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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잣대가 아닌 자연을 통틀어 봤을 때도 두 가지 성으로 나뉘는 것은 확실하다. 나무도 꽃도 동물도 그러하다. 그건 자연의 지속성에 대한 당연한 이치이며 세상이 존재하는 원리다. 흔히 하늘은 아버지고 땅은 어머니라 한다. 하늘은 빛과 비를 내려 땅을 촉촉이 적시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며 땅은 그 에너지를 받아 생명들을 키워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직은 차창을 열고 가기에는 이른 봄날. 여근곡을 찾아가는 길목에서 음양의 이치니 여성과 남성의 역할 분담이니 운운하며 머릿속을 헤집는 생각들을 정리하는 것은 여근곡에 대한 사람들의 터부가 반반으로 갈린 것에 대한 나름의 해석 때문이었다. 경주시 건천읍 서면 신평2리 부산(富山) 골짜기에 있는 여근곡은 그 모양이 여성의 성기와 흡사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女根谷. 그 한문의 뜻만 봐도 고개가 끄덕여지는데 그 모양을 보면 '정말 그렇네'하고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속칭 '음문골'이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신라 선덕여왕과 연관된 이야기 하나가 전해온다. 여근곡에 얽힌 전설 '선덕여왕과 개구리 설화'
백제 군사 5백명이 거기에 숨어 있었다. 신라군은 곧 그들을 사살했다. 백제 장군 우소(于召)가 남산 고개에 숨었으므로 그도 에워싸 사살했다. 또한 백제의 후속부대에 1천3백명이 오는 것도 모두 죽였다. 신기하게 여긴 군신들이 여왕에게 어떻게 개구리를 통해 백제군이 숨어있는 줄 알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여왕은 "개구리는 성내는 형상이니 군사의 상징이다. 옥문이란 여근이요, 여자는 음인데 그 색은 희고, 흰 것은 서쪽이다. 그러므로 서쪽에 군사가 있을 것을 알았다. 또한 남근은 여근에 들어가면 반드시 죽으므로 쉽게 잡을 것을 알았다" 라고 대답했다. -이하석 시인의 <삼국유사의 현장기행>에서 발췌- 참 영리한 추측이 아닐 수 없다. 선덕여왕의 지혜에 절로 탄복하고 고개가 숙여지는 대목이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이 이야기만큼 여근곡을 잘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까. '여성의 음부' 여근곡을 찾다 건천 시내를 통과해 10여분 정도 가다가 신평 2리라는 표지를 보고 좌회전해서 철도 건널목을 통과하자마자 멀리 울퉁불퉁한 산이 보였다. 산맥들이 마치 가랑이를 벌린 듯한 그 먼 발치 가운데에는 정말 여성의 음부처럼 생긴 여근곡이 있었다.
그 옆 단층집 옥상은 전망대라고 써있었는데 아마 그곳이 여근곡을 보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집 벽에는 여근곡을 찍어놓은 사진과 설명이 붙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 사진 속 여근곡은 바로 앞에서 보는 여근곡보다 훨씬 그 모양이 흡사해 민망할 정도였다. 아마 나무가 많은 봄여름보다는 잎이 지는 나무 탓에 자연스럽게 그 형상을 더욱 뚜렷하게 만드는 가을쯤이나 늦겨울쯤에 찍은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누구에겐가 여근곡은 2월경쯤 보면 그 모양이 가장 여근곡답다고 들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단층 옥상에 올라서니 황사로 인해 뿌옇긴 했지만 여근곡이 보였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데 분홍 꽃잎을 내민 복사꽃과 어우러져 아주 야릇한 느낌을 풍겼다. 마을 사람들은 왜 여근곡에 제사를 지낼까
유학사는 아주 아담한 절이었다. 스님 한 분이 여근곡 샘으로 가는 길을 묻자 "상수원 식수로 쓰기 위해 샘을 막아놔서 가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가뭄이 들어도 끄덕 없이 물이 난다는 여근곡의 샘은 이제 마을 사람들의 상수원이 되어 목마름을 채워내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옆 동네 청년들이 몰래 샘을 후비기도 했으며 이런 일 때문에 한 때는 외지 남자들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남성의 희망사항과 달리 이곳에 남성의 무덤이 들어서면 틀림없이 비가 안 오거나 괴병이 돌았다고 한다. 마을에 이런 변고가 생기면 마을 사람들은 여근곡으로 가서 몰래 쓴 무덤을 없애기도 했단다. 몇 년 전에는 여근곡 일대에 산불이 났는데 다른 곳은 다 탔어도 여근곡 샘 주변은 타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음기가 세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에로틱하다고?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가뭄에도 마을 사람들이 부족함 없이 물을 마시고 건천들의 곡식을 가꾸고 선덕여왕의 이야기에서처럼 적으로부터 나라를 구하는,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어머니와 같은, 어쩌면 여근곡은 생명의 탄생지인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더 많은 무게를 둔다.
3년 동안 그 길을 다니면서 임부의 형상을 본다는 것은 가슴 설레고 즐거운 일이다. 건천 휴게소를 지나 형상이 점점 사라진 후 어느 덧 모습을 드러내는 여근곡이 곧이어 하나의 생명을 세상에 탄생시키는 어머니의 자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복사꽃이 화사한 봄날이다. 여근곡 멀리 늦은 산벚나무가 하얀 치마를 휘날리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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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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