인 팔라완가 제2야영장에서 정상에 오르고 서두르면 당일로 세나루까지 하산해 마타람까지 이동하여 안락한 호텔에서 잠을 잘 수도 있다.
만약 세나루 코스로 등반을 시작하면 2100미터 지점의 팔라완가 제1야영장에서 1박을 하고 정상 직전 팔라완가 제2야영장에서 2박을 하고 정상등정 후 셈바룬 라왕까지 그날로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만약 세나루 코스로 되돌아 하산하려면 세가라 아낙 호수에서 3박을 하고 4일째 린자니 등반을 마치게 된다. 나는 호숫가 초지에 짐을 풀고 누웠으나 바루봉에 반하여 홀딱 밤을 세웠었다. 온천에 가서 롬복인들과 함께 그들의 신을 경배했다.
그리고 아침을 맞자마자 세나루로 하산을 시작했다. 2시쯤 도착한 세나루는 아직 린자니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차량을 대절해 마타람으로 달려나왔다. 좋은 비치호텔에 무리를 해서 몸을 풀고 적당히 익힌 고기에 소스를 듬뿍 발라 질겅질겅 씹으니 지난 3일간 린자니에서 보낸 시간들이 신의 세계를 여행한 듯 아스라하기만 하다. 린자니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대부분 등반을 끝내고는 길리뜨라왕안섬에서 며칠을 보내는 일정을 계획하고 있었다.
독일 청년인 토미도 역시 길리뜨라왕안에서 3일을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길리섬(길리섬은 길리뜨라왕안, 길리메노, 길리아일 등 세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중 한 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길리행 배를 타는 방살부두까지는 마타람에서 차로 1시간 30분이 걸리고 방살에서 길리메노까지는 40분간 배를 타고 가야 한다. 나도 마타람을 출발할 때는 길리뜨라왕안섬을 목적지로 삼고 출발했다.
그러나 도중에 만난 현지인의 생각은 달랐다. 길리메노가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더욱이 관광객이 적기 때문에 조용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안내서에는 모기가 많고 말라리아를 조심하라는 문구로 겁을 잔뜩 주었다. 이런 말을 현지인에게 하자 현지인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처음 길리섬을 소개한 건 독일 여행가였는데 그가 우기철에 길리메노에 왔다가 말라리아에 걸려 여행서에 나쁘게 소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기가 아니라 모기도 없고 말라리아는 모기에 물린 지 일주일 이상 지나야 증세가 나타나는데 그 여행가는 다른 곳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후 길리메노에서 증세가 나타나자 길리메노에서 말라리아에 걸린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현지인의 말을 믿고 길리메노에 도착하자 아늑하고 조용한 해안가는 바다 쪽으로 10미터만 나가도 산호가 온통 바다를 뒤덮고 있고 스노우 쿨링을 쓰고 물 속을 들여다보면 천연색의 열대어가 손에 잡힐 듯 노니는 천국이었다.
해안에서 만난 영국인과 길리메노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의 아내가 윗통을 벗고 가슴을 드러내놓은 채 오일마사지를 받겠다고 드러눕는다. 한국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라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의 매력적인 부인은 포즈를 취해드릴까요 하며 가슴을 쭉 내밀고 영국신사는 사진을 찍으라며 자기가 서 있는 자리까지 양보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이들 영국인들과 저녁을 같이하게 되었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섬 반대쪽으로 30분을 걸어가니 “굿허트(good heart)”라는 간판이 달린 낡은 식당이 하나 있다. 식탁이 5개밖에 없는 초가지붕의 식당은 길리뜨라왕안 너머로 지는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바다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음식값도 저렴하고 운치도 있어서 밤이 깊도록 일어날 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식당주인은 고맙다는 말을 쉼없이 하더니 마차를 하나 불러주었다. 멋진 석양과 맛있는 식사 그리고 엉덩이가 불편하지만 마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나의 인도네시아 여행은 끝났다. 그 마지막 순간이 나에겐 가장 인도네시아답게 여겨졌다. <글 사진·채경석>
출처 : http://www.mountainkorea.com/contents_view.html?menuid=200&submenuid=20302&contentsid=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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