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상사에선 일주문과 계단을 묻지 마라.
- 전라북도 남원시 실상사
만약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으며, 어떤 모양일까? 마음은 사람의 심장에 8잎의 연꽃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유난히 마음에 마음을 두며 찾아가는 길, 실상사로 가는 길이다. 찾아가는 길이야 이렇게 집착을 둔다지만 실상사에 이르러 그 집착을 버려 마음을 비우고 돌아오는 길에는 그래도 뭐라도 하나 얻어서 온다면야 더 좋을 것이 없을 터 그러나 이것 또한 집착일까? 마음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채 길은 지리산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기 설악산이 바람난 처녀라면 여기 지리산은 속 깊은 남자 같다. 그 깊은 속의 한자락 남원시 산내면 실상사로 가는 길. 버릇처럼 먼저 백장암을 찾아간다. 길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차한대 가까스로 지나갈 정도로 굽이굽이 돌아간다. 작년인가 찾아왔을 때 한창 발굴조사 중이었는데 지금은 발굴을 마치고 말끔히 정리를 해두었다. 국보 제10호라는 것만으로도 무게를 느끼게 해 주는 백장암삼층석탑과 그 곁 보물 제40호인 백장암석등, 탑에도 난간이 표현되어 있고 석등에도 난간이 표현되어 있다. 석등에 이런 난간이 표현된 것은 국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가 아닐까한다. 시간을 두고 찬찬히 살필수록 보는 재미가 솔솔 느껴지는 탑과 석등이다. 삼층석탑에 새겨진 사천왕상, 신장상, 천인좌상과 기단부의 남다른 구조 등 감탄할 만한 이 창조적 상상력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를 상상해보면서 백장암 주위을 둘러본다. 겹겹이 포개진 산들. 보이는 것이라고는 산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저 무한한 우주로 이어지는 이 하늘이란 말인가? 결국 물음은 다시 그 우주같은 내안으로 들어오고 만다. 결국 백장암 탑마저 얹은 마음의 무거움으로 백장암을 내려선다. 산들이 점점 높아진다.


실상사로 들어서는 길. 다리(해탈교)를 건너기 전 우측에 석장승이 서있다. 원래 좌우로 서 있었는데 1936년 홍수 때 오른쪽 장승이 떠내려갔다고 한다. 지금 남아있는 왼쪽 장승에는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 적혀 있다. 해탈교를 건너면 다시 길 양쪽으로 장승이 서 있는데 좌측 나무 밑 장승은 ‘대장군’이라고만, 오른쪽 장승에는 ‘상원주장군’이라고 새겨져 있다. 절 입구에 이렇게 네 기의 장승을 세워 놓은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대체로 1700년대에 세워진 장승들로 하나같이 그 모양이 정말 장승스러운데 특히 벙거지 코가 매력적이다. 부럽다고 하면 아는 사람은 웃을라나?

