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승대 - 경남 거창
경남 거창군 제일의 명승지는 수승대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위천면 대정리에 자리잡은 수승대는 위천천변의 경승지로서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김암괴석과 울창한 숲, 맑은 계류가 손잡고 절경을 연츨한다. 수승대의 중심부는 귀연암(龜淵岩)이다. 덕유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중간에 높이 10m, 둘레 수십 m의 큰 바위가 떠 있는 묘한 형상의 귀연암은 거북처럼 생겨서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나무가 자생하고 있는 암벽에는 퇴계 이황의 수승대 명명시를 비롯, 선인들의 시들이 새겨 있다. 이 일대는 원래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곳으로, 백제 말기에 신라가 백제 사신들을 슬프게 돌려보냈다고 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
퇴계가 시 한 수와 함께 수승대(搜勝臺)라는 이름을 지어 보내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전해진다. 수승대 일원에는 귀연암 외에 요수정(樂水亭), 귀연서원, 관수루(귀연서원의 문) 등의 건물이 있다
이곳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이다.
옛날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때에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옛날 삼국시대 때 백제의 국세가 쇠약해져서 멸망할 무렵 백제의 사신을 이대에서 송별하고 돌아오지 못함을 슬퍼하며 송별하였다 해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그후 조선 중종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원(龜淵書院)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속칭함과 동시에 대위에 축을 쌓아 솔을 심고 대밑에 보를 만들어 고인 물을 구연(龜淵)이라 하였다.
서기 1543년 퇴계 이황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서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 못하고 대명을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며 사율시(四律詩) 한수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면에 새겼다.
이 경내에는 구연서원(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 와 유적비 등이 있다.
수승대의 명물 거북바위는 바위가 계곡 중간에 떠있는 모습이 거북처럼 보인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세월의 아픔을 견뎌낸 소나무들이 바위 곳곳에 자라고 있어,
마치 평지같은 인상을 준다.
바위둘레는 이황이 수승대라 이름지을 것을 권한 4율시를 비롯, 옛풍류가들의 시들로 가득차있다
무주 구천동에서 신룡령을 넘어 거창쪽으로 조금만 가면 수승대와 금원산이 있다.
산 전체가 바위 벼랑으로 되어 있는 기세좋은 금원산을 옆으로 하고 강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수승대 국민관광지라는 간판과 주차장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 앞에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면 강에 보를 막아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자연 풀장이 있다. 보를 건너면 물썰매장이 바로 앞으로 보인다. 물썰매장앞에는 야영과 야외놀이 를 할 수 있는 야외 광장이 넓게 꾸며져 있다.
수승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강을 가로질어 놓여있는 빨간색의 커다란 현수교다. 고적으로서의 수승대의 가치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신경 쓰지 않은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멋없고 분위기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의 편리성은 갖추고 있다.
현수교를 건너면 우람한 소나무 숲이 보기 좋게 강변에 펼쳐져 있다. 일부러 조성해 놓은 여느 수목원에 비길바가 아니다. 이러한 모습은 하동 섬진강변에 있는 상림과 덕적도에 있 는 적송림에 버금가는 느낌이다. 소나무 그늘 곳곳에 쌍쌍이 자리를 잡고 앉아 시간을 보내 는 모습들이 보기좋다.
소나무숲속으로 강 언덕을 따라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가면 송계사 라는 작지만 유서깊은 절하나가 나오고, 작은 굽이를 돌아나가면 아주 오래된 가옥이 한채 있다.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그집 앞으로 수승대를 가장 유명케 해주 는 요수정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조의 명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요수 신권이 이곳에서 글을 읽으며 놀았던 곳이라 한다.
수승대을 한눈에 내려다 보는 강 언덕에 지어진 요수정은 그곳 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 만큼이나 정자 스스로가 수승대의 멋과 아름다움을 고조시켜주고 있다. 바위를 타고 흐르다 그 소리가 움직임을 죽이고 고요히 잠겨드는 소에 요수정의 그림 자가 비친 모습이 실로 절경이다.
요수정을 지나 아래로 내려가면 넓은 암반위에 돌 다리가 연달이 놓여 있다. 바위를 가로질러 놓인 무지래 다리를 건너면 비로소 수승대 앞에 서게 된다.
바위 모습이 얼핏 보아도 흡사 거북의 형상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구암(龜岩)이라 불 렀다고 전해진다. 높이 약 10여미터, 둘레 수십 미터, 넓이 약 50평의 거대한 암봉(岩峯) 강 중간에 떠 있는 모습인데, 위에는 소나무가 자라나서 마치 커다른 분재른 보는 듯 하다. 바위에는 빼곡하게 글이 새겨져 있다.
퇴계의 명시와 갈천의 시, 요수 신권을 기리는 글 등 이 암각되어 있다. 어디서도 보기 힘든 특이한 형상이다. 수승대와 넓은 암반, 푸른 물 위 로 그림자를 드리운 요수정이 어우러져 실로 한폭의 그림이다. 그 중에서도 해가 뉘엿뉘엿 질때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수승대는 본래 수송대(愁送台)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단다. 백제와 신라 사신이 이곳에서 만나 서로의 비극을 나누고 헤어졌다 하여 서로가 근심을 보내는 곳이라는 뜻으로 수송대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를 퇴계 이황이 수승대라 개명할 것을 명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수승대를 돌아나오면 요수 신권선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구연서원이 자리잡고 있다. 구연서 원에는 요수(樂水) 신 권(愼權) 선생, 석곡(石谷) 성 팽년 (成 彭年) 선생, 황고(黃皐) 신 수 이(愼 수 ) 선생을 제향하고 있다. 구연서원에서 볼만한 것은 서원의 문 역할을 하는 관수루 (觀水樓)다. 관수루의 기둥은 다듬어지지 않고 휘어진 모습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또한 관수루 위에 서면 수승대와 그 너머로 요수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승대에는 유명한 전설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구미호가 입속에 구슬을 넣어 남자의 기 를 빼앗아 가다가 그만 남자가 구슬을 삼켜버려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전설, 그리고 구슬을 삼킨 남자는 총기가 좋아져 당시 최고의 명의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출처 : 사진 - 카페/여행등산야생화사진
글 - 유리님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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