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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성 (23) - 공심돈( 空心墩 ) 3 ; 서북공심돈 - 사진갤러리

창현마을 2007. 3. 23. 15:28

 

 

 

 

수원 화성 (23) 

 

           -  공심돈( 空心墩 ) 3  ; 

 

                       서북공심돈 - 사진갤러리

 

 

 공심돈(空心墩)이란 수원성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물로 수원 성곽의 서북·남·동북의 3곳에 설치된 돈대(墩臺)이다.

 

돈대(墩臺)란, 성벽 위에 석재 또는 전(塼)으로 쌓아올려 망루(望樓)와 포루(砲樓)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높직한 누대(樓臺)이다.

 

돈대의 형태는 원형과 방형 2가지가 있으며, 내부에는 2~3단의 마루를 만들고 외부를 향한 벽면에 각 층마다 작은 안혈(眼穴)을 내어 대포·총·화살을 쏠 수 있도록 하였다.

 

 돈대 설치의 기록은 조선시대 문헌에서 나타난다. 〈남한지 南漢志〉에 인조(1623~49 재위) 때 수축된 남한산성에 2기의 돈대가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1679년(숙종 5) 병조판서 김석위(金錫胃)의 건의에 따라 강화에 53개소의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여지도서 輿地圖書〉에 그 명칭과 위치가 그려져 있다.

 

1796년 완공된 수원 성곽의 서북·남·동북의 3곳에 돈대가 설치되었는데 이를 공심돈(空心墩)이라 불렀으며 수원성(華城)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시설물이다.

 

동북공심돈 그리고 서북공심돈이 남아있고 남공심돈은 복원되지 못했다.

이러한 공심돈은 서양 중세 봉건제후 성의 일부인 탑과 유사한데 수원성 성역에 참여했던 정약용이 〈기기도설 奇器圖說〉을 연구한 것으로 미루어 서양 성곽을 본뜬 것으로 짐작된다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북치(北雉) 위에 있다.

성서(城書)에 이르기를 벽돌로 삼면을 쌓고 그 가운데를 비워둔다.

 

그 가운데를 2층으로 구분하여 널빤지로 누를 만들고 나무 사닥다리를 사용하며, 위아래에 공안(空眼)을 많이 뚫어서 바깥을 엿보는데 편리하게 한다.

 

불랑기(佛狼機) 백자총(百子銃)들을 발사하여도 적으로서는 화살이나 총탄이 어느 곳에서부터 날아오는지를 모르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지금 이 제도를 본떠서 치(雉)에다가 돈(墩)을 설치하였는데, 치의 높이 15척, 서북 이면(二面)에 각각 현안(縣眼) 2구멍을 내었고, 그 위에 벽돌로 쌓아서 그 속을 비게 하고, 위에다 가로 세로 2간의 집을 지었다.

 

벽돌로 쌓은 것이 높이 18척, 아래의 너비 사방 23척, 위의 줄어든 너비 사방 21척이다. 상청판(上廳板)과 하청판의 2판을 설치하여 누(樓)일 경우에는 2층으로 하고 포(鋪)일 경우에는 3층으로 하여 층마다 벽돌로 된 면에 불랑기를 쏘아댈 포혈(砲穴)[사방 1척]을 내었다.


상층의 벽돌로 된 면 위 쪽은 판자로 둘렀으며 문마다 각각 전안(箭眼)을 뚫었다.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고 대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중층과 상층에는 각각 청판(廳板)을 여는 사방 3척의 덮개판 하나를 만들어, 밀고 당겨서 열고 닫게 하여 나무 사닥다리로 된 오르 내리는 길과 통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