실상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바로 천왕문을 들어서면 거의 모든 전각들이 같은 높이의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선종사찰이라서 그럴 것이다.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는 특성상 교종사찰은 계단식이 많고 단박에 깨우침을 얻어내는 선종사찰은 이런 평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사실 실상사에는 그렇게 많은 전각들이 들어서 있는 것은 아니다. 칠성전, 보광전, 약사전, 명부전이 하나의 영역 안에 있고 서쪽 영역에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요사가 들어 서 있다. 그리고 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극락전이 있는데, 절 내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계단도 없고 해서 우선은 별 고생없이 쉽게 돌아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의외로 시간이 걸리는 곳이 바로 실상사다. 무엇부터 찾아 볼 것인가는 늘 실상사를 찾을 때마다 고민을 하게 만든다. 별 고민을 다 한다라고 하지만 이런 고민을 하게 하는 것이 실상사다.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는 삼층석탑, 돌계단을 둔 석등,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는 4천근의 철조약사여래불, 실상산문의 개산조인 홍척스님의 부도, 홍척의 제자인 수철화상의 부도. 그리고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끄는 미적 감각의 해우소, 실상사에서 약수암 가는 길로 가다보면 만나는 옛 조계암터의 편운화상의 부도에서 실상사 북쪽 담 밖 멀리에 있는 부도까지 도대체 어디로부터 발길을 시작해야할지, 어쩌다가는 멍하니 지리산만 바라보는 경우도 있다. 구름 흘러가듯 그렇게 가라고 하지만, 실상은 딴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 인연이란 놀라울 때가 많다. 어떤 사람을 아는데 알고 보면 내 아는 사람이 그가 아는 사람이고, 그가 아는 사람 또한 다시 내가 아는 사람이고, 이런 인연들 중 한 축이 이상하게 실상사로 모여들었다. 그래서 이도저도 고민할 필요없이 먼저 천왕문을 들어서서 왼쪽에 자리한 찻집으로 들어선다. 미리 약속을 해둔 실상사 (원묵)스님을 만나 찻잔을 사이에 두고 세상을 떠난 절집인지 절집 밖 세상인지 모를 그런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그 꽃향기에 흠뻑 취해있을 때 비가 내린다. 그러고 보니 실상사를 찾아왔을 때 자주 비를 만나곤 했다. 이것 또한 인연인가?
스님의 안내를 받아 실상사를 돌아본다. 옛날 불국사의 삼층석탑을 복원할 때, 그 상륜부가 없어 실상사삼층석탑의 상륜부를 그대로 본떠 만들어 세웠는데 이렇듯 우리나라에 실상사처럼 상륜부가 제대로 남아 있는 탑은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리고 화엄사나 임실군 용암리의 석등과 형태가 닮은 실상사석등 앞에는 보기 드물게 석등에 불을 지피기 위해 올라서는 계단석이 따로 만들어져 있다. 삼층석탑과 석등을 보고 나니 시각이 벌써 저녁공양 때다. 어쩔 수 없이 스님과 잠시 이별하고 혼자서 다시 걸음을 옮겨본다. 그 막간에 비는 잠시 그치고 지리산은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숨겼다 한다. 산이 그러기야 하겠냐마는 운무가 흩어졌다 모였다 하는 것이 정말로 지리산의 조화라고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 조화로움을 초승달 같은 눈매로 바라보는 약사전 철조약사여래불은 그 어떤 움직임에도 미동도 않을 지리산같은 무게로 앉아 계신다.



옛날 통일신라시대 많은 스님들이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중국에서 선종을 배워온다. 도의국사가 처음으로 들어와 그 선법을 펼치고자 하나 세상은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도의국사는 강원도 양양 진전사로 운둔했다. 최치원이 표현한 것처럼 ‘빛을 처마에 감추고 병속에 감추어 법을 전할 생각을 그만둘 수밖에’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법, 도의국사를 이어 홍척스님이 들어와 처음으로 지리산 자락에 산문을 연다. 바로 실상산문 실상사다. 그래서 실상사를 ‘선종제일가람’이라고 한다. 최치원은 홍척스님의 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아침에 범부였던 사람을 저녁에 성인이 되게 하니, 이런 변화는 점차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단박에 일어난 것이다” 이런 선종은 누구나 마음으로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상으로 지방에서 9산문을 일으키고 지방 호족들의 후원을 받는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철불이다. 실상사 철불도 그렇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원묵)스님 방에 들어 의외로 산딸기에 커피 한잔을 한다. 절이라고 다 차만 마시는 것은 아닐 터, 문밖에 그쳤던 비가 다시 거세게 내린다.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속을 데우고 그냥 웃음 지으며 스님과 작별을 고한다. 다시 만날 날을 약속하면서 실상사에서 나오는 길. 어디 두었는지 모를 마음을 다시 찾아본다. 지리산은 운무에 덮였고. 실상사는 나무숲에 덮였고 내 마음엔 온통 비만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